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향기 - 싱그러움에 대한 우아한 욕망의 역사
알랭 코르뱅 지음, 이선민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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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은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 그 무엇처럼 느리고 평온하게 호흡하고 있다. 72쪽

푸릇한 초록이 주는 시원함을 좋아한다. 시력이 나빠서 푸른 나무 잎사귀들을 자주 보라고 귀띔해 주셔서 푸른 나무들을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식물들과 풀밭, 숲까지도 좋아하게 된 듯하다. 고요함, 평온함, 햇살, 바람, 자연이 주는 것들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좋아하게 된다. 우연히 마주한 책. 『풀의 향기』. 이 책은 책표지부터 충분히 눈길을 끌었던 색이다. 초록 책커버 디자인. 부제인 「싱그러움에 대한 우아한 욕망의 역사」는 또 한 번 마음을 이끈다. 풀에 대한 역사들을 떠나본다.

아주 작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달리 말해 감성에 관한 나노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번 책 내용의 바탕이 된다. 132쪽

휴양지를 가거나 여행지의 정원, 신축 건물의 정원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산책길들을 걷다 보면 무심한 듯 디자인되어 있는 풀들은 조화롭기까지 하다. 천천히 걷다 보면 사계절 정원이 지닌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꼭 빼놓지 않고 걷게 되는 코스이기도 하다. 추천사 글부터 놓치지 않았다. 가든 디자이너의 추천글도 기억하게 한다.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을 디자인하는 직업도 참으로 멋진 일이라고 또 한 번 느끼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림 8편부터 만나본다. 풀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예의주시하게 된다.

풀은 인간을 바라본다. 풀은 인간에게 말을 건다. 풀이 건네는 말이 곧 자연의 말이다.(10쪽)

태초의 시대부터 조명해보는 시간들, 역사와 함께 하였던 풀들. 사유하고 있는 사람에 따라서 풀의 의미들은 매우 상의해진다. 한 집단에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풀을 해석한다. 또 다른 집단은 감성과 자연, 우주까지 확장해서 풀을 예찬한다. 독성이 있는 풀에 의한 예고되지 않은 죽음까지도 책은 언급해 준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함께했던 풀을 어떤 관점에서 느끼고 향유할지는 오롯이 우리들의 몫이기도 하다. 귀족들이나 군주를 섬기는 사람들처럼 풀을 복종시키고, 자연을 지배하고, 어떤 뒤섞임도 용납하지 않으며, 질서정연하게 줄을 세우려는 욕망.(170~171쪽)

틀에 갇혀서 인공적으로 지배하고 권위적으로 풀을 지배하려고 했던 정원들과 초원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아름다운 풀들을 함께 떠올려보게 하는 책이다.

'호빗'영화를 다시 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었던 이유였을까. 영상이 전하는 푸르른 초원의 풀밭들과 이름 모를 꽃들의 정원들까지 깊은 잔상으로 남았던 장면들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호빗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이 매우 강열하게 전해졌던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이 전해준 풀의 의미 덕분이었다고 떠올려보게 된다.

읽기 편했던 책이다. 인용되는 글귀들은 문학의 문장들이다 보니 풀이 등장하는 문장들을 다수 소개받았던 책이기도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이다. 빅토르 위고가 귀 기울여 듣고, 관조하고, 꿈꾸고, 명상하고, 숙고할 때에는 대체로 어떤 장소에 머물렀는지 책은 전해준다. 또 하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람이 건강하려면, 농사짓는 땅에 퇴비가 필요하듯 바라보고 살 수 있는 초원이 필요하다. 삶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영양분들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전한다.

뉴턴은 정원에 있는 잡초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25쪽)

여러 주제들에 대한 풀의 역사를 만나본다. 흔들림 없이 우리가 지향하여야 하는 신념들이 무엇인지도 책은 독자들에게 질문처럼 던져주는 책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기질을 이겨내고 자연과 호흡하고 영혼을 깨울 수 있는 방향성을 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풀의 역사들이다. 다양성 속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자유가 가진 의미들까지도 깊게 사고해볼 수 있었던 책이다. 물고가 열리는 시간이 되어준 소중했던 책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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