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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평점 :

피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어서 필립 라킨 <새벽의 노래>의 문장처럼 한쪽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의 의미가 분명해지기 시작한 세 편의 단편소설집이다. 기막히게 이 문장이 세 편의 소설들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클레어 키건 소설은 참 매력적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어떤 자세로 당당하게 삶의 방향을 돌리는지 보여준다.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소설에서는 유명한 하인리히 뵐 작가의 유족이 그의 집을 작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 2주 동안 빌려주는데 여자 작가가 그곳에 2주 동안 머무르기 위해 도착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가져온 짐은 책 몇 권과 옷 몇 벌 정도이다. 독서가인 그녀는 일이 무척 간절한 상황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은 독문학 교수라고 소개하면서 숙소 앞이라고 집을 구경시켜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녀는 온전히 자신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거절하고 나중에 약속을 잡는다.
그녀가 장을 보고 직접 만든 케이크, 산책, 바닷가에서 보낸 경험은 그녀의 39번째 생일을 만족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녀를 몰래 지켜본 독문학 교수의 언행은 그녀를 실망스럽게 하는 상황이라 집을 구경시켜준 그녀는 그를 집에서 보내게 된다. 그의 아내는 어떤 결혼생활을 하였을지도 짐작하면서 그녀는 글을 쓰는 작업에 온전히 몰두하면서 글을 쓰게 된다.
타인을 쉽게 단정하고 오해하는 사회의 모습이 독문학 교수를 통해서 엿보게 된다. 작가들이 창작을 하기 위해 경험하고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활동에 숨은 잠재력이 얼마나 폭발하는지 독문학 교수는 전혀 짐작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일방적으로 무례하게 찾아와 집을 구경하겠다는 태도, 몰래 지켜보면서 오해하는 오만함과 케이크를 먹는 모습과 독단적인 언행에 그녀는 단호하게 그를 집에서 내보게 된다.
『너무 늦은 시간』소설은 카헐과 사빈 커플이 등장한다. 사빈과 결혼을 결심하고 반지를 맞추는 장면에서도 놀라운 카헐의 모습을 보게된다. 사빈의 짐이 자신의 집으로 옮겨지는 상황에 그가 짐을 옮겨주었는지 바라만 보았는지도 드러난다. 결혼식을 앞둔 이 커플이 사빈의 짐이 옮겨지는 날 사빈이 결별을 선언하고 떠난 이유는 무엇인지 명백해진다. 다만 카헐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고심하지도 않는 태도로 여전히 그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한 여성 승객이 꺼내서 읽은 『문으로 걸어 들어간 여자』책도 궁금해진다.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여성 참정권 반대, 설거지 돕지 않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문제는 가부장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한국사회도 고심해야 하는 문제로 남는다. 시댁 문화, 결혼문화, 육아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까지도 여전히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농경사회가 아닌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을 강요하는 기성세대, 장남, 장손 등으로 남녀평등과 대립하는 한국 사회문제를 끌어안기 싫어하는 이유도 둘러보게 하는 작가이다. 제멋대로 살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남성들을 어떤 자세로 응대하여야 하는지 명확한 해결책을 보여준 소설이다. 카헐의 어머니의 결혼생활이 답습되어 아들이 어떤 자세로 여성을 대우하는지 꼼꼼하게 짚어주는 명장면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남자들이 우리한테 뭘 원하는 걸까. 36
그냥 입 닥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주길 바란대.
남자들은 제멋대로 살아서 뭐든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한심하게 군대. 37
아버지가 다른 남자였다면,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았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44
『남극』 소설은 평온한 결혼생활에 일탈을 꿈꾸는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날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완벽한 하루였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다음날 일어나는 사건은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남극이라는 소설 제목의 이유가 분명해진다. 읽고나서 『마담 보바리』 소설이 떠올랐다. 더 나은 삶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상과 현실에서 그녀가 선택한 것들의 결말은 냉혹한 남극과 다름없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두께감이 얇지만 한 편씩 읽고나서 꽤 흥미롭게 사유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작품들이다. 던져진 주제들을 하나씩 되감기하면서 여러 번 소설 문장들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던 작가의 소설이다.
남자들이 우리한테 뭘 원하는 걸까... 그냥 입 닥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주길 바란대. 남자들은 제멋대로 살아서 뭐든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한심하게 군대. - P37
겨울에 이런 동네에 살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갈매기의 차가운 비명, 마침내 겨울이 끝나면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극적으로 변할까. - P59
아버지가 다른 남자였다면,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았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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