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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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이 이목을 끌었던 소설이다. 이야기는 짙은 슬픔과 상실로 감당하기 힘든 죽음이 등장한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는 슬픔은 저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말없이 침묵으로 자신의 슬픔을 가름하면서 가족들이 감당하고 있는 슬픔까지도 침묵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어린 동생이 기억하는 슬픔은 옅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 자신의 실수도 이야기된다. 어린아이도 가족의 죽음을 기억한다. 갑자기 예고되지 않은 사고와 죽음에 제각각 감당하는 슬픔들이 그려진다.



엄마와 아빠가 감당하는 슬픔들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물리적 거리감까지도 감당하면서 긴 시간을 힘들어한다. 남겨진 자매들도 다르지 않은 슬픔을 견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숨죽여 몰래 울어야 할 만큼 긴 시간 그리움과 슬픔이 그들 모두에게 남겨진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 소식을 경험하면서 오랜 시간 지금도 그때의 시간으로 남겨진 일들이 떠오른다. 삶 속에는 죽음이 문득 찾아온다. 그 죽음을 우리는 아무도 예견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현재가 더욱 소중해진다.

네가 찬란히 살았으면 좋겠어.

삶은 누구에게나 한번뿐이고 아까운 거니까. 227

정신적인 기쁨을

물질적인 기쁨의 우위에 두는 인생을 살 것 153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109


긴 세월이 흘렀다.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웃음을 찾기까지 가족들은 너무나도 많은 고통과 침묵과 눈물과 그리움을 그려내었을 시간들이다. 선자 이모의 죽음을 감당하고 있을 한수와 한미를 떠올려보게 된다. 뇌종양으로 투병하는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주고 싶다는 한수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마음을 합친 두 친구들의 노력들이 전해진다.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몰래 읽어가면서 추리해가는 이니셜의 인물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윤희에게>영화가 떠오른다. 용기가 필요한 것, 관습을 이겨내야 하는 것을 조명한다. 솔직한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했지만 자신들에게 소중한 자녀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전한다. 병상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에 갑자기 아들이 전하는 편지 한 통과 답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한수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편지들에서 전해진다. 다정한 마음이 필요한 이유, 다정함이 우리 모두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서 차분하게 전해진다. 선자 이모의 편지와 일기장을 건네받은 이에게도 선물 같은 시간이 된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304

이제껏 걸어온 여정의 종착지가 여기였다니.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290



가스 폭발 사건, 가족 죽음, 파독 간호사, 독일 간호사 강제송환 반대 서명, 광주 시민 학살 규탄 거리시위, 동양인이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 모습, 불안해 능숙하게 감추는 아이인 한미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인 한수가 대비된다. 서명운동을 외면하지 않은 병원 동료들, 외국어 알아듣지 못한다고 천천히 말해주는 동료들도 있다. 가난해서 외화벌이를 위해 이국땅에서 일하는 간호사, 이혼녀, 뇌종양 환자라고만 짧게 기억하는 선자 이모가 아닌 그녀의 삶을 빛나게 해 준 것들도 찾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혼자 여행 간 산에서 빛나는 자연 경관을 보면서 깨우치는 것들도 전해지는 소설이다. "우리는 모두 그 자체만으로도 태초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존재들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303쪽) 글귀에도 눈길이 머무르게 한다. 해미는 긴 시간 언니의 죽음과 상실에 침식당한다. 그 과정을 눈치챈 이모는 해미를 지속적으로 도와준다. 우재라는 친구가 이모와 함께 만난 자리에서 말하는 대화는 해미에게도 의미심장한 말이 된다. 헤매고 있는 해미를 보게 된다. 기자 생활도 그만두는 이유들도 조명된다. 그리고 해미가 치유되는 과정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이룬 결과가 곧 자신을 치유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편지가 한 통 도착한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해미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제주도로 떠난 해미에게 슬픔보다는 기쁨과 행복도 함께 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침묵은 비겁함 외에 아무것도 아닐 거니까 200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니까 107



작가의 글이 좋았다. 어렵지 않게 매만지는 많은 것들과 자신 안에 존재하는 악의까지도 섬세하게 놓치지 않았다. 악의보다는 다정함으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이겨내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만나는 소설이다. 환경운동가이며 자연보호를 위해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로 머리를 감는 언니가 있다.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힘들면 꼭 이모한테 말해야 한다. 혼자 짊어지려고 하면 안 돼." (25쪽) 말해주는 이모의 관심이 좋았다. 관심이 곧 사랑임을 소설을 통해서 만난다. 다정한 이들의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다른 사람도 적어도

나만큼은 고통스러웠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인간이 나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또렷하게 마주한 내 안의 '악의'였다.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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