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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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리스 아역모델이었던 그와 그녀는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재 그들의 삶과 계층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녀는 흰 피부의 우아한 계층으로, 그는 거친 노동자 계층의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사회 계급을 상징하면서 귀천의 차이는 벽 하나 사이에 불과하다는 작가의 진중한 목소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차이를 구획하고 계급으로 나누면서 사회를 지탱한 계급을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진실'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소설이다. 두 계급을 상징한 그와 그녀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계급사회의 진실을 다각도로 매만진다. 흰 피부를 가진 그녀는 부유함의 상징이며 불면증에 시달려서 일상이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오로지 아역모델이었던 그와 함께 있을 때만 잠을 잘 수 있는 그녀는 그를 만나고자 시사회 행사를 핑계로 떠나게 된다. 그를 만났지만 그가 생활하는 집과 방은 그녀의 삶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녀의 여행가방이 그의 방을 가득 채웠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방은 매우 작은 공간이다. 그녀는 부유한 계급이라 명품 가방을 수집하듯이 구매하고 다 사용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정치인의 아내이며 연예인이다. 노동자 계급인 그의 삶은 작은방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무작정 걷는 고행과도 같은 습관들을 고수하는 고집스러운 모습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다. 출발은 같은데 왜 그와 그녀는 다른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지 사회적 문제까지도 예리하게 조명하는 작가이다.

누군가는 부유함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자신 안에 원인을 모르는 분노를 자신에게 화로 분출하면서 잠자는 동안 수많은 매듭들이 자신에게 생겨나는 그를 보게 된다. 그녀는 그와 아침식사를 먹고자 무작정 걷다 보니 배고픔에 시달려 자신의 샤넬백과도 바꿀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지경에 놓일 정도로 미칠 듯이 걸었던 경험이 없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가 놓쳐버린 것들과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반면 그가 놓친 것들과 그가 지속적으로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도 소설은 서서히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놓쳐버린 것들에는 그녀가 만나지도 못한 자신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살해한 그녀의 아이들을 인지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연쇄 살인마라고 명명한다. 왜 태어나지 못하였는지 그녀의 대학교 시절 사건들과 시어머니의 남아선호사상과 남녀차별 문화까지도 작가는 매섭게 고발한다.

태아를 생명으로 인식하였던 그녀는 자신의 과오들과 어쩔 수 없는 사건들의 결과로 생긴 아기들을 쉽게 지워버리지 않은 여성이며 어머니이다. 한 생명을 낙태하고 낙태하기까지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과정까지도 소설은 펼쳐놓는다. 반면에 생명을 잉태하게 주도한 남자의 무책임과 무모함을 의대생인 남자의 말과 태도에서도 고발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시어머니와 남편이 보이는 딸을 손녀를 대하는 태도까지도 놓치지 않는 작가의 섬세함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와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고통과 아픔과 그리움, 죄책감에 세월이 흘러도 낙태된 아이를 그리워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듣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던 낙태 수술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여성은 없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내가 연쇄 살인마라는 사실" (36쪽) 불면증의 원인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할수록 놀라웠던 작품이다. 또 다른 원인이 나타날수록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흐름에 책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에게 외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후반부까지 몰입하면서 읽었던 소설이다.

그녀에게는 그리운 딸이 있다. 딸이 죽기까지 보냈던 추억들과 죽음을 대처하는 남편의 태도에도 놀라움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남아선호사상과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아버지의 태도에서는 부성을 찾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보면서 남편을 어떤 양육태도로 키웠는지도 알게 된다.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유리벽에 갇힌 그녀는 불면증이라는 현상으로 그녀의 고통들이 드러난다. 그녀의 몸에 구멍 난 고통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가 분노의 대상을 찾지 못해 자신에게 화를 낸 다양한 고행들이 그의 구멍이 되었음을 소설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그의 산책은 노동이나 고행에 가까웠다... 몸 안의 알 수 없는 분노를 해소하는 것... 누구에게 화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에게 화를 냈다. 밤에 잠을 자는 동안, 몸 안에 수많은 매듭이 맺혔다." (49쪽)

아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게 되는 과정이 그녀의 불면증을 치유하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숙면을 할 수 있는 그녀로 거듭나게 된다. 그녀가 그를 향했던 마음이 외면당했던 이유도 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라진 그의 어머니, 죽기 직전에 아들에게 말하는 아버지의 언행들이 거친 사건들로 그를 날카롭게 할퀴는 상처가 된다. 그녀에게도 팽팽한 피부가 인생을 이긴 것처럼 속일지는 몰라도 그녀 눈 안에 있는 아픔은 지우지 못하였다고 작품은 전한다. 보이는 것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에 쌓인 아픔과 슬픔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매만지면서 그와 그녀를 통해서 들려주는 소설이다.

운명이 세운 시간의 각도를 포기하고 스스로 우주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백발의 요가 강사가 말해주는 말을 기억하게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린아이를 꼭 껴안아주라는 말의 의미를 쉽게 잊어서는 안되는 작품이다. 상실의 상처를 치유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고행의 시간들을 보냈을 사람들에게 진중한 말을 건네주는 말이 된다. 무수히 많은 기다림을 경험한 그녀가 살아간 방식은 수동이 아닌 능동의 태도였다는 것을 서서히 보여준다.

그의 아버지는 식칼 같기도, 굶주린 들개 같기도, 고양이 발톱 같기도 했다는 문장도 기억에 남는다. 어린 시절의 아이와 어른이 된 삶에 무수히 많은 구멍들의 원인을 찾아내는 시간은 필요해 보인다. "인생에 행복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법" (62쪽)이라고 말하는 이유까지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들의 선택들을 유추하게 된다. 더불어 거짓말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이 어떠한지도 소설은 언급한다. 거짓말은 신선하고 아름다워 입에 잘 맞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입은 옷은 전부 진한 회색이라고 설명한다. 노동자 계급의 상징이며 그의 노동은 땀의 냄새로 얼룩진 노동자의 삶이 된다. 그의 땀 냄새는 나무집 냄새라고 작가는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선택한 삶에는 작은 집, 작은방, 진한 회색옷들이다. 무엇에서도 탐욕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조되는 그녀의 남편의 삶과 언행들은 교묘하고 계략적이다. 거짓말로 얼룩진 남편의 언행들과는 그의 삶은 대조를 이룬다. 그녀와 그의 이야기에서 상실과 상처, 아픔과 슬픔, 그리움들이 혼재하지만 진짜 삶을 선택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를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 작품이다. 그녀의 아들이 남긴 빵조각들을 통해 그녀가 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 그녀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는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사회 계급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같은 침대에서 출발했으나 지금 그녀는 흰 피부를 지닌 우아한 계층이고, 그는 거칠고 난폭한 노동자 계층인 것이다. 49

수많은 명품을 샀다. 남편은 그걸 보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걸 다 쓸 생각이야?" 쓴다고? 쓴다는 게 뭔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이나 콩쿠르 수상작 문학 전집을 넣고 다니면 이것을 쓰는 것인가? 그녀는 이 명품들을 전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가져가서 약간 과장된 부러움을 끌어낼 작정이었다. 43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거짓말은 신선하고 아름다워 입에 잘 맞는다. - P14

그가 입은 옷은 전부 진한 회색. 땀 냄새는 나무집 냄새였다. - P41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린아이를 꼭 껴안으면 돼요. - P52

운명이 세운 시간의 각도를 포기하고 스스로 우주가 되고 싶었다. - P51

그녀도 파리에 ‘진실‘의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부유한 사람이 있고, 귀천의 차이는 벽 하나 사이에 불과했다. - P43

두 사람의 사회 계급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같은 침대에서 출발했으나 지금 그녀는 흰 피부를 지닌 우아한 계층이고, 그는 거칠고 난폭한 노동자 계층인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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