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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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밀란 쿤데라 소설들을 좋아한다. 아직도 작가의 작품들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의미의 축제』를 읽었기에 신간으로 나온 작가의 두 글은 머뭇거림 없이 펼치게 된다. 특히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를 읽었기에 작가가 번역본의 해석을 흡족해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대대적인 수정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언어가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작가에게 큰 상실감이었을지 충분히 짐작하면서 『89개의 말』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개인 사전이 탄생하게 된다. 작가가 중요시한 말, 골치 아프게 한 말, 애착하는 말들을 모은 개인 사전이다.

막연한 마음으로 펼친 89개의 말에는 작가가 전하는 분명한 고유성을 지닌 언어라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죽음을 상기시키는 푸르스름한 어휘와 존재와 비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을 담는다. 이 문장은 어떤 내용 중에 등장한 언어인지 사뭇 궁금해지면서 작가 책 릴레이 독서 목록에 추가시키게 된다.



작가가 기록한 언어 사전들은 가치성이 부각되면서 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이끈다. 특히 소설의 의미와 함께 작품들이 전개하면서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했을 작가의 고뇌까지 충분히 전달되기까지 한다. 작가의 시선 끝에서 달아나는 몇몇 정의들이 소설 작품에서 무엇이었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을 통해 깊숙하게 오랫동안 응시한 작가의 정의가 얼마나 긴 시간 이야기되었는지 재독의 시간으로 이어지게 한다.

존엄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을 가진 사람을 죽은 사람이 가지는 부질없는 욕망임을 강조하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절모에 대한 설명이 소개되면서 읽었지만 다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작가의 여러 작품들과 함께 작가의 89개의 말을 곁에 펼쳐놓으면서 읽으면 또 다른 독서의 맛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 언어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의미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어리석음을 설명하는 사전 내용에서 더욱 그 차이는 부각된다. 적절한 언어로 번역이 되어야 하는 이유, 번역본이 얼마나 부실한지 언급하는 작가의 의중이 전달된다.



밀란 쿤데라 작가의 아버지가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재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말하는 장면, 음악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내용도 인상적이다. 피상적이지 않고 깊게 조우하게 하는 언어들의 향연이며 철학적인 사유로 이어지게 하는 내용들이라 긴 시간을 공들이고 숙고하게 하는 89개의 말을 만난 소중하고도 의미 깊은 책 한 권이다. 부조리한 것과 어리석음을 혼동하지 않도록, 본질적인 것과 중요한 것을 혼용하지 않도록, 절대적인 것을 완전히라고 번역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설명된 작가의 사전이다.

프라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를 통해 작가가 설명하는 각주의 글까지 빠짐없이 읽으면서 프라하와 체코를 미비하지만 이해하게 된다. 소국과 대국의 문화와 역사, 숨기고 있는 대국의 의도까지도 충분히 감지하면서 읽을수록 작가가 평생 간직한 체코와 문화적 자부심을 프란츠 카프카의 독창적인 작품성과도 접목하면서 더 조밀하게 이해한 글이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에 손을 대는 것인 만큼, 형이상학적인 말들(절대, 본질, 존재 등)은 인용될 권리가 있다. ‘절대적으로‘라고 해야 할 것을 ‘완전히‘라고 하거나, ‘본질적인‘을 ‘중요한‘이라고 하거나, ‘부조리한‘을 ‘어리석은‘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 P19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재하는 어리석음
- P23

"마치 죽은 사람이, 존엄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으로, 엄숙한 순간에 맨머리로 있고 싶지 않았던 듯이"...중절모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전체를 관통한다.
- P25

정의 / 소설은 종종, 달아나는 몇몇 정의를 오랫동안 추적하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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