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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평점 :

타인의 말을 공들여 듣는 사람이 존재하리라 믿는 작가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듣는 사람'이라는 책제목에도 이끌렸지만 진심이 몇 배로 가중되는 '공들여 듣는 사람'에 더욱 깊게 숨을 들어마신다. 읽는 사람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책을 펼쳐서 마주하면서 책의 말을 공들여 듣는 시간을 좋아한다. 시집과 소설과 산문집으로 익숙한 작가의 신간은 이유 불문하고 다가서게 된다.
표지 그림의 <읽는 사람> 김은정 작가의 그림도 오랜 시간 자주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글쓰기는 공들여 말하기, 읽기는 공들여 듣기라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아무 말이나 하는 시대에 공들여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공들여 들을 가치가 있음을 알기에 매번 신중하게, 책들을 고르게 된다. 듣고 숙고하면서 삶을 허투루 보지 않는 노력을 가중시키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과 작가에 대한 부수적인 설명들은 독서의 길로 성큼성큼 더욱 다가서게 한다. 뿌려진 양념들이 작가들과 작품들을 향하도록 자극을 준다.
『서평가의 독서법』의 미치코 가쿠타니의 도서도 책상에 늘 자리잡는 도서 중의 한 권이다. 더불어 이 책도 나란히 함께 할 책이다.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마시듯이 작가와 책 한 권을 소개받는 기분으로 펼치게 한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소장하는 책들 중의 아끼는 책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은 내용이다. 우연히 펼친 책은 사고의 전환으로 이어지면서 라이프스타일까지도 변화시킨다. "책은 사람을 바꾼다." (54쪽)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되면서 가치관마저도 큰 변화를 일으키는 책의 힘에 무게의 추를 달게 된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거" (54쪽)라는 변화의 첫 단추를 떠올려보면서 읽는다. 지금 생활하는 습관들에 적잖은 영향력을 준 책이라 작가의 글들에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인 내용들이 된다.
자주 먹는 사람은 괴로운 삶을 산다.
_앤드루 부르드, 『건강 식이요법』 131
아침식사를 할 때는 식사할 의도로 하지 말고,
금식을 깨는 게 아닌 듯 먹으라.
_딕 후멜베르기우스, 『식탁과 부엌과 저장실의 이야기』 127
식습관에 대한 도서와 글귀들도 함께 소개된다. 먹방에 대해서도 언급되는데 "무분별한 쏠림 현상, 획일화되는 욕망, 식탐을 조장하는 지금의 음식 문화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68쪽)라고 질문을 던진다. 먹방을 한번도 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글귀 중에도 등장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죽음의 질을 결정한다는 글에도 눈길이 머문다. 삶의 질이 아니라고 강조를 거듭하는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게 된다. <이제 곧 죽습니다> 드라마의 죽음은 강열하게 시청자를 자극하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음식도 다르지가 않다. 음식과 밀접한 질병들은 죽음과도 연계된다. 그리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다시 펼쳐보게 된다.
총 39권의 책들에 대한 글들이 구성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글도 루이스 캐럴 작가 때문에 읽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읽은 적이 없었는데 다시 책을 찾게 하는 자극을 준다. '논리가 없는 난상토론'하는 장면은 국회에서 의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라고 언급한다. 깊은 한숨을 몰아쉬게 하는 장면임을 이 작품에서도 느끼게 될 것이다. 앨리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상을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앨리스를 통해서 '성장과 모험, 두려움과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라는 "나를 마셔요."라는 문장의 매력을 같이 호흡하고자 한다. 매번 시도하고 매번 달라지는 앨리스의 모험을 충분히 만끽하도록 좋은 자극을 주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초대받게 된다. 소개되는 많은 책들을 한 권씩 읽게 만든다. 한 권씩 작가의 시선 끝을 바라보면서 만나게 될 것이다. 단단하고 야무지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