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절판


두께감만큼이나 엄청난 글귀들을 수집한 소설이다. 터키 작가의 책은 처음이 아니다. 이 작가 작품의 매력에 푹 빠져서 지낸 날들이 떠오른다. 꽤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문득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7쪽) 이야기 시작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는 예감을 가지게 한다.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페리'라는 그녀는 평생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왔다. 그러한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일어날까?

페리의 삶을 활짝 펼쳐보게 한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주부, 좋은 시민이라고 그녀는 소개한다. 하지만 이스탄불의 혼란이 곧 그녀의 삶에도 녹아 있다고 전한다. 그녀의 삶과 과거, 인생 이야기는 역사라고 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따라가게 한다. 그녀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병폐와 문화, 종교는 국가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그녀의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존재하는 혼돈으로 자리잡는다. 그녀의 인생이야기에는 깊숙하게 자리잡은 그녀의 나라의 종교와 문화, 관습, 가부장제 등이 혼재한다.

무계획적인 개발과 도시 팽창 10

국회에서 싸움질이나 하는 인간들 10

부르주아들과 뒷골목의 거지와 약물 중독자가 등장한다. 대비되는 사회계급들의 삶도 세밀하게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전한다. 페리의 지갑속에서 발견되는 사진 한 장의 비밀이 궁금해진다. 사진 속의 장소와 인물들이 하나씩 이야기를 이끈다. 페리가 대학을 중퇴한 이유와 대학교수와의 스캔들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궁금함에 책장은 쉼 없이 넘겨야 한다.

무조건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것은 키가 크려고 애쓰는 것만큼 헛된 것이었다. 431



페리의 가족사도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녀에게 나타나는 안갯속의 아기 영혼은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 왜 자꾸만 그녀에게 나타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면서 읽게 한다. 그 비밀이 드러나면서 그녀 안에 자리잡은 우울감을 이해하게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말하는 쌍둥이 아이에 대한 기억과 그녀 어머니가 4살이 아이에게 쏟아낸 뽀족한 말은 아픔으로 자리잡는다. 기억에서 지워야 하는 이유는 살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나씩 점철된 슬픔들이 어느 순간 큰 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페리에게 큰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도 지긋하게 떠올려보게 하는 작품이다.

더 많은 곳을 보았고 더 많은 경험을 한 '쉬린'은 페리와는 다른 성격이며 성향을 띤다. 위협적인 성격에 대담한 성향을 지닌 그녀와의 이야기도 기억해야 한다. 그녀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자기 계발을 하지 않고 모방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185쪽)

< 더 글로리 > 드라마의 주인공 인물이 떠오르는 문장도 마주하기도 한다. 버려졌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가슴에 날을 세우는 법을 배웠던 (80쪽) 이외에도 <너를 위한 증언> 소설을 회상해 보는 순간이 오기도 한 작품이다. 많은 책들이 이 소설에서는 등장한다. 페리가 좋아한 책들의 목록을 빼곡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순결, 모순적인 남성의 욕망, 신혼 첫날밤 소동을 피우는 둘째 오빠와 새 신부의 사연도 기억해야 하는 장면이 된다. 히잡을 쓰는 이유를 소설을 통해서도 알게 된다. 그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확신과 사랑과 평화는 광신도의 테러와 죽음에 비난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종교인들의 고난도 자주 등장하는 소설이다.

서로 다른 성향, 가치관, 종교, 인종들이 한 장소에 머무르는 세미나 수업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전하는 대화도 기억해야 한다. 언성이 높아지는 토론수업에서 이해와 다름을 인정하는 수업과 수련의 과정은 고단한 여정이 되기도 한다. 교수의 계획에 한 공간에 세 여학생이 함께 생활한다는 짐작에 페리가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 우울감을 호소한 순간들이 밀집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지켜보게 된다.

종교라는 미명으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신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단다. 144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질문보다는 답을 원한다 219

종교는 항상 남성을 선호에 왔다. 265

어제 학대받았던 사람이 오늘 폭군이 되는 것이다. 80

사랑과 경외심을 담은 증오만큼 이상한 감정은 이 세상에 없다. 303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고,... 배우자나 친구를 바꾸고 싶어 한다.....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5



교수의 세미나 수업에서 원모양으로 앉은 이유와 페리가 교수와 전화로 나누는 대화 내용은 중요한 회귀점이 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분쟁이 있고 다툼이 있고 전쟁을 치르기도 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종교가 일으키는 문제점과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은 페리에게도 불식간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녀가 가진 소심하고 모호한 성격은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 사과라는 형태를 용기 내기 시작한다.

더불어 교수의 자책하는 모습도 기억에 담아내게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자유를 찾은 교수의 모습과 선택한 삶을 진중하게 바라보게 한 소설이다. 교수는 자신의 오만함을 돌아본다. 자신의 과오가 무엇인지도 되짚는 시간을 가진다. 원망이 아닌 시간들이 가져다준 그의 집필된 책의 내용들이 답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입견이 없는 사람, 여행자, 유목민의 영혼을 가진 사람, 항상 길을 찾는 사람, 한곳에 정착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오만함이 없습니다 (314쪽)

오랫동안 조심해서 숨겨 왔던 비밀이 거의 드러나기 직전이었다. 155

옥스퍼드의 젊은 무슬림 여성 셋! 한 명의 죄인과 한 명의 신자 그리고 한 명의 방황하는 영혼 470

이브의 세 딸을 꽤 흥미롭게 다각도로 비추는 작품이다. 이 세 여성의 성향과 종교관, 성격은 멋지게 이 작품을 이끌어낸다. 사회적 문제와 국제적 문제까지도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의 장면과 대학 수업을 듣고 있다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의 철학 수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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