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기심이 없는 도시 사람들에 대해 언급된다. 도시의 형상을 궁금해하지 않는 도시 사람들을 지적한다. 도시적 삶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음을 작가는 예리한 시선으로 지적하면서 지리에 대한 수평적 호기심이 없는 도시 사람들, 역사에 대한 수직적 호기심까지도 중대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도시와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게 된다. 관광을 유도하는 문구가 아닌 진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골목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의 진짜 모습은 골목길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광지에 포장된 화려하고 수려한 풍경이 아닌 솔직한 그들의 삶을 보는 여행 코스를 즐기면서 느끼는 여행이 더 오랜 기억 속에 자리잡기 때문이다.

수직적 호기심을 역사적 관심으로 이끌어놓는 작가이다. 8.15 광복절이라 도시 대로변에는 깃발들이 나부끼면서 역사적 의미를 잊지 않도록 이끌고 있지만 도시 사람들은 얼마나 역사적 관심을 가지면서 생활하고 있을지 이 소설의 문장을 통해 의문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호기심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상흔을 남긴다. 무채색과 같은 삶이며 향기가 없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는 삶이 이끄는 열정은 깨어있는 인생이 되기에 소설을 읽다가 이 문장에 깊은 방점을 찍게 된다.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가는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그림자의 대화에 진중해지면서 인생에서 추구한 것들과 지금도 소중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간결하게 정리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중심을 잃고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한 시대에 지금도 인생을 잘 가꾸는 사람인지, 나만의 정원을 잘 가꾸어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딱딱한 목소리를 가지고 메마른 목소리를 지닌 채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무엇도 허투루 무심하게 흘려보내지 않게 하는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향기를 잃지 않게 하는 힘, 건조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살아가지 않는 따뜻하고 온기가 흐르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기에 두 손 가득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바라보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러한 중대한 것들을 잃지 않게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호흡시켜주는 든든한 거목이 된다.

깨닫는 사람이 있는 반면 깨닫지 못한 채 인생을 끝내는 사람도 있다. 여자의 반쪽밖에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 인물이 등장한다. 반쪽만을 알고도 전체를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인생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진다. 장수라는 의미에 매료되어 오래 사는 인생이 성공이라고 착각하지만 주어진 삶을 짧게 살든지 오래 살든지 어떻게 지금 살아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인생의 반쪽만을 알고 생을 마감하는 부류가 되지 않도록 지금도 지독하게 소설을 부여잡는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깨달음을 재독하면서 새롭게 보이는 문장들이 있어서 얼마나 재독의 향연이 주는 맛에 점점 빠져들어간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이제는 진중하게 음미하게 된다.

본체는 추방되고 그림자가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흐름을 차분히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둘러보게 된다. 추방된 본체는 무엇들이 있으며, 안락하게 벽 안에서 안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냉철하게 일깨우게 된다. 행복해지기 위해 전자기기를 전부 차단하고 온전하게 묵상과 명상으로만 채우는 하루의 일과표를 책을 통해서 읽은 적이 있다. 직접 체험한 사람이 느끼는 행복이 무엇일지 궁금해지면서 추방된 본체의 것들을 되찾는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소설도 그러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세상의 것들은 온전히 추방되고 중요한 깨달음을 소설을 통해서 읽는 사람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중대하고 소중한 소설을 읽는 시간은 그렇게 평화롭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숏폼, 소비를 주도하는 소비지향주의에 혼탁해지지 않는 힘이 소설을 읽으면서 발견하는 여정이 탐험가와 같은 시간이 된다. '오늘도 발견했다!' 외치면서 진짜 필요한 것과 이로운 것을 추방당하지 않도록 발견한 소설이다.



도서관장과 카페 여사장, 화자의 라이프스타일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소설로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한 사람들의 사치스럽지 않게 살아가는 방식과 검소한 생활이 유유하게 흐르는 작품이다.



어느 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네. 내가 여자의 반쪽밖에 보지 못했다는걸. 100



본체는 불필요한 것, 해로운 것으로 치부당해 벽 바깥으로 추방돼요. 그림자들이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 P178

이곳은 높은 벽돌 벽의 안쪽일까, 아니면 바깥쪽일까. - P426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흘러가는 그림자 같은 거야. - P13

내가 생활했던 그 도시는?... 많은 말들이 오가고, 너무도 많은 의미가 만들어져 흘러넘쳤다. - P52

당신이 인생에서 무얼 추구할지는 당신 소관이죠. - P125

도시 사람들... 지리에 대한 수평적 호기심이 없는 것과... 역사에 대한 수직적 호기심도 딱히 느끼지 않는 듯했다. - P94

목소리는 딱딱하고 메마르고 잔향이 없어서 내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