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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평점 :
책표지 인물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책제목까지 쉽지 않은 소설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펼친 소설이다. 체코 작가인 카렐 차페크는 처음이었다. 두께감이 두껍지 않아서 독서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멈추는 문장들이 너무나도 많았던 작품이었다. 촘촘하게 채워지는 것들을 메모하면서 사유하면서 긴 시간을 만났던 작품이다. 만나는 작품들마다 늘 새롭기만 하다. 작가의 작품들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정원에서 나무를 가꾸는 젊은 의사에게 노신사가 찾아와 어릴 때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이 노신사에게 건네지는 옛 친구의 자서전의 내용들과 마지막에 젊은 의사와 노신사가 나누는 대화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자서전의 집필자는 죽음을 느끼게 되면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삶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첫 직장 생활과 시인을 만났던 시절과 시를 쓴 날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첫 여자친구와 과외활동하면서 만났던 친구의 여동생도 떠올리기도 한다. 사랑, 방황, 청춘, 결혼, 직장 생활까지도 회고하면서 기록된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나 자신의 삶은 더욱 완성되리라. 240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면을 기록하는 이야기는 여러 자아들이 충돌하는 모습도 보여주기 시작한다. 유년기의 결핍을 조명하기도 하고, 평생 동안 자신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타락한 추억까지도 솔직하게 기록된 글이기도 하다. 권력을 향한 야심과 출세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돌아보는 글을 만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혹사시키며 출세하는 것은 노예 상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고 기록한다. 아부를 떨고, 동료를 고발하고, 빠르게 승진하는 것이 가져다준 출세의 그림자도 작품은 놓치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 오로지 주의를 주고 명령하기 위해 존재했다. 33쪽
교통부 고위직. 부패
전쟁의 더러움과 무질서 121
전쟁이 가져다주는 더러움과 혼돈까지도 작품은 언급한다. 고위직의 부패까지도 놓치지 않고 있으며 학교의 권위와 명령이 어떠한 영향력을 주는지도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세 개의 삶, 서로 다른 존재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면 우리들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젊은 의사처럼 타인의 추악함을 알기에 그 시간조차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인생을 돌아본 인물, 나의 인생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돌아보려는 노신사의 마지막 대화 내용, 젊은 의사의 대화까지도 상당히 의미 깊은 내용이 된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시간이다 117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지는 자서전을 쓰는 남자는 의구심을 갖는 자아의 질문들로 자신의 자아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회고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글로 남겨진 것들은 놀랍기까지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시를 쓴 시절이 잠시 있었다는 것과 작품들은 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시를 쓴 시를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남자는 두려움으로 궤도를 변경하면서 안전한 궤도에 진입했다는 것과 시인으로 계속 남겨진 삶을 살 수 없었던 이유들을 회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평범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삶의 이야기에는 대조적인 내밀한 이야기들까지도 거침없이 회고하기도 한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작업이 아닐 수가 없다. 기도의 시간, 일기를 기록한다는 것, 한 해를 돌아본다는 것, 인생을 돌아본다는 것은 그만큼의 내면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다른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인생을 돌아본 남자의 글들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선과 악이 충돌하기도 한다. 다양한 자아들이 쏟아내는 목소리들이 기록되면서 현재의 자신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것까지도 짐작해 보게 해준다.
아이의 세계와 학교, ... 끝으로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마지막 장소인 퇴직 공무원의 조그만 정원과 마지막 침묵과 집중의 유희가 있다... 방울새 한 마리가... 물음을 던진다.<그래, 너는 대체 누구지?> 97쪽
인생 전체가 사실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99쪽
악인이든 선인이든... 나의 무수한 자아이다. 239
'너는 대체 누구지?' 질문하는 자가 되는 작품이다. 내면에서 싸우는 여러 자아들 중에서 어떤 인생이 그려지는 오늘을 보내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읽은 작품이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무수한 자아에 대해서도 작품은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작품에 등장하는 무수한 자아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 < 평범한 인생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