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시선 500
안희연.황인찬 엮음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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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는 기다리는 사람이

타는 그네

참새 무덤을 만든 사내가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고

....

비밀이 싹튼다.

허방과 실패로부터 도망가는

지네붉은

소문이 무성해지는 힘으로 봄은 푸르고

변심을 위해 반짝이는 잎사귀들이

버드나무를 무겁게 누르는 오후

여름은 승리가 아니다

흔들리는 것은 죽은 참새와 그네 위

기대래지는,

생각

버티어야 할 것은

버틸 수 없는 것들의 등에 기대어

살기도 한다

박연준.고요한 싸움 /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

안희연 황인찬 엮음




많은 시인들의 시들을 한 권에서 읽고 있다.

익숙한 시인의 이름들,

처음 알게 되는 시인들,

예상한 만큼 시집은 아주 느린 속도로 매일 읽는다.

시를 두 번, 세 번씩 읽는다.

읽고나서도 메모하면서 다시 읽는다.

시어들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다음 시를 읽기까지가 기나긴 시간이 걸린다.


지네의 수많은 다리들은 상징적이다.

지네의 붉은 등은 죽음을 응축하며

실패와 허방을 등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버틸 수 없는 것들의 등에 기대어

살기도 하는 버티어야 할 것들을 주억거리게 한다.

변심하는 봄의 잎사귀와

여름은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상징적이라 의미심장해진다.

시어가 품어안고 있는 의미들에

매료되면서 죽은 참새와 기다래지는 그네 위의 생각은

기다리는 사람과 긴 기다림이 지속되는 듯해서

허망해지는 분위기이다.

시인이 무엇을 보고 느끼며

사색하는지 시어들에서 고스란히

심정들이 전달된다.

그렇기에 씁쓸한 마음으로

시를 여러 번 읽게 된다.

<고요한 싸움> 시 제목을 지긋하게 읊조리게 한다.

혼탁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네의 깊은 심중을 우리는 모르지 않고

눈치챈 우리들은 기다림이라는

기나긴 고요한 싸움으로 버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참새 무덤을 만든 사내가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고
....
비밀이 싹튼다.


허방과 실패로부터 도망가는
지네의 붉은 등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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