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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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은 설레게 한다. 기대하게 되는데 그만큼보다도 더 충족되고 충만해져서 <바닷가에서> 작품을 크게 펼쳐서 보게 한다. 내가 목격했고 배역도 맡았으며 그 끝과 시작이 내게서 뻗어나가는 이 사소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12쪽) 이 작품의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역사이다. 인류가 휘저어놓은 오만과 욕망, 의심 없는 당위성으로 힘차게 걸어들어간 이야기이다.

나는 살아왔지만, 살아버린 것이기도 하다... 예전의 삶이... 무례한 건강함으로 충만하게 고동친다는 걸 안다. 13

끊임없는 불안이 무엇일지를 추측해 보며 이방인의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계속 눈을 뜬 채 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보려 하는데 13

어디든 무엇이든 전부 우리의 채울 수 없는 파괴욕으로 폐허가 되어버렸어...수천 명의 난민들이 우글거리는 돌더미. 추방 224

다른 사람들이 가졌던 것을 빼앗았느냐... 왜 그것을 우리 것이라고 부르며 이중성과 무력을 앞세워 번영을 누렸느냐... 권리가 없던 것을 얻기 위해 싸우고 못 쓰게 만들면서까지... 식민주의의 의미. 215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듣게 한다. 가구점을 한 상인이었던 난민과 망명을 원하는 노인의 이야기와 펜팔 친구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유럽인이며 케냐 정착민이었던 식민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무력을 앞세우며 번영을 누렸던 유럽인의 어긋난 욕망에 스스로가 돌아보는 이야기를 들려준 펜팔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시대는 다르고 공간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이야기에는 역사가 꿈틀거린다. 그리고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을 가지지도 못한 채 불안에 침체된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난민이 의미하는 것을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펼쳐보게 하는 작품이다. 기나긴 시간을 감옥생활과 잃어버린 가족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과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사건들에 던져진 흐름에 난민이 되는 망명을 신청하는 사연까지도 듣게 된다. 그 나라에서 만나는 또 다른 인연과의 만남과 나누는 이야기들도 촘촘하게 연관성을 띠면서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저는 아주 많은 것을 일부러 잊었어요. (314쪽) 누군가는 기억하지 않고 살기도 한다. 일부러 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의 이야기와 그의 기억 속에 여백을 채워주는 노인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이 순간이 아니라, 진짜 인생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다. 72

나의 삶을 그렇게 살아가면서... 두려움과 의지. 나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사건들에 떠맡기기 225

후세인. 상인 /그 사악한 거짓말쟁이, 그 개자식, 그 악마 272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빌린 이름으로 여행이 시작된 노인이 있다. 그의 망명 신청과 난민이라는 단어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빌린 이름을 주시해야 한다. 왜 그의 이름을 사용했을까?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질문을 쉼 없이 하는 인물도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뒤섞인 많은 인물들과 이야기들에 여러 번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작가의 작품은 또다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멋진 작품으로 기억되었다.

후세인이라는 상인을 기억하며 읊조리는 말들이 인상적이다.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의 반복되는 대사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휘젓고 간 흔적들에 파묻혀진 인물들과 사건들은 끝없는 연속성을 띠면서 난민과 망명으로까지 밀어 넣게 된다.

식민주의, 난민, 망명, 율법, 예배, 종교, 여성을 다루고 있다. 여성의 삶과 권리보다는 의무가 강요되고 재산권은 위태롭기만 하다. 여성의 사랑과 진심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사회적 모순과 종교인의 이중적 모습을 예의주시하면서 종교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참을 수 없는 가혹함을 견뎌내야만 하느니, 차라리 까져서 상처가 나고 접질린 채 조용히 사는 게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44

표리부동한 우리 삶의 하찮음을 드러내 보이길 간절히 원합니다. 344

감옥에서 반성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배울 시간을 가졌습니다. 380

상인이 종교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은 감옥에서 시작된다. 함께 암송하며 예배하는 것을 통해서 반성과 감사를 깨우치게 된다. 오만하였던 날들을 반성하며 소중한 것들을 잃고 나서 살아낸 날들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난민과 망명, 추방이라는 의미를 매만지는 작품이다. 인류 모두의 이야기이다. 오점투성이인 역사의 흔적들을 보게 한다. 욕망에 앞선 눈먼 아버지, 추락하는 어머니, 부서진 가족들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살았던 인물의 이야기도 쓰라리게 듣게 되는 이야기가 된다. 그 방 또한 외로움과 공허감, 오랫동안 조용히 거주한 자의 냄새 (395쪽) 그의 방이 그의 인생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전화를 원치 않았다... 그런 침범을 원치 않았다... (레이철) 방문이 더 좋았다. 329

그렇게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싶습니다. 393

책들이 자주 등장한다. 필경사 바트비, 적과흑, 허영의 시장, 오디세이의 노파 이야기, 일리아스. 이 책들이 등장하는 이유와 인물이 자주 언급하는 대화의 깊은 의미도 떠올리게 한다. 척박한 인생의 뒷자락을 마주하는 시간과 이야기들을 듣게 하는 작품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는 심중하다. 그리고 서로가 껴안는 위안과 환대의 순간들을 기억하게 하는 소설이다. 단순하지 않고 간결하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연결되어서 완성되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작품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적의와 경멸과 깔보는 시선을 겪으며 제 삶의 모든... 일들을 껴안고 이곳에서 살아가느라. 이 모든 세월 동안 제가 얼마나 녹초가 되었는지를 생각...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를 고대했고, 그리하여 우리 둘 다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고대했습니다.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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