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 장자크 상페 그림, 박종대 역자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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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은 처음이 아니다. 『깊이에의 강요』작품이 좋아서 연이어 고른 책이다. 향수』,『좀머씨 이야기』, 『비둘기』, 『콘트라바스』 등의 작품들을 집필한 작가이다. 그림도 있어서 내용과 함께 여러 번 여러 그림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읽은 작품이다. 8월 초저녁 뤽상부흐 공원 구석의 한 정자에 두 남자가 체스판 승부를 벌리고 있다. 구경꾼들도 제법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 체스의 챔피언이 있고 이에 도전하는 젊은 도전자에게 구경꾼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젊은 도전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표정도 변화가 없는 모습에는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 냉담함을 보인다. 구경꾼들은 이 도전자를 알지 못한다. 그가 체스를 두는 모습에 구경꾼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챔피언인 상대도 그의 속내를 읽어내느라 바쁜 모습이다. 구경꾼들은 젊은이를 향해 '고수'라고 하면서 젊은 도전자를 향한 기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홀로 서 있는 체스의 퀸을 보면서 감탄하는 구경꾼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고독하고도 당당하게 서 있던 퀸은 없었다." (27쪽) 체스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존재한다. 이 두 사람의 승부는 어떻게 판가름이 날까? 구경꾼들의 희망이 이루어질까?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젊은이는 새롭게 등장한 체스의 고수일까?

호전적인 욕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체스 구경꾼들이 있다. 젊은 이방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체스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과정의 기쁨과 고통이 전해지는 체스이다. 구경꾼에게 젊은이는 영웅이 된다. 젊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실행해 옮기는 태도를 보이면서 구경꾼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 젊은이처럼 두고 싶어하는 구경꾼들은 젊은이의 당당함과 자신감을 부러워한다. 나폴레옹처럼 영웅적으로 싸우고 싶어하는 구경꾼들의 말과 행동들은 젊은이를 대하는 태도와 체스의 챔피언을 대하는 태도가 대비를 이룬다. 상이한 태도에 동요된 챔피언의 불안과 고통스러운 태도를 눈여겨보게 된다. 체스의 챔피언은 결코 즐겁게 즐기는 체스가 아님을 보여준다. 은퇴 후 남은 인생까지도 공원에서 승부를 거는 고통스러운 순간들로 인생을 보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는 젊은이의 태도와 젊은이의 거침없는 당당함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복기하는 시간은 그에게 뜻깊은 가르침이 된다. 그에게 남겨진 날들은 오늘 보낸 공원에서의 날들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체스 승부는 어느새 결정난다. 승자는 자신이 방금 치른 판을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상대의 자신감과 천재성을 떠올리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더불어 상대의 젊은 패기도 되짚는다. 구경꾼들의 '질투'라는 감정과 평온을 만끽하고 싶어한다는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승부는 자신의 것이었지만 실제로 패배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렇게 인정한 이유들을 파악하는 인물의 시간이 의미 깊어진다. 진짜 승자가 누구였고 진짜 패배자가 누구인지를 깊게 조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승부의 정신적 요소를 요구하지 않는 것을 하고자 마음을 먹게 된다.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놀이를 할 생각이라고 다짐하는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된다. 젊은 날에는 승부를 거는 전쟁 같은 날들을 보낼 수 있지만 퇴직한 현재 체스를 통한 승부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해 보게 된다. 그의 내면에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평온해지는 날들을 희망하는 의지가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고문하는 체스의 승부를 직시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면서 즐겁기만 한 놀이만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스스로를 고문한다. 24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멘탈 싸움에서는 진 것 73

공원과 복잡한 거리의 풍경 그림들을 살펴보게 된다. 분주한 사람들의 무리들이 즐기는 생활들과 그가 혼자서 고독하게 혼자서 보내는 모습들을 차분히 보여준다. 그에게 체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는 승부의 순간이 그에게는 고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은퇴 생활자가 어떻게 남은 날들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림들을 보면서, 공원에서 보내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고찰하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돌연한 출발』에 실린 어두운 밤에 집필한 작가가 생각난다. 기나긴 밤에 잠들지 않고 하루를 돌아보면서 거듭나는 숙고의 시간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 발전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많은 함축적인 상징성을 전달한다. 혼자 외롭게 보내는 시간보다는 둘이 함께 보내거나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무리가 의미심장하다. 외롭지 않은 그의 다른 날들이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해보게 된다. 승부가 주는 고통을 던지고 함께 하는 삶이 주는 즐거움과 질투가 아닌 감정으로 타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보낼 것이라고 믿게 된다.



스스로를 고문한다. - P24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멘탈 싸움에서는 진 것 - P73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고독하고도 당당하게 서 있던 퀸은 없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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