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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4 ㅣ 소설 보다
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평점 :
서장원 『리틀 프라이트』, 예소연 『그 개와 혁명』, 함윤이 『천사들』 소설들을 2024 여름에 만난다. 소설들과 인터뷰 글들이 구성된다. 소설가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게 되고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였는지도 들을 수 있는 글들이 소설들과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무더위에 지치는 2024년 여름이지만 이 책표지 디자인은 더위까지도 날려주는 디자인이라 마음에 들어서 고른 소설집이다. 하나의 소설들을 펼칠수록 새롭고 자극적인 질문들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함윤이의 『천사들』에서는 오디션을 보고 있는 현장이다. 세 팀의 오디션을 모두 보고 나서 "각각 다르게 마음에 들어. 잘한 걸 떠나서 다 좋다고." (131쪽)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하나만을 고르라고 선택을 강요하고 하나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에서 각기 다른 개성을 품고 자신의 연기력을 보여준 세 팀 모두에게 아낌없이 인정하는 모습이 좋았다. 실력이 부족해서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경쟁이라는 사회구조에서 기회마저도 주어지지 않아서 자신의 날개를 달지 못하는 수많았던 사람들의 기회들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으로 남는다. 잘했다는 것을 떠나서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의 관점을 길게 사유하게 한다.
청소하는 일을 하시는 목 이모님은 쉴 때마다 흑백 영화를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나리오 지망생들은 각종 계급과 연령대의 사람들을 두루 경험해야 한다는 시나리오 입문서에 의해 그녀에게 접근하게 되는데 악취로 뒤덮인 자신들의 의도를 간파당했는지 모른다는 마음까지도 소설에서는 언급된다. 관찰하기 위해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 취득하고 이용되는 누군가의 경험들을 악취나는 의도라고 말하는 작가의 시선의 끝도 예리하게 움켜쥐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독특하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천사가 등장하는 오디션이다. 10년을 만난 연인들이 어떤 장면을 구상하고 대화를 나누며 천사는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게 된다. "천사는 관계에서 태어나. 관계가 끝나면 천사도 죽어. 천사도 죽는 건 싫으니까 연인이 헤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 애초에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조차 상상하지 못해." (106쪽) 연인들이 시작하면서 천사가 태어나고 연인들이 헤어지면서 천사도 죽는다는 사실과 연인은 천사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주목하게 된다. 처음 서로를 발견하였던 기쁨과 즐거움은 1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퇴색되고 감정들이 엉켜버리는 연인들이 되어버린다. 그들이 함께 살아갈 방법보다는 헤어질 궁리를 하고 있음을 오디션 내용들을 통해서 짐작하게 된다. 천사가 건네는 말들은 연인들을 향하는 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 모두를 향하는 우렁찬 말이 되어주는 대사가 된다. 우리는 모두 같이 살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지 거듭 숙고하게 하는 장면으로 남는다. 경쟁으로 누군가에게는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우리들 모두에게 던지는 예리한 질문으로 남는 말이 된다.
사랑은 연인 관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설은 연인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지만 이 오디션에는 극소수의 1% 부를 지닌 집단과 나머지 노예 집단인 99%를 향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대의 인물이 되어버린다. 착취와 눈물, 희생과 욕망으로 얼룩진 사회에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연인 사이도 다르지가 않다. 이들이 빠르게 말하는 대사 중에는 치우친 누군가의 욕망들로 얼룩진 것들이 회귀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쪽만이 이득을 취하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 균열은 연인 사이에서도 지속되지 못하는 관계로 끝나버리게 된다는 것을 이들의 오디션을 통해서 보여준다. 천사가 기억해 보라고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함께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서로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도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이다. "제대로 떠올려 봐. 너희가 거리에서 서로를 찾아낸 날 .. 내가 태어난, 발명되었던 날... 그날 너희는 어떤 새로운 문을 열었노라고 생각했잖아. 너흰 나아질 거야. 같이 살 방법도 더 배울 거야." (116쪽)
연인들은 다투고 헤어지기 직전이다. 서로 나누는 말들의 질감이 꾸준히 험악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마치 과거의 나처럼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깨워 준다. 말이 얼마나 흉포적인지 떠올리게 된다. 말 때문에 베이고 상처 입고 아프고 슬프게 되는 이유들을 연인들을 통해서도 보여주기 시작한다. 천사는 연인들이 물살에 휩쓸릴 때마다 함께 휘청거린다. 그때마다 함께 휩쓸린 천사의 고통과 위험들도 떠올리게 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천사의 노력들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아끼고 살피는 노력이 있었다면 천사까지 동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이 가져다준 예리한 날카로움에 상처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노력들을 지속적으로 행하지 않았던 연인들은 이 시대의 우리들 모두를 향하는 오디션 현장으로 남겨진다는 것을 보여준 소설이 된다. 이 오디션은 꿈이다. 기차에서 꾼 꿈이었다. 어디를 향하고 있었던 기차였는지, 꿈이었는지 소설은 마지막에 드러내기 시작한다. 도착한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곳은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장이다. 누구의 장례식인지, 꿈의 인물들과 연결되면서 천사가 사라진 이유까지도 다시 되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접촉의 모양과 달리 말들의 질감은 꾸준히 험악하다... 과거의 나처럼 흥분한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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