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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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의 단편소설이 구성된 한강 『디 에센셜』이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을 읽고 잔뜩 몸을 움츠렸던 것이 안타까워진다. 단편소설과 시 다섯 편을 읽으면서 읽었던 여러 소설들을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가 꾸준히 긴 시간 응시한 것들이 무엇인지 총체적으로 상기하는 귀한 시간으로 인도된다.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에 이어 읽은 『파란 돌』은 "오랜만에 당신을 불러봅니다." (247쪽)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화자인 그녀는 연약한 아이의 어머니이며 한 남자의 아내이다. 그런데 그녀가 부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가 부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와 같은 나이가 된 그녀가 그를 오랜만에 부르는 이유가 하나씩 들추어지면서 그녀가 밤의 나무들을 의연하다고 말하는 이유, 그 나무들을 두려워한 이유들이 밝혀진다.

완강한 어조의 말들을 껍질 속에 숨기고 있는 밤의 나무들은 여전히 검고 묵묵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일 년 전에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밤의 나무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각진 노끈이라는 이질적인 노끈이 목을 파고드는 고통까지도 그녀는 충분히 짐작하기도 한다. 기다란 끈이 지닌 잔혹한 폭력성에 화들짝 놀라버리는 이유까지도 소설은 서서히 보여준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사전 징후라고 감지되는 것들을 그녀는 자신에게서도 감지되었음을 나열한다. 왜 그녀는 자살을 계획하고 삶을 마감하려고 하였을지 짧은 소설에서도 충분히 감지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누군가는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많은 움직임과 삶에서 고통과 슬픔이 점철되면 누구라도 갑자기 자살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집을 떠났지만 다시 계획에 없는 귀가를 하게 된다. 갑자기 그녀를 살린 것, 문득 떠올린 것이 그녀를 다시 살게 만든 것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자가 월경을 한다는 것, 피를 흘리며 아이를 낳는다는 걸 생각하면 경이로워. 생명은 언제나 핏속에서 시작되는 모양 258

여자의 월경과 출산, 출산 후 수많은 날들을 피를 흘려보내야 하는 산모의 자연스러운 현상, 출혈하면 멈추지 않는 지난날 추억 속에 있는 남자의 병을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이름을 오랜만에 부르게 된다. 피는 생명이기도 하고, 피는 죽음이기도 하다. 어린 날 그의 죽음 소식을 감당하기가 힘들었을 그녀, 그녀의 첫사랑과 다름없는 그를 지금 오랜만에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가 그녀에게 자화상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였듯이 그가 두 번째 입원하면서 무수히 바라본 하늘에서 그가 깨달은 영혼과 무한에 대한 이야기도 그녀에게 깊게 각인된 대화로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덕분에 그녀는 이제 그의 죽음을 슬픔으로 떠올리지 않는다. 그가 꿈에서 경험한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홀가분함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를 부르면서도 자유로워진 그를 떠올리게 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느낀 그녀의 생각까지도 전해진다. 아주 짧은 시간 우리가 머무르는 생애를 깨달으면서 그녀가 기억을 등지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 버텨내고 이겨내야 하는 남은 생애를 각진 노끈, 남편의 악력, 목덜미를 압박한 남편의 잔인함을 떠올리며 이겨내야 하는 생애를 화가였던 그를 부르면서 하나씩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잔인한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그녀가 다시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녀에게 어떤 기억들을 불어넣어 준 사람이었는지 하나씩 그녀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에게도 더 나은 삶으로 전진하라고 응원을 아낌없이 던지게 된다. 타인의 잔혹함에 누군가가 생을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악인이 타인을 부수려고 할지라도 자살을 하려고 할 때 그녀를 살려낸 아이가 보낸 영혼의 목소리, 추억 속의 남자와 함께한 기억들이 그녀를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소설이지만 시어를 마주서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녀를 침식시킨 어두운 밤이 무엇이었는지 작가의 문장들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 소설이다.

목줄기에 느껴지는 손의 감축, 따뜻한 첫 열기와 악력의 기억 267

7여 년의 시간을 함께 살았던 남자. 세 시간 전에 내 목을 조르다 말고 안방에 들어가 잠들었던 사람 260



밤의 나무들은 여전히 검고 묵묵합니다 - P265

꿈. 이미 죽어있어...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몰라. - P268

기억을 등지고 나아가야 할 길은 얼마나 멀까요. 얼마만큼, 무엇을 넘어갈 수 있을까요 넘어갈 수 있기는 한 걸까요. - P267

내 방에 숨어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사실은 잔인한 사람 - P266

영혼과 무한 같은 것을 생각이나 느낌이 아닌 몸으로 알게 되었다고.
그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 P270

밤의 나무들은 의연합니다... 단단한 밑동은 뭔가 완강한 어조의 말들을 껍질 속에 숨기고 있는 듯합니다... 저 나무들을 바라봤습니다... 저 나무들이 다시 두려워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바라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나무가 너를 닮았구나,라고 당신이 말하던 것을 나는 기억합니다. 네가 그리는 모든 게 실은 네 자화상이야. - P248

여자가 월경을 한다는 것, 피를 흘리며 아이를 낳는다는 걸 생각하면 경이로워. 생명은 언제나 핏속에서 시작되는 모양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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