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만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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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의 가을』을 읽었기에 작가의 유고소설이라는 글귀에 머뭇거림 없이 주문한 소설이다. 『족장의 가을』이 너무나도 강하게 자리잡은 작가이다 보니 이 작품을 출간하지 않도록 저지한 사람들과 작가의 의중에 한 표를 남기면서 어떤 작품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어했는지 문장에서 수없이 찾는 날들을 보내게 한 소설이다.

바흐의 두 번째 아내의 이름을 그대로 가진 여자는 매년 8월이면 섬에 묻힌 어머니를 만나고자 4시간이라는 긴 바다여행을 하면서 섬을 찾는다. 죽기 전에 어머니가 섬에 묻어달라고 말한 이유를 그녀는 섬에서 이해하게 된다. "그곳은 유일하게 외로움을 느낄 수 없는 고독한 장소... 매년 무덤에 꽃다발을 가져가겠다는 다짐" (22쪽) 하는 그녀는 매년 같은 시간, 같은 택시, 같은 꽃장수, 똑같은 공동묘지의 어머니의 무덤에 신선한 글라디올러스 한 다발을 사서 이 여행을 반복하게 된다.

결혼 27년 차 기혼여성이며 46살인 그녀는 외로웠던 여성이다. 그 섬을 혼자서 찾는 이유와 가벼운 옷차림과 가방, 읽을 책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그녀가 갑자기 자신의 욕망이 향하는 방향으로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사건은 큰 전환점이 되면서 달라진 그녀를 보게 된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의 하룻밤의 불륜은 그녀에게 큰 변화의 시작이 된다. 매년 8월마다 섬을 찾을 때마다 그녀는 새로운 만남을 꿈꾸며 희망을 가지게 된다.

내면의 변화는 그녀가 섬을 향하는 옷차림과 신발, 장신구까지도 영향을 주게 된다. 처음 하룻밤을 보낸 남자는 자신이 읽는 책에 20달러를 끼워놓고 떠난다. 그녀는 그 돈의 의미를 알기에 분노하면서 다시 찾아올 8월이 돌아오기까지 불안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게 된다. 담배도 다시 피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불안은 일상을 깊게 강타하지만 욕망은 멈추지 않는 전차와 같아서 매년 섬을 찾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달라진 아내를 남편도 눈치채면서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을 하지만 그녀는 더욱 불안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 수녀가 되려는 딸을 지켜보면서 "창녀 같은 년"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 책 속에 끼워진 20달러를 잊지 못하면서 의미를 찾고자 남편과 대화를 나누기까지 한다. 그 사건은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피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자신이 외로웠다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않으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였음을 알게 해준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것조차도 외면하였다는 것과 남편의 의문스러운 시간들과 그의 향수로 그의 행적을 지우는 의도까지도 외면하였다는 것을 자신이 불륜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결혼생활을 제대로 응시하게 된다. 결혼의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된 그녀는 카펫 아래에 숨겨진 쓰레기들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녀와 남편이 나누는 대화 내용과 그녀가 마지막으로 분노하면서 외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남편도 이해하면서 이 부부는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어느 누구도 그때 서로가 나눈 대화를 언급하지 않는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빌어먹을! 남자들은 다 똑같아요. 모두 빌어먹을 작자들이에요."

그는 분노를 삼켜야 했다...

여자가 최후의 말을 할 때는...

두 사람은 그때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절대 그 일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97

그녀는 외롭지 않은 고독을 처음으로 섬에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이 섬을 찾은 이유와 섬에 묻힌 이유도 이해하면서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을 지닌 어머니와 자신이 같은 얼굴로 같은 모습으로 섬을 찾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혼과 여자의 삶을 지긋하게 보여준다. 왜 그녀들은 섬을 찾아야 했을까. 주도하지 못하는 것들을 섬에서 비밀스럽게 경험한다. 어머니 무덤에 가지고 가는 꽃의 의미도비밀을 의미한다. 결혼한 부부가 모두 잘 살아야 하지만 그녀와 그녀 어머니는 잘 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외로웠던 자신의 결혼생활을 이제서야 보기 시작한다. 남편의 외도를 외면하면서 자신은 섬에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섬을 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내적 심리상태는 음악과 책의 제목들을 통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드라큘라』, 『라사리요데 토르메스의 삶』, 『노인과 바다』, 『이방인』, 『화성 연대기』까지 여자의 변화된 심리상태를 대변해 준다. 욕망을 참지 못하고 사건을 일으키는 『드라큘라』 책이 등장하는 이유도 시의적절하며 『노인과 바다』와 『이방인』을 읽었던 예전의 그녀 상태와 지금의 그녀는 짧은 소설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불안과 초조에 침식당하면서 남편이 자신의 비밀스러운 삶을 알게 될까 봐 몹시 두려워하게 된다.

자유로웠던 섬의 하룻밤은 그녀의 영혼을 예전처럼 돌려놓지 못한다. 여자의 결혼생활과 남자의 결혼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하룻밤을 보낸 남자들의 이름도 모르며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보내면서 훗날 그중의 한 명은 사기꾼이면서 두 명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날의 인연을 기대하면서 섬을 향하던 그녀는 그녀 어머니 유해를 정리하여 자신의 집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오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직시하면서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하지만 익숙한 관습에 룰렛처럼 돌아가는 회전판이 되어버리면 자신을 잃은지도 모른 채 살게 된다. 자신의 외로움의 근원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결혼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유명한 어머니의 지성과 과묵함의 미덕을 지닌 여자가 섬을 찾은 이유를 두 모녀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섬의 가난이 지속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난은 더 가난해진다. 모트에서 여객선이 운행되는 변화와 호텔들이 많아졌지만 섬사람들은 더 가난하고 몸 파는 여자들이 있는 섬이 된다. 대통령이 될 뻔한 허풍쟁이 정치인과 묘지는 이익을 창출하고자 수직으로 세워서 매장하는 섬이다. 다이너마이트 폭약이 일찍 폭발하는 바람에 팔이 절단된 수많은 흑인 어부들도 묘사한다. 소금기에 부식된 낡은 택시, 가난에 찌든 마을과 오두막집들, 벌거벗은 아이들은 가난을 고스란히 흡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부유해져서 더 부유해지고 섬사람들은 더 가난해진 것을 보게 된다. 짧은 소설이지만 응축된 섬의 풍경들과 사람들의 모습은 우울하게 만든다.

그녀가 만나는 남자들과 함께 추는 춤곡들을 하나씩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볼수록 그녀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곡이 된다. 바흐를 좋아한 작가라고 설명되는 글을 읽고 바흐에 관련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책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삶을 잘 응시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순응하고 관습에 익숙해지는 것은 덩그러니 혼자만 남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수녀가 된 딸의 등장과 짧은 연애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도 이 부부와 그녀가 만난 이름조차 모르는 남자들과도 연결해서 생각하게 된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자 찢어버린 남자의 명함을 후회한 그녀의 심리상태까지도 기억나는 장면이 된다.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서 음악과 책들의 목록들도 꽤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는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명성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는 유고소설이지만 읽지 않았다면 더 아쉬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까지도 계속 읽게 하는 자극을 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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