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걸려온 전화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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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문맹』, 『어제』, 『르 몽스트르』,『아무튼』 작품의 유명한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작가에 대한 소개글부터 읽었기에 소설들이 가볍지가 않다. 시계공장에서 긴 시간 노동을 하고 집필한 소설들이다. <작가>라는 소설도 예리함으로 읽게 된다. 고독과 침묵과 공허를 공포스러운 세 가지 요소라고 손꼽는다. 집필하는 작가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창작이라는 고독한 수행의 고초를 여러 작가들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

<집>소설에서 이사하는 사람들이 불행이 닥친 거라고 바라보면서 슬픈 일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았다. 그때의 기분을 이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기묘한 감정을 밀어 넣는다. 찹찹한 심정으로 소설을 읽게 된다. ​

<선생님들>소설은 읽으면서 섬뜩해진다. 로알드 달 단편소설인 환상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문학 선생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줄넘기와 7년 동안의 감옥살이에도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온갖 종류의 교육을 감옥에서 받았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화자가 있다. 살인자의 관점에서 감옥과 피해자를 보는 시선은 다르다. <마이 데몬>드라마에서 악마가 된 재벌의 아들이 아들을 훈육하는 태도와 어머니를 살해하면서도 정당하다고 말하는 독백이 떠오른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에게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서 간수와 감옥, 교도소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게 된다. ​



<나는 더 이상 먹지 않는다>소설도 짧은 이야기이지만 강열한 잔상을 남긴다. 유일하게 먹는 옥수수와 강낭콩을 설명하면서 토끼고기 스튜를 손님들에게 대접하면서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 암전하는 무대가 된다. 우리가 먹는 식품과 사용하는 화학제품과 거주하는 공간에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실을 덮고 있는 거짓과 진실을 대면하는 간극에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세상을 얼마나 이해하면서 소비하고 생활하는지 소설을 통해서 상기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회상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어.

회상할게 없었던 거야.

너희 추억, 너희 젊음, 너의 힘, 너의 인생을

공장이 전부 가져가 버렸거든.

공장한 네게 피곤함만 남겼어.

40년간의 노동은 치명적인 피로감을 남긴 거야. 35

대도시의 빈민촌.

그곳이 빈민촌인 이유는 어떻게 부자가 될지,

언제 부자가 되어 다른 곳으로 갈지

알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22

<어느 노동자의 죽음>소설에서는 시계공장이 등장한다. 실제 작가의 노동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 공장은 시계와 시체도 만들었다는 의미심장한 문장은 죽음을 언급한다. 공장에서의 노동이 가져가버린 것들이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열거된다. 피로감에 빼앗긴 추억과 젊음, 인생을 보상받지 못할 공장에서의 노동을 집요하게 직시한 작가의 통찰이 전해진다. 우리의 시간도 다르지가 않다. 좋은 날들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노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된다고 경각심을 심어주는 소설이다. 인생도 소중하기에 즐겨야 한다.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추억과 젊음, 힘, 인생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노동만 하다가 회상할 것이 없는 인생으로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된다. <아침 그리고 저녁>소설이 생각난다. 소소한 것들과 정을 나누는 이웃이 되도록 다시 둘러본다. 행복의 정의를 이해할수록 넉넉해지는 일상을 더욱 세밀하게 느끼고 있다. 이 소설에서도 죽음이 자주 등장한다. 되돌리고 싶지만 조각상이 되어 돌아갈 수 없는 영혼의 이야기도 강하게 자리잡는 <북역행 기차>도 기억에 남는 소설이 된다.



<도끼>소설은 시작부터가 강열하게 기억된 작품이다. 너무나도 강하게 강타하는 작품이라 작가를 더 알고 싶어지게 만든다.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가 힘이 넘친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여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충분하다고 작품들마다 느끼게 된다. 부부의 침실에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한다. 아내는 창문을 바라본 후 뒤돌아선다. 그리고 도끼에 피살된 남편을 발견한다. 그녀는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이가 아내의 이야기와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고자 전화를 하는데 이때 아내의 기분 상태를 알려주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홀가분하다는 기분 상태, 짐을 내려놓았다는 만족감이 충만한 상태이다. 아주 오래된 짐이 사라진 기분이라는 아내의 마음을 기묘한 관점에서 살펴보게 된다. 무거운 짐처럼 서로를 눌러놓는 관계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너무 무거워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걷게 하는 관계는 비정상적인 가족관계이다. 아내의 말의 진실보다는 이 부부의 관계는 어떠한 무게감을 지닌 사이였는지에 살펴보게 한다.



짧은 소설들이다. 소설들이 생각해야 하는 시간을 요구하는 만큼 무수히 많이 책장을 덮으면서 여러 번 쉼표를 찍으면서 읽은 작품이다. 긴 시간 집필한 소설이라고 책은 소개한다. 읽은 독자도 무수히 긴 시간을 같은 발걸음으로 보폭을 유지하면서 읽게 만든다. 어떤 마음으로 집필하고 구성하였을지 문장들과 이야기들마다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유명한 작가이지만 이 책이 처음으로 만나는 시간이라 다른 작품들까지 릴레이 독서를 할 계획이다. 멋진 작가를 한 명 만나는 멋진 날이 된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버렸어.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나는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소.

그러나 이제 돌아가고 싶소. 17

나는 늙고 혼자이지만

내 집에 있으니 행복할 것이다. 23

저는 아주 홀가분했어요.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었거든요.

아주 오래전부터 짊어지고 있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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