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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콩쿠르상 수상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솔깃했는데 책띠지의 홍보문구에 더욱 눈길이 간 작품이다. 동일한 승객들을 태운 동일한 비행기가 두 번 착륙했다는 사실은 더욱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작품의 중반부를 들어서면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한 작품이다. 책표지 디자인의 심중한 의미까지도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햇살이 가득한 화창한 하늘과 검은 하늘이 가지는 의미를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작품은 철학적인 내용과 SF 소설, 놀라운 전개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많은 목소리들을 전하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다양한 소재들과 목소리들이 인물들을 통해서, 사건 흐름들을 통해서 촘촘하게 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매우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던 <아노말리>
(작은 사체 앞에서) 슬픔은 이런 것이려니 하는 상상속 모습을 흉내내지만 실은 아무 느낌도 없다. 13
살인, 그건 능력이기도 하다. 사냥 13
내 몸은 내가 그리지도 않은 선들이 이끄는 대로 사는데 만족했다. 우리는 가장 힘이 들지 않는 저항 곡선을 따라 살 뿐... 마치 공간을 지배하는 양 건방을 떤다. 한계 중의 한계. 어떤 비상도 우리의 하늘을 펼치지는 못하리. 38
블레이크라는 인물의 등장부터가 흥미로웠다. 그의 두 정체성과 내밀한 그의 두 삶과 살인이 능력이라고 말하는 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은 이후 사건에서 벌어지는 장면도 함께 연결하게 하는 작품이다. 흑인 변호사와 백인 부자의 인물 이야기도 기억나는 내용 중의 하나가 된다. 백인 부자에게서 무심하게 흐르는 오만함과 유독한 미소, 최상위층의 부에 대해서도 작품은 목소리를 낸다. 철학적인 내용들도 대립하는 두 인물을 통해서 위트 있게 전하기도 한다. 플라톤과 스피노자에 대한 작가만의 문장도 기억에 자리 잡는 내용 중의 하나이다. 듄. 인터스텔라. 스타트렉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번역가의 글을 마지막으로 읽고 나서 작품의 마지막 마무리도 이해되는 시간이 된다.
오만한 확신. 유독한 미소. / 남부 백인. 부자 96
최상위층의 부가 서민층이나 빈민층에게까지 혜택을 끼친다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이 아직도 이렇게 잘도 먹힌다니. 127
미스 플라톤 대 닥터 스피노자. 스피노자가 졌다. 참패했다. 173
각 종교의 일방적 결정에 복종하는 고분고분한 프로그램들 284
환경을 파괴하고, 숲을 없애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 인구를 늘리고, 화석 에너지를 다 써 버린다는 것 283
자유의지와 시뮬레이션, 그리고 쏟아내는 여러 가지의 의문들도 꽤 흥미롭게 경청하게 되는 내용들도 만나게 된다. 쏟아내는 다양한 의문들. 학자들의 다양한 학설들과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며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비행기의 탑승객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작품을 만나게 된다. 코드명 3월과 6월이 가지는 의미와 이들이 서로 조우하고 대응하는 반응들도 상이하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과 아이라는 구분이 모호하기까지 하다. 어른들이 보이는 반응과 아이들이 반응하는 것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아이가 똑같은 3월의 엄마와 6월의 엄마와 생활할 방법을 제안하는 모습도 꽤 밀착해서 만나게 하는 내용이다. 확률적으로 설명하는 작가의 문장과 대조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3월의 엄마와 6월의 엄마도 기억나게 한다.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내면의 방황을 아로새길 마음도 전혀 없다... 펄떡대는 불안을 관찰하지만, 어디에 집중할지 알 수 없다. 그는 자기 것이 아닌 인생들의 매혹에 굴복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그 인생을 정확한 말로 풀어내고, 너무 가까워져서 절대로 곡해할 수 없다고 믿기에 이르면 좋겠다. 245
에이비를 향한 끌림을 소진해야 했다. 449
얼음 폭풍에 갇혀 버린 에이프릴. 460
이 시뮬레이션은 .... 궁극의 구원자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해야 해요. 440
작품은 다양한 탑승객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이들에게 갑자기 일어난 사건은 큰 혼돈의 시간이 된다. 과학자들의 명확한 설명도, 신학자들의 다양한 설명도 부족한 사건이 발생한다. 더불어 중국의 반응과 매만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반짝이는 섬광의 의미와 이들의 선택이 가지는 의미도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두 하늘이 다르다. 이들이 마주하는 시간도 다르게 전개된다. 그 시점의 다른 두 하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포용하고 밀착하면서 서로를 위하는 3월과 6월의 인물들도 있지만 대립하고 갈등하며 불안하고 다른 이름과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는 3월과 6월의 인물들도 만나게 된다. 다양한 탑승객들의 저마다 사연들도 꽤 진중한 이야기들이 된다. 사랑과 이별, 죽음, 암, 일중독자, 작가의 작품과 자살, 가족 성범죄, 동성애, 종교의 폭력성 등이 떠오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철학적인 대화들이다. 3월의 작가가 선택한 것과 6월의 작가가 답하는 대화들, 3월의 작가가 남긴 문장들을 다시금 읽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더불어 1부, 2부, 3부가 시작되는 내용에 기록된 문장들도 다시금 읽게 된 작품이다.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불행의 이름은 ... 희망입니다. 온갖 나쁜 것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죠. 인간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 희망, 인간의 불행을 오래 끄는 것도 희망... 진정한 의문은 이거죠. 439
나이듦이 가지는 위축된 마음 상태와 사랑하는 온도는 상이할 뿐이다. 그 상황들이 3월의 건축가와 6월의 건축가에게 어떠한 일들이 전개될까? 영화 편집자이면서 일중독자인 아이 엄마와 아이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그려내는 엄마의 모습과 아이가 바라는 이상적인 바램들도 기억에 남는 내용이 된다. 아이가 더 성숙해 보이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군인 아버지를 둔 두 아이가 그리는 그림들을 기억해야 한다. 엄마에게는 비밀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그것은 아이의 그림에 투영되고 전문가들은 감지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들에 대응하는 3월과 6월의 두 가족들도 기억해야 하는 인물들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나치는 순간으로 남겨졌을 일들이다.
자기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상대는 사랑하지 않는 게 답이다. 그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325
불행은 그저 얄궂게도 운이 모자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365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난다. 3월에 도착한 비행기와 6월에 도착한 비행기는 동일하다. 탑승객들도 동일하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와 같은 동일인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며 반응하게 될까? 나라는 어떠한 선택을 할까? 다양한 선택의 버튼이 앞에 놓인다. 이들의 선택을 만나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