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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2월
평점 :
자택 발코니에서 추락사망한 루이즈의 엄마는 무용수이다. 17살 루이즈는 엄마의 죽음을 의심한다. 자살도, 사고사도 아닌, 타살일 거라고 직감을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석연찮게 생각하는 딸이다. 딸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수사해달라고 의뢰를 한다. 의뢰를 받은 마티아스는 전직 형사이다. 심장이식을 받은 수술환자인 그는 자신은 선한 사람이 아니라면서 수사의뢰를 거부한다. 수사의뢰를 받고 무용수였던 루이즈의 엄마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루이즈 엄마가 살았던 건물의 이웃들부터 조사를 시작한다. 화가, 방문치료를 해준 간호사 등 점점 촘촘하게 채워지는 사실들에서 인물들이 가지는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들의 비밀들과 욕망과 슬픔들과 나락들을 작가는 작품에서 매만진다.
타살일까? 자살일까? 무수히 던지면서 읽어가는 소설이다. 책표지의 그림들이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더욱 책표지 그림들을 다시금 감상하게 된다.
번역자 / 실제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각자 비밀 하나쯤은 감추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마다 치유하기 쉽지 않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누군가는 제대로 봉합하고, ... 성장을 밑그림이 되게 만들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건강하고 순탄한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화가의 문신의 의미들도 주목하게 한다. 반자본주의를 외친 화가의 삶과 그렇게 변하게 된 이유, 쌍둥이였던 여동생의 죽음에 상실된 것들도 차분하게 떠올려보게 한다. 부자들의 낙원은 곧 가난한 자들의 지옥. (112쪽) 부자였던 화가가 반자본주의 활동을 하였다는 모순과 그의 문신이 의미하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수집하는 부동산들이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부자였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앞당겨지는 삶이 되기도 한다.
안젤리크 샤르베는 간호사이다. 안젤리크의 일상들과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녀가 선택하는 것들이 가져다준 결말은 행복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이야기를 통해서 차분히 만나게 된다.
침울한 일상. 항상 학업, 만남 혹은 연애를 통해 더 높은 곳에 오르고자 안간힘을 써왔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카멜레온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경계를 넘어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날이 찾아올 거라 굳게 믿는다. 107
나는 내 인생을 직접 연주해 내지 못하고 늘 구경꾼 위치에 머물러 있다 125
등장인물들은 상처와 상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들이 할퀴고 간 상처들을 누군가는 이겨낸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일그러진 영혼으로 쉽게 살인도 하고, 욕망에 휘감겨 계급을 상승하고자 계략을 꾸미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일상의 슬픔 속에서 쉽게 만나며 쉽게 헤어지는 반복으로 임신과 임신중절수술을 선택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심장이식수술의 기증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않게 한다. 몰카로 촬영을 하면서 비밀들을 이용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불법적인 일들도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청소년 아이의 생활도 작가는 놓치지 않고 다룬다.
권태로 점철된 눈동자. 마티아스. 전직 형사 22
여러 인물들이 촘촘하게 등장한다. 루이즈 엄마의 욕망과 죽음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수사하면서 밝혀지는 많은 이들의 비밀들을 추리하면서 읽은 소설이다. 책에 편집된 인용글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야기들마다 전하는 글들을 빠짐없이 읽게 한다. 그 의미를 다시 읽으면서 이 작품의 흐름과 전개, 인물들을 파악할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 속의 책 _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기루로 연명한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언제든 그게 나을 테니까. _ 안톤 체호프 191
우리에게는 늘 함께 지내는 동반자가 있으니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그가 상냥한 동반자가 되도록 다루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_ 장 지오노
교회의 거대한 건축물의 눈길이 갔다...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간 시대의 위정자들과 종교인들은 창조주에게 건축물을 봉헌해 전염병을 물리치고자 있다. 306
광기로 일그러진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들의 운명은 이상할 만큼 평행선을 그려왔다. 320
사람들은 그저 무리를 따라 몰려다니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아웃사이더로 몰려 소외당할까 봐 두려워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런 소신이나 개성이 없이 늘 충성 서약이나 하면서 굽실거리며 살아가는 존재들. 304
마티아스는 이제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더는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해 평생 쌓아 올린 성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351
그는 죽은 자들과의 동행을 사랑하는 법,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죽은 자들과의 대화는 그에게 늘 커다란 의지가 되어주고 있다.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