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둑 신부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6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이다. 유독 캐리스의 행적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 소설이다. 토니와 캐리스, 로즈는 친구이다. 그리고 지니아라는 또 다른 여성도 등장한다. 빼앗긴 여성들과 빼앗은 여성으로 나뉜다. 무엇을 빼앗겼을까. 지니아는 무엇을 빼앗았던 것인지 보여준다. 캐리스의 어린 시절 이름은 캐런이다. 캐리스는 철저하게 두 자아를 분리시킨다. 캐리스는 오거스트의 엄마이다. 그녀가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다짐한 것들이 있다. '겁쟁이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과 스스로 서는 법을 가르칠 것'이라고 다짐한다. 캐리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캐런의 모습은 끝없이 밀어낸다. 불러들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캐런의 이야기가 회상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어머니, 이모와 이모부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모와 이모부가 조카에게 보이는 모습에서는 냉정함이 흐른다. 듣지 않고 믿지도 않았다.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말하지만 이모는 조카인 캐런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믿지 않는다. 캐런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캐런도 같은 취급을 하면서 외면해 버린다. 처음부터 캐런을 보호할 자격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던 이모와 이모부이다.
외할머니는 상속으로 캐런에게 자신의 농장을 남기고 죽는다. 미성년자라 자신에게 남겨진 상속재산을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하고 살았다가 그것을 다시 찾도록 친구들이 도와준다. 이 친구들은 자신의 딸 오거스트의 대모가 되어주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텅 빈 카드가 되어버린 자신의 인생이야기에 토니와 로즈가 추가되면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 시작한다. 혼자만 남겨진 세상에 오거스트와 단둘이 남겨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지니아로 인해 상실을 경험한 세 여성들이 함께 지니아를 목격하면서 놀라워한다. 이들과 지니아는 어떤 관계였는지 서서히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린 시절 캐리스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자신을 맡겼던 날들을 회상한다. 외할머니와 전혀 왕래하지 않았던 엄마 때문에 처음으로 외갓집에 가게 되면서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외할머니와 엄마 사이는 어울리지 않았던 모녀 사이가 되어 더 이상 이어붙일 수 없을 지경이 된다. "나는 그 아이한테 어울리는 어머니가 아니었단다. 그 아이도 나한테 어울리는 딸이 아니었고. 그래서 지금이 모양이잖니." (455쪽) 어긋난 관계는 접점을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여성의 삶들이 펼쳐진다. 전쟁은 어린이와 어린 여성들을 무수히 할퀴고 지나간다. 전쟁은 역사적인 의미로도 존재하지만 여성의 삶 속에서도 전쟁과 다름없는 황폐함을 남긴다. 가족관계에 존재하는 전쟁의 흔적들이 증거가 된다. 지니아가 들려주는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지난 세월의 이야기에도 전쟁의 전리품들은 존재한다. 일그러진 관념으로 지니아는 자신을 망쳐버린 전쟁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타인들을 향해서 무참하게 할퀴면서 흔적들을 남긴다. 대부분이 거짓말일 거라는 짐작을 하지만 일부분은 사실의 흔적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지니아가 토니에게 할퀸 흔적들과 캐리스의 온정을 매몰차게 밀어버리고 황폐하게 만들어놓고 떠나버린 뒤 풍경도 강열하게 흔적을 남긴다. 그곳에 서있는 캐리스와 캐런은 두 자아로 존재하게 된다. 두 자아가 극심한 충돌을 일으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닭들을 죽이고 떠난 흔적 속에 남겨진 칼을 보면서 두 자아가 맹렬하게 싸우게 된다. 그때 캐리스가 캐런을 밀어내는 순간 안도하면서 캐리스가 그동안 추구한 삶의 흔적들을 하나씩 주워 담게 된다. 캐리스가 섬에서 생활한 일상생활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지니아에게 보여준 온정의 수많은 온기들도 기억난다.
한 인간에게도 두 자아가 존재한다. 악함이 선함을 무수히 이기려고 하면서 영혼을 망가뜨릴 순간만 노린다. 보호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캐런은 폭력성을 띠지만 캐리스는 그동안 수련한 것들 덕분에 죽음의 유혹을 이겨내게 된다.
지니아는 검은색으로 끊임없이 조명된다. 악함과 거짓말과 친구들을 무수히 속여가면서 남의 것을 빼앗는다. 빼앗긴 3명의 여성들이 지니아를 보면서 기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전쟁의 역사에 희생된 수많은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있었음을 소설은 거침없이 드러낸다. 자신이 출생하였던 이유들과 부모들이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해체되어버린 이유들이 서글프게 전해진다.
전쟁은 역사기록물처럼 몇 년도에 발생하고 몇 년도에 끝났다고 한 줄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그 현장에서 죽어가는 젊은 군인들과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학살과 전쟁은 끈적하게 연결된다. 전쟁을 하고 싶어서 눈을 붉게 물들이는 권력자들의 발언이 얼마나 어리석음의 반복인지 작가는 처절하게 펼쳐놓는다.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버려졌는지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빈곤하고 온전하지 못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자유를 찾아서 떠난 토니의 어머니의 사랑과 남겨진 토니의 아버지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도 눈을 돌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한쪽의 삶이 이미 무너져버린 토니 아버지는 참전용사이다. 그가 전쟁을 경험하고 나서 온전하게 결혼생활을 할 수 없었던 이유들이 짐작된다. 전쟁은 영혼을 망가뜨린다. 그리고 전쟁 때 태어나는 아이들도 다르지가 않다. 부품이 여러 개 빠져버린 모습으로 가족을 이루면서 시작한다. 남겨진 이 아이들 중에는 토니도 존재한다. 그리고 캐리스의 출생도 사생아라고 속삭이는 이모의 말을 통해서 짐작해 보게 된다. 캐리스도 오거스트에게 아빠에 대해 거짓말로 꾸며낸다. 모두가 전쟁과 연관성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에게는 전쟁은 사나운 학살의 의미만을 남길 뿐이다.
왜 이 나라가 너무 넓지 않으면 너무 좁다는 걸까?
어느 정도라야 '딱 알맞은' 크기일까? 285
역사는 건조하지 않고
진득진득해서 양손에 범벅이 될 수 있다 218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욕망 때문이다. 너무 작아서 더 많이 가지고 싶어서 시작된 것이 전쟁이다. 어느 정도가 되면 만족하게 되는지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고린도전서 말씀이 인용되면서 상황들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캐런 외할머니가 하나의 성경 말씀을 읽으며 살아간 수많은 나날들을 지긋하게 떠올리게 된다. 자신이 돌아갈 곳을 스스로가 준비한 이유도 짐작하게 된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이 믿음이나 소망보다 낫다." (455쪽) 캐리스 이름을 가진 이유가 설명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그가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의 지혜는 미련한 것이니 ... (고린도전서 3장 18 ~ 19절) 그래 이제는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알지." (462쪽) 미련한 것이라는 의미를 이러한 상황에서 이해하게 된다.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체에 대해서도 외할머니는 손녀인 캐런에게 설명해 준다. "미국에서 건너온 쓰레기. 아일랜드 놈들. 전쟁을 좋아했어. 욕심이 너무 과했단다." (467쪽) 역사에는 전쟁이 언제나 숨을 쉰다. 전쟁은 이어붙이기를 하면서 계속 되돌이표가 되는 분위기이다. 물론 지금도 우리의 숨통을 옥죄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음을 목도한다. 구석구석에서 황폐해지는 전쟁의 역사를 소설의 이야기와 함께 남겨진 생존자와 후손자들의 인생에서도 계속된다. 지니아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지니아 그녀는 누구인가. 어느 말이 진실인지 의구심이 든다. 2편에서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