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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잠 - 덕자전성시대 덕자의 장편소설
박보미(덕자전성시대) 지음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7월
평점 :

[협찬]
"그동안 알고 있던 것들의 경계가 흐릿해졌다."(7쪽)라는 문장이 압도적인 소설이다. 책표지에서 전해지는 두 세계가 그러하다.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내용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설명할 수 없는 그 세계의 문을 들어선 화자가 경험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떠올리면서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다.
현실보다는 그 너머의 세계가 늘 궁금했다. 19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24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 없는 표현이 없는 분명한 경계 너머의 세계가 소설에 등장한다. 모두가 같은 길을 향하고 있는 삶에 질문도 의문도 잃어버린 모습으로 무표정하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인생에 질문을 과감하게 던진다. 대기업에 입사하고 꿈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입사하지만 불안에 시달리고 위태로운 상황조차도 외면하면서 번아웃이 오거나 대인기피증을 보이는 증세의 원인을 매만지기 시작한다.
사회초년생 화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공기업에 합격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부당한 직장 대우를 참다가 결국 터져버리면서 소송을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거짓 증언을 한 사람들이 재판이 끝나자 승진하는 특혜를 누리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가해자가 피해자 변호사에게 비밀스럽게 협상을 요구하면서 피해자 의뢰인 변호사가 몰래 돈을 받은 사실도 그루잠이라는 소설에서는 감추지 않고 뒤늦게 화자가 알게되는 세계가 있다.
은밀한 사기사건의 가해자 공인중개사, 뒷돈을 받고 거래한 변호사,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집주인까지도 등장한다. 유독 어른이 보이지 않았던 소설이다. 부모마저도 화자 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화자를 출산하다가 사망하고 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니지만 늘 바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딸의 생일이 오히려 축하받는 날이 아닌 눈치를 보고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아버지만 존재할 뿐이다.
<김부장>드라마의 김부장과 딸과 같은 상황이지만 대조적인 아버지 모습이다. 늘 혼자였고 직장생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을 소송하려고 한다는 딸의 이야기에 화를 내면서 사라진 아버지이다. 그리고 소송도 혼자서 준비하면서 기나긴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해내면서 승소하게 된다. 순탄하지 않았던 출생과 직장생활, 50대에 갑자기 전화로 들게 되는 아버지 부고소식, 아버지가 남긴 글과 돈은 너무나도 헛된 것으로 남는다. 진짜 딸에게 필요했던 것들을 한 번도 주지 못했고 딸이 다려준 서툰 다리미질로 준비한 셔츠도 입지 않았던 아버지가 있다.
무언가의 힘이 나를 이끌어주고 있었던 것 같다는 이상한 감각 36
나를 다시 찾은 기분 64
설명할 수 없는 그 세계에서 만난 어머니, 키웠던 강아지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도 아직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과 인생에는 무수한 질문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유는 무엇인지, 사건의 원인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은 뿐이다. 퇴사한 이유를 면접관에게 질문받고 그 이유를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화자가 직장상사에게 당한 부당함을 듣고 경찰이 분노할 정도의 일을 당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기에는 벅찬 젊은 날의 이야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소설이다.
문을 닫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겨내야 하고 다시 세상속에서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껴야 한다. 세월이 흘러 80대 된 화자가 기억하는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엄마가 남긴 다이어리의 글이 유일한 어린 소녀가 읽을 수 있었던 글이었고 엄마가 실존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곁에서 자신과 함께 하고 있었음을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해하게 된다.
엄마의 글들만이 어린 나에게는 유일한 온기였다. 16
나는 늘 모든 것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31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는 아버지의 삶도 이야기된다. 독재자가 국민을 무차별 학살한 킬링필드와 유골, 수상가옥에 살고 있는 빈민촌, 어린아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사하는 상황을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않는 화자가 선행을 하는 이유도 드러난다. 불공평한 사회에 질문을 하고 용기를 낸 화자의 선택들에 응원하면서 읽은 이야기이다. 작가의 개성있는 이야기와 주제가 전해지는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서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며 사회초년생에게는 더욱 도움되는 내용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악의로 다가서는 사람을 분별해야 하는 이유도 매만진 작품이며 용서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했는지도 보여준다. 부록으로 실린 내용과 목차마다 악보도 흥얼대면서 읽은 소설이다. 곡의 분위기만으도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는 영화음악과 다름없었던 소설이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라 흥미로웠던 소설이다.
누구도 주변을 보지 않았고, 누구도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
같은 속도, 같은 방향, 같은 방식... 그곳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67~68
이 세상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153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225
원망은 상대를 갉아먹기 전에 먼저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 P287
절망 속에서 나아가는 힘... 그래서 용서할 수 있었다. - P288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 긴장이 풀리고 잠이 쏟아졌다. - P292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 P225
누구도 주변을 보지 않았고, 누구도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 같은 속도, 같은 방향, 같은 방식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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