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평점 :
영화감독 변영주, 역사 강사 최태성 추천도서인 역사소설이며 SF 소설이다. 반복되는 죽음의 의미와 시간이 멈춘 자신의 시계의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간 세 번의 삶과 죽음의 반복이 상징적인 소설이다. 방관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세 번의 삶과 죽음의 반복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본이 된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삶과 누군가를 살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간극이 커진다. 작은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삶의 기폭은 점차적으로 커지게 된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바뀌는 삶, 행동으로 바뀌는 실천은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 소설에서 만나는 인물에게서도 그러한 삶을 마주하게 된다. 숨어서 방관하는 자세와 적극적으로 타인을 살리는 적극성은 삶의 시간을 부여받게 된다. 그의 시계가 멈추었다가 다시 시간이 흐르게 된 이야기이다.
하나의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는 매우 중요해진다. 상반된 관점으로 하나의 사건을 보는 두 인물이 있다. 관점은 그들의 삶의 자세에게도 고스란히 영향력을 미친다. 소극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자세, 남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자세와 숨어서 100년이라는 세월을 채우는 인생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같은 장소에 같은 목적으로 두 사람의 운명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스러워지는 소설이다. 매번 바뀌는 현장의 사건들이지만 결국에는 한 사람에 의해서 모두가 죽게 된다는 사건이다. 그에 의해서 죽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소설은 조목조목 열거된다. 그의 잔혹성으로 실험 대상이 된 장군이라는 개에서부터 시작된다.
중국인, 노동 운동가, 사회주의자, 장애인,
이웃들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거나
이참에 조선인으로 몰린 일본인들,
노동자, 일본의 부락민 194
자기 아이와 여자를 지킨다는 자경단원들은
타인의 아이와 여자들까지 거침없이 살육했다. 190
잔혹함은 개인에게서 집단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가짜 뉴스에 의해 맹목적으로 믿는 집단의 광기가 역사 속에도 존재하는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광기를 역사는 숨기고 덮어주기까지 한다. 역사를 미화하는 사건들도 무수히 많음을 잊지 않게 된다. 쌓여가는 시체들과 피비린내를 그들은 어떻게 지우고자 하는지 의도를 간파하게 된다. 평범한 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기면서 더욱 식민지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마음과 무시하는 마음들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하나의 불씨가 어떻게 발화되어 산불처럼 번져서 권력집단에게 가시 같은 사람들을 모조리 엮어서 사살했는지 전해지는 소설이다. 퉁퉁 부어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의 폭력에 노출된 집단의 광기는 어떤 형태를 보이는지 확인하게 된다. 여자와 아이들까지도 처참하게 죽이는 자경단의 광기를 소설을 통해서 목도한다. 읽으면서 <소년이 온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장면들이 무수히 상기된다.
비틀린 분노와 광기, 폭력성, 잔혹성은 개인을 넘어서 집단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희생된 수많은 한국인들의 허망한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소설이다. 구전을 통해서 이미지화된 조선인들의 모습은 괴물과도 같은 모습임을 소설에서도 목도하게 된다. 아이들도 잔혹하게 조선인을 괴물처럼 생각하면서 혐오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혐오라는 감정은 폭발물처럼 위험한 감정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띠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243
민관합작 학살. 국가와 시민 199
조선인을 적으로 설정해 탄생한 국민화 전략 199
혐오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집단은 권력집단임을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그들의 목적을 위해 경찰을 넘어 자경단을 운영하면서 집단적으로 움직인 계략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 중국인, 노동가, 조선인, 일본의 부락민까지 참혹하게 희생을 당하는 무리에 속하게 된다.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아시아 홀로코스트라고 표현하기까지 하는 참혹한 현장을 과거 여행하면서 사실적으로 전달되는 이야기이다.
조작된 분노에 휘둘리는 집단이 있고 분별력을 가지고 차별하지 않는 인간성을 지닌 집단도 드러난다. 모두가 괴물처럼 변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숨겨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면서 도주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약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전체적인 문화를 예리하게 살펴보게 하는 소설이다.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놓는지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도 매번 목도하게 된다. 남북 분단이 아닌 동서 분단이 된 모양새는 참혹함이 진행형임을 보게 된다. 권력집단에 이용되는 혐오라는 감정을 이겨내는 것만이 살기 좋은 사회, 살기 좋은 국가가 된다.
살아보려고 노동 현장을 찾은 조선인들이 얼마나 차별을 당하고 무시당했는지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나의 가족만 살리는 것이 아닌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게 살리는 것이 공동체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거듭 확인하게 된다. 시간이 멈춘 시계를 지니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시계는 자기중심적인지 함께 살아가는 사계를 지닌 공동체인지 거듭 상기시키는 시간이 되는 소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띠로 연결된 것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류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작품이다.

조선인들이 폭탄을 제조해 화제를 일으켰다거나 우울에 독을 넣었다거나 여성들을 강간하고 다닌다는 말 - P218
재향군인회 / 잔혹하게 섬멸한 경험을 가진 경력자들. 전투에서의 기억과 공포감. 조선인들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 정당화하기도 - P1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