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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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에 이어서 '시리즈 인 시리즈'로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서 첫출발을 한 『중급 한국어』 소설이다.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이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새롭다는 느낌으로 내내 만난 소설이다.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강의하는 시간강사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촘촘하게 펼쳐보게 한다.



글쓰기가 좋아서 작가가 되고자 했던 젊은 날들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어떤 직업을 가져볼 것인지 질문하는 장면과 친척이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볼 생각은 없나?"라고 말하는 대화에서 전해진 세상의 잣대의 기준들을 회고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을 예시로 자신을 돌아보는 주인공이다. '그동안 난 별 위에 앉아 시궁창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자신의 지난날들의 삶의 구멍을 직시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더불어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확고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꿈을 향하는 발걸음들이 있다. 그 발걸음에서 운이 좋지 않아서, 재능이 없어서 등 무수한 이유들을 나열하기도 한다. 그 꿈의 진행상태를 스스로 돌아보는 글들을 이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자서전'의 의미부터 제대로 짚어주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우리의 글쓰기가 가지는 의미와 무수히 반복되는 일상의 가치를 어떻게 기록하며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글쓰기 수업이 시작된다.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듣는 유익한 시간들도 주어진다. 더불어 화자의 일상에 자리한 어머니의 부재와 죽음이 가져다 놓은 고찰들에서 천국과 행복이라는 깨우침을 글쓰기로 전하기도 한다. 명료한 그 순간에 함께 멈추게 한다. '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행복과 고통. 구원과 타락, 영원과 찰나...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도 저 에메랄드빛 물결의 일부가 되었을까?'



작가의 이야기는 웃음도 자주 선사해 주었다. 몇 번을 웃으면서 읽기도 한 소설이다. 반면 깊게 파고들어가는 멈춤의 순간들의 고찰이 전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동을 여러 번 받았던 『중급 한국어』이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신비로운 성찰을 이 소설에서 만나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로운 순간이 찾아왔다.

모든 염려가 사라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만 같은 순간,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화자의 존재가치에 있었던 구멍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가족에게 있었던 구멍들도 하나둘씩 펼쳐 보이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이 사회에 현존하는 구멍들을 이야기들을 통해서, 때로는 글쓰기 수업 강의 내용들의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 존재에, 우리 가정에, 우리 공동체에 난 구멍을 더듬어보는 시간 (217쪽) 죽음 기억하기, 앞으로도 기억할 죽음을 관조하게 한다.



성찬식과 최후의 만찬이 가지는 의미와 '검은 빵'이라고 말하는 '다크 로프(dark loaf)'라는 검은 덩어리에 대한 강의 내용은 강열하게 자리잡는다. 뜯어 먹기 힘든 빵이지만 맛은 풍부하다는 이 빵이 가진 의미는 인생으로 비유된다. 무수히 열거되는 고통으로 점철되는 인생이라는 삶의 변곡점들이 가지는 의미를 전하는 강의내용이 이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기쁨도 슬픔도 행운도

불운도 쾌락도 고통도 모두 '있는 그대로'

'좋다 싫다'가 아니라 '풍부하다'고...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냥 사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는 것.

이 검은 덩어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220

지금까지 나에게 찾아왔던 수많은 검은 빵들을 함께 열거해 보게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이 가지는 놀라운 변화를 이미 경험했기에 이 문장들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한다. 두 팔 벌려 받아들이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한다. 삶에는 무수한 고통들이 존재한다. 가족이 주는 고통, 학교가 주는 고통, 공부와 대인관계, 취업이 주는 가중감, 글쓰기까지도 화자의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함께 공감대를 나누게 된다. 화자만큼이나 우리들의 삶에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고통과 슬픔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무엇을 떠올리며 살아가야 하는지, 계속 힘을 내야하는 이유를 만나는 소설이 된다.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톤 체호프, <맥베스>, <리어왕>, 올리버 색스 <고맙습니다>,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변신>카프카, < 난 곰인채로 있고 싶은데...>요르크 슈타이너, 오스카 와일드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재>,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오즈의 마법사>, <바리데기 이야기>,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디즈니 만화들>, <애러비>제임스 조이스 단편, <더블린 사람들>아 등장하는 소설이다. 이 한 권의 관조하는 삶이 무엇인지, 자서전의 새로운 정의까지 생각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깊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된다. 가볍지 않은 중급 한국어 수업이 되어준 소설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도 궁금해지게 한다.



내 검은 빵은 페이지 바깥에,

책을 덮고 난 다음에 비로소 존재하고

또 찾아올 거예요. 223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

되풀이만이 사랑할 만하다.

되풀이만이 삶이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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