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릴리 얘기를 할 때면 릴리는 살아나요." (47쪽) 이러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이제는 만날 수 없고 존재하지는 않지만 기억나는 이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살아나는 존재에는 단어가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잃어버린 단어들이 되지 않도록 기록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설에는 잃어버린 단어들을 보관하는 트렁크가 있고 자신의 트렁크를 사전 같다고 말하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관습에 억압당하는 이들이 있다. 관습의 틀안에 갇힌 여성들이 있는 반면 의문을 가지고 자유를 찾고자 스스로 움직이며 역동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영화와 시인, 소설가들에게서 이러한 움직임은 언제나 감지된다. 관습의 당위성을 의문스럽게 사고하는 습관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습이라는 갇힌 알에서 깨어나게 해준 계기는 책이었다. 이 책도 같은 맥락을 이어가는 책이 되어준다.
길고 부자연스러운 옷차림으로 허리를 옥죄고 부풀어 오른 긴 치마를 입었지만 역동적이고 자립적인 사고를 지닌 여성들은 관습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에서 글쓰기를 통해 계속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여성의 움직임은 현대 여성 의사에게서도 발견하게 된다. 부당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직시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목소리를 외치는 책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노력과 의지를 가지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움직임을 만나게 된다.
거짓된 만족을 주는 거짓된 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무신경했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고모도 기억나는 인물이다. 있어야 하는 말들이 없다는 것과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인물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결혼을 안 할 계획이면서 편집자가 되는 목표를 가지지 않는 이유가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여자이니까 포기하는 것들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공평한 기회가 부여되는 사회는 아니기에 이 소설은 지난 시대의 이야기로만 밀어 넣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아직도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단단한 사회적 벽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기사들을 통해서 확인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여자 노예'라는 단어는 없어야 하는 단어라고 말한다. 노예라는 단어는 오랜 세월 존재한 단어이다. 이 노예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유하게 깊은 뿌리를 내리는 사회적 계급이기도 하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 기회 박탈이 누구에 의해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호기심과 견해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고모라는 인물이 조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자극을 불어넣는 소설이다.
생각하는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고모와 조카를 세워놓고 보여준다. 자신이 누구의 노예인지, 자신은 누구의 주인인지 명확하게 볼 수 있는 힘은 필요해진다. 누락된 단어들이 있다. 그 단어들에는 예리한 정신이 숨겨진다. 누락되어 증거가 된 단어들을 현대사회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몰입하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다. 시간이 가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 경험을 하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사랑하라는 말을 성경에서 많이 듣는다. 하지만 인간은 사랑보다는 질투와 미움, 시기, 분노에 더 쉽게 반응하면서 다툼과 전쟁, 살인을 너무나도 쉽게 저지른다.
자비라는 단어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하는 단어는 자비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되어버린다. 온전하게 자비와 사랑이 우리들의 삶에 가득해지길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여야 하는 단어가 된다. 이 소설에서 몇 번이나 덧칠을 하게 하는 단어들과 인물들이 있다.
관습에 의해 누락된 단어들은 무엇인가. 제한되는 단어들이 왜 권력을 쥔 그들에게 불편한 단어가 되었을지도 질문을 하게 된 소설이다. 집요한 싸움을 하는 모습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면서 그들이 위협적이라고 여기는 단어들의 실체도 선명해진다.
거절당한 단어들이 현대사회에서도 존재한다. 통과되지 못하는 단어들이 있다. 관습에 갇힌 이들이 보지 못하는 단어들을 의미한다. 그것들을 추론하는 재미로 이어진 소설이다. 만약 내가 단어라면 어떤 종류의 쪽지에 적히게 될지 질문까지도 던지는 소설이다. 우리는 어떤 쪽지에 있는 존재일지 자문할수록 더 매력을 느끼게 된 소설이다.
남성의 관점에서 버려진 단어들이 있다. 여성의 단어들과 부인, 창녀에 대칭하는 남성 대칭어는 무엇인지도 질문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다.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의문을 던져야 한다. 관습은 그렇게 노예를 길들이기 때문이다. 평등성을 잃어버리는 관습들을 하나씩 꼬집어보는 활동까지도 이어지게 한다. 문학은 다시 읽어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다. 작가만이 펼치는 문학성에 다시 매료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란 삶이었을지, 아니면 그저 받아들인 삶이었을지 궁금했다. 348
처녀, 아내, 어머니. 우리가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온 세상에 대고 떠벌렸다. 처녀의 남성 대칭어는 뭘까? 그런 건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부인, 창녀, 전문 불평꾼의 남성 대칭어는? 369
계속 싸우는 일.(전쟁) 대체로 우리는 죽어가는 일을 하고 있었던 거죠. 530
보어 전쟁에서 형제를 잃은 롤링스 씨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는 아무런 영광도 없다고... 430
쓰고 버려지는 계층들 436
결혼을 안 할 거면, 왜 편집자가 되는 걸 목표로 하지 않니? 스웨트먼 씨가 물었다. 전 여자잖아요. 120
함께라면 우린 그 말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