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절판





2023년 알라딘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1위 도서이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특별한 도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등학교 에세이 대회에서 수상 받으면서 알게 된 16살 소녀와 17살 소년이 서로 주고받는 편지와 가끔씩 만나는 만남 중에 나누는 대화에 등장하는 특별한 도시의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곳의 기묘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그 도시의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곳은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특별한 곳이다. 소녀를 사랑한 소년은 소녀의 이야기들을 공책에 기록하면서 모든 것을 흡수한다. 사랑하는 소녀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으면서 소녀와의 교류는 멈추게 된다. 갑자기 증발해버린 소녀를 찾고자 전화도 하고 뒤늦게 찾아가 보지만 소녀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어진다. 소년은 대학생이 되었고 직장인 되었지만 독신자로 중년을 맞이한다. 그동안 연인도 있었지만 결혼으로는 이어지지는 못한다. 깊은 상흔처럼 남겨진 소녀의 존재가 너무 크게 자리잡는다.



어느 날 소녀가 들려준 이야기의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특별한 도시에 그가 존재하게 된다. 그 도시에는 문지기가 있고 그림자를 버리라는 계약조건이 암묵적으로 시행된다. 그 도시의 도서관에서 소녀를 만난다. 소녀가 들려준 모습 그대로 도시는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꿈 읽는 이'가 되고자 눈에 상처를 내고 약초차를 마시면서 오래된 꿈을 읽는 자가 된다.

그곳에서 소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소녀는 16살 모습 그대로이지만 자신은 나이 많은 어른 남자일 뿐이다. 소녀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그는 모호한 경계에 있는 존재이다. 모두가 그림자를 버리고 선택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림자는 도시 바깥에 버려진 후 죽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잊지 않는다. 자신의 그림자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림자가 추론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웅덩이가 지닌 두려움을 이겨낸다. 그림자를 자신이 살았던 세계로 돌려보낸 후 갑자기 자신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림자를 다시 되찾은 그가 어느 날 이직을 하는 이유와 새롭게 시작한 도서관장일까지도 기묘하게 전개된다. 무언가에 이어져 있음을 그는 감지하게 된다.

내가 생활했던 그 도시는?...

많은 말들이 오가고,

너무도 많은 의미가 만들어져 흘러넘쳤다. 52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15

이곳은 높은 벽돌 벽의 안쪽일까,

아니면 바깥쪽일까. 426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흘러가는 그림자 같은 거야. 13



간소한 살림과 생활력으로 살아가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인물들이 자주 눈에 들어오는 소설이다. 도서관장이었던 인물, 카페 여사장, 화자도 사치스럽지 않게 생활하는 인물들이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생활자들도 검소한 생활을 한다. 현대 도시 생활자들의 풍족한 생활습관들과는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소녀는 말한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는 것의 의미도 부각된다. 도서관장으로 적임자라고 확신한 이유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진짜와 가짜가 모호해진다. 높은 벽돌 벽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우리의 모습에도 거듭 질문을 하게 된다. 진짜의 모습인지, 그림자의 삶인지도 살펴야 한다. 무거운 쇠구슬이 되어 누군가가 밀어주어야 움직이는 그림자는 아닌지도 질문하여야 한다. 소녀가 버린 것은 진짜인지, 그림자인지도 거듭 살펴보게 한다. 감정들을 모조리 배제한 그 도시의 생활과 영속성은 낯설지가 않다.

이 세계에는 간단히 설명해선 안되는 일도 있답니다. 356



<콜레라 시대의 사랑>소설이 등장한다. 카페 여사장이 들려주는 소설의 글귀가 이 작품과도 같은 맥락을 이룬다. "그의 이야기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한데 뒤섞여 있어." (671쪽) 진짜와 가짜를 향하는 질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면에서 생활하는 화자의 다각도를 멋지게 경험하게 된다. 특히, 도서관장이었던 인물의 인생 이야기도 굵직한 맥락이 되어 전해진다. 고야스 씨의 운명은 친절하지 않았지만 그는 수많은 시간을 이겨낸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죽은 후에도 유령으로 나타나면서 도서관장직을 계승할 인물을 스스로 고르게 된다. 컴퓨터 작업을 배제한 도서관 업무도 독특하지만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한 옐로 서브마린 소년을 마지막까지도 이해해 주는 인물이다. 유일하게 아들이 도서관장에게 마음을 열었던 이유를 소년의 친아버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한다. 더불어 소년을 향한 화자의 고민에 명쾌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하루키의 소설로 제대로 맛보았다. 양자역학이 무수히 떠오르면서 소설을 이해하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었다. 침묵과 무를 지긋하게 조우하는 작가의 시선도 매력적으로 전해진다. 진짜 내가 생활하고 있는지 거듭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전해지면서 눈을 감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도 그리워하지도 않는 수많은 군중이 아닌지도 살펴보게 하는 소설이다. 호기심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그 도시의 사람들이 아닌지, 감정도 배제하면서 영원성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아닌지도 고찰하게 하는 멋진 작품으로 남는다. 매끄러운 번역과 적확한 어휘들에 매료된 소설이다.

고야스 씨에게는 운명은 결코 친절했다고 할 수 없지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그 인생을 유익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있는 힘껏 노력했다. 507


기이한 일들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가 가진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을 함구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운명은 친절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진짜 원하는 삶을 선택하는 용기와 선택과 실천력과 의지가 고야스 씨를 통해서, 화자를 통해서 전해진다.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자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현실 세계를 버리고 도서관의 꿈 읽는 이가 되고자 하는 소년의 특별한 능력을 이해하지 못한 사회와 부모도 부각되는 소설이다. 두 팔을 벌리는 사회 구성원인지도 거듭 돌아보게 한다. 기묘하면서도 마지막에는 하나로 귀결되는 멋진 이야기이다. 바늘 없는 시계탑, 분리되는 그림자, 환상적인 비실체 도시를 무한히 떠올리면서 읽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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