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박완서 산문집 『호미』 글들도 함께 읽기에 좋았다. 청소년 추천도서로도 손꼽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의 내용이 산문집 『호미』에서도 등장한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참혹함의 실상을 소설과 <아웃랜드> 넷플릭스 시리즈를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흔적 없는 삶> 넷플릭스 영화와 <눈먼 암살자> 세계문학전집 소설을 통해서도 충분히 뼈저리게 느끼는 실상을 보여준다. 누구도 온전하게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전쟁의 참상을 여러 작가들의 예술성을 통해서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70이 넘어서 쓴 글이라고 말하면서 시작하는 글에서도 여전히 박완서 작가에게는 깊은 상흔으로 남겨진 전쟁의 후폭풍이 산문집의 글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내 소설 속의 식민지 시대'제목으로 시작한 글에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이 등장하면서 식민지 정책들이 있는데 언어말살, 창씨개명, 강제징용, 정신대 같은 만행은 다시는 이 지구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글귀에 방점을 찍었던 문장이다. 만행이라고 강한 어조로 언급한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의 참상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국주의가 다시 세계화되는 분위기에 누가 어떤 이유로 동조하는지 적극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이에 대한 책들도 출간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지금도 극우주의가 어떤 형태로 이 시대를 위협하였고 지금도 위협하고 있는지 여실히 관찰되는 시대이다. 깨어있는 국민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해진다. 만행을 저지르고자 계획하고 동조한 이들의 모습에는 당당함이 거침없이 드러나고 부끄러움은 사라진지 오래된 모습이다. 그렇기에 전쟁의 참상, 폭력의 진실이 무엇인지가 더욱 중대해진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이 필요해지는 시대이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 역사를 잊은 시대는 다시 반복되는 역사를 맞이할 수 있음을 지금 이 시대 우리는 경험하였기에 더욱 경각심을 가지면서 둘러보게 된다. 8월 15일 광복절이 다가오면서 서점가에는 추천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박완서 오빠가 경험한 전쟁의 후폭풍에 대한 내용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에 등장한다. 전쟁 희생자의 고통도 참담하지만 지켜보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제2의 피해자임을 70이 넘어서 쓴 글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참담함을 호소하는 문장에서 마주하게 된다. "70이 넘어 쓴 글들이다... 이 나이 이거 거저먹은 나이 아니다." (4쪽)
김매듯이 살아왔음을 추억하는 작가의 글이 인상적이다. 호미자루를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던 지난날들을 기억하는 작가의 글에 매료된다. 거둔 수확물이 보잘것없어도 늘 자신의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었음을 큰 복으로 알았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에 감동받는다. 축복하는 기도,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작가의 문장을 통해서도 공감을 나누게 된다. 김매기가 무엇인지 곰곰이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반복되는 먹고살고자 일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떠올린 박완서 작가의 기나긴 70 인생과 지금 우리의 인생도 함께 숙고하게 하는 문장이다.
딸을 모범 주부로 살아가도록 가르친 것을 후회하는 글도 언급된다. 더불어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허용한 자유의 범주가 고작 소나 말에게 말뚝이 허용하는 자유였음을 비유하는 글도 <엄마의 말뚝>이라는 작품의 글과 함께 인용된다. 지금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삶의 둘레가 얼마나 작은 세계인지는 스스로 깨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작은 세계일 것이다. 자유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자에게 자유가 크게 작용한다. 자유가 어느 정도 허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둘러보는 힘을 불어넣어 준 책이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