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아티스트의 홀로그림 - 밥장이 그려내는 무한 상상 여행
밥장 지음 / 리더스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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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장의 에피파니 : blog.naver.com/jbob70




책을 읽다가 책을 알게 되는 경우는 무척 흔한 경우라고 말할 것 같다.

책을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경우는 너무 흔해서 그런 경우를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더 쑥스럽다는 말을 꺼내게 될 때도 있으니까.


그 래도 나란 사람이 이런 책을 읽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 읽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디자인소호의 ‘기획자의 토요일 디자이너의 일요일’에서 나와 같이 일을 했던(내가 갑이었고 저쪽은 을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한 설명일 것 같다. 동명이인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본인이 맞을 것 같다) 담당자 (그쪽 동네의 정확한 직책을 알지는 못한다.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기도 하고. 그걸 알아서 뭐하나 싶다. 그들도 나에게 관심 없을 것이니) 가 추천하는 책으로 이걸 골랐기 때문인데, 추천했다고 곧장 구입하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어떻게 굴러들어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책장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들어 찾아보니 있는 것은 맞기에 주말 아침 잠-술이 덜 깬 상태로 간단하게 읽어보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읽어봤었고, 역시나 내가 좋아할 내용이진 않지만 때때로 이런 책을 읽게 될 때도 있었고 내용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나쁘다고 말할 수 없기에 적당히 읽고 치우기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영감의 원천이고 기분 전환의 보약과도 같은 책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주말 아침의 나른함 속에서 읽어버리기에 괜찮은 책이었다.

야박하게 굴고 싶지도 않고 괜히 빈정거릴 생각도 없다. 각자의 감상은 다르기 마련일 뿐이다.


우 선 저자의 약력을 보게 된다면 저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혹은 저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를) 알게 될 수 있는데, 이름난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인생궤도를 수정해 (다른 말로는 직장을 때려 치고) 모험적인 직장(들)을 다니며 생소하게 느껴지는 일(들)을 거듭하다 결국 자신만의 삶의 방식-태도를 찾게 된 사람인지라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일종의 확신을 그리고 여러 경험들로 인해서 많은 것들을 알(아내)고 있기 때문에 감(수)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그 내면 속에서 흔들림 없는 단호함 또한 느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내면의 풍경이기도 할 것 같다.


어 쩌면 이런 내면이 혹은 감수성이 홍대의 정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좀 더 소비적이기만 하고 형편없어졌다고 말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왜곡되어버렸고 변해버렸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한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리고 조금이라도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보려고 했던 이들이 몰려들었던 홍대의 정서라는 것은 저자와 같은 정서와 유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만의 특징과 개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삶을 최대한 재미나게 즐기면서도 나름대로의 자신만의 다른 삶을 찾으려는

읽고 보고 쓰고 그리면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생산과 소비가 그 자신만의 균형을 찾게 된

그런 식으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적당하게 뭉뚱그려 말한다면, 이것도 오해면서 편견이겠지만 아마도 그렇진 않을까?

한국적인 방식의 보헤미안들일 것이고 자유로운 영혼들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진 않을까?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 내가 큰 오해를 했을 뿐이라고 말하면 그만이겠지만.

물론, 지금 홍대는 생산보다는 소비가 더 커져버리기는 했지만(뭐, 아니길 바란다) 그렇다고 그게 그들 탓은 아니니까. 


어쨌든, 위와 같은 방식으로 홍대의 정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추측하게 되는 것 같다.


농 담처럼 말한다면 키치와 댄디로 무장하면서 자신만의 아방가르드가 있는, 그런 식으로 빈정거리기 보다는 그저 소박하게라도 자신만의 방식의 삶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정서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정서에 대해서 (어쩌면 그들과 별다를 것 없는 것을 찾으면서도) 괜한 질투로 혹은 그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생각에 그저 재수 없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재수 없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직접 만난다면 아무런 말도 못할 것이지만) 그다지 좋게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할 것이니 30대 중반이라는 조건 속에서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수성을 혹은 성적 욕망과 지금껏 읽은 것들에 대한 고백을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과감하게 혹은 가식 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욕만 하다가 돌리고 돌려서 칭찬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지나친 솔직함인지 그게 아니면 적당함인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고, 여러 가지로 자극적이면서도 거칠음이 강조된 그림-글은 분명 잠시라도 눈길이 머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30대 중반의 남성이 생각하는 성-섹스에 대해서 무척 집요하게 파고들려고 하고 있기는 하지만 (냉소적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고 솔직하기도 하지만) 그게 어떤 분석과 이해인 것인지 그게 아니면 노골적인 욕망의 까발림인 것인지는 분명치 않은 것 같으면서 그 자신이 읽은 여러 추천할만한 책들에 대한 소개는 앞선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서 보게 될 수 있는 여러 모습들을 (반복해서 말하지만)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겁고 진지하게 읽어낼 책은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커피숍 어딘가에 놓여있다면, 혹은 잠시 시간이 생겨 시간을 흘려보낼 필요가 있을 때라면 잘난 스마트폰만 바라보지 말고 이런 것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이런 말도 꼰대질이라고 듣겠지만.



참 고 : 홍대의 정서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혹은 그들의 삶의 태도를 생각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확장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그게 힘들어지게 되는 환경이 주어지게 될 것 같다. 혼자서는 가능하지만 둘이서 혹은 셋과 넷이서 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을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게 아니면 흩뿌려진 이들이 때때로 어떤 식으로 마주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게 된다. 어떤 것이 더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삶-이야기는 전혀 없는 것 같아서 그들의 삶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괜찮은 연구자가 달려들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비비꼬인 시선이 아닌 방식으로 바라보면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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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토요일 디자이너의 일요일 -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주말나기
디자인소호 임직원 일동 지음 / 디자인소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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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소호 :  www.designsoho.co.kr 





우리는 크리에이터들의 일하는 방법보다 쉬는 방식에 주목했다

늘 새로워야하기에 그 어떤 직업군보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사는 그들이, 단 이틀의 주말 동안 어떻게 너덜너덜해진 일상을 헹구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무 언가 궁금함을 그리고 어떤 호기심을 안겨주고 있는 제목(과 약간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들춰보고 읽어보게 된다면 이런저런 (감각적이고 도시적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그 빌어먹을 쿨과 시크를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별짓을 다하는) 잡지들에서 다뤄지는 가볍고 재치 있(어보이려고 낑낑거리며 애처롭게 노력하)는 내용 이상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는 디자인소호의 ‘기획자의 토요일 디자이너의 일요일’은 가벼운 기분으로 잠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읽는다면 금세 읽어낼 수 있는 분량과 내용일 것 같고 만약 실제로 기획과 디자인 계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눈길이 머물게 되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도움이나 실마리가 되는 내용을 찾는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번은 알아보고 싶다. 되도록 젊은이들이 더 공감하고 좋아할 것 같다는 내용으로 꾸며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구식이고 늙다리겠지만.


자 신 있게 말한다면, 기획과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전혀 하고 있기 않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혹은 누리는 고민과 힘겨움 그리고 여러 어려운 점들이 그저 그들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할 것 같기 때문인지 크게 다를 것 없이 우리들의 (혹은 그들과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팍팍할 때도 있고 웃을 때도 그리고 짜증으로 가득할 때도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들도 우리처럼

혹은 우리도 그들처럼

그것 이상의 모습을 찾게 되지는 (알게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업무로 인한 고충이 나름대로 혹은 그들대로의 특징이 있기는 하겠지만.


개 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꺼내게 된다면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업무로 인해서 디자인소호의 고객-의뢰인(요즘에는 이런 것도 클라이언트라는 영어로 된 말을 써야지 직성이 풀리는 일이 많다지? 그럴 바에 차라리 갑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이 되었던 적이 있었고(갑질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 지긋지긋한 인간으로 기억날 것이다), 디자인소호 쪽에서는 그다지 신통치 못한 고객이었을 것이고 (나란 사람을 겪어본 사람은 얼마나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지 잘 알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그저 상종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러 가지로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존재로 기억되었을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그들의 애환을 다룬 혹은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고 어떤 식으로 업무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다룬 이런 글들을 읽게 되니 조금은 기분이 남다르게 되는 것 같다. 혹은 그나마 약간이라도 그들의 어려움을 알게 될 것 같다.


그래봤자 이미 지난 일이고, 불만과 짜증으로 가득한지 오래되었을 것이니 이런 소리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리고 한마디 더 한다면, 그들은 그들로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나는 나대로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 그러니 싸우려면 싸울 때 얘기하면 된다. 그때 확실하게 끝을 보면 뒤돌아 말할 필요 없다.


제목처럼 기획자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그들이 어떤 주중을 그리고 어떤 주말을 보내고 있는지가 대부분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임직원이 함께 내용을 꾸며서 그런 것인지 두서없고 정돈되지 않고 있을 뿐이고 애환이기 보다는 투정으로 느낄 여기가 있을 정도로 무언가를 말해주기 보다는 군소리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기회자의 고충과 함께 그들이 어떤 업무와 업무를 위해서 갖춰야 할 점들이 어떤 것인지를,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에게 있어서도 무엇이 필요하고 힘겨운지를 좀 더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도 (충분하게) 설득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혹은 그럴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기획자이고 디자이너일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디자인 회사에서 만들어낸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내용인 것 같다.


너무 가벼움과 재미를 앞세운 느낌이 든다.

분 량이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고, 일관성 없이 여러 구성원들의 내용들이 한꺼번에 구겨넣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기에는 15,000원이라는 가격에 시선이 머물게 된다(안다.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지나칠 정도로 속물이다).


20 대 – 30대 혹은 40대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는 이들의 일상과 생각을 잠시 엿볼 수 있기는 하지만 어떤 곳에서든 그런 생각(들)이 들기 마련이고, 그런 모습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야박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저런 불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온갖 못마땅함을 말하게 되기는 했지만 칭찬할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겉 으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구김살 없이 자신들이 선택한 길에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길 힘들지라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나와 같은 형편없는 인간에 비해서는 혹은 온갖 후회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서는 좀 더 멋져 보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어떤 점에서 전혀 다른 영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 때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게 한편으로는 거기서 거기인 것을 알게 될 때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멋없는 인생을 위로하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과연 삶이 그것 뿐? 이라는 의문도 들게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어떤 것이 정답일지는, 과연 그런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술자리에서 나눌만한 개똥철학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주중을 그리고 일상을 향하는 경우가 그다지 나쁜 주말을 보내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차피 반복과 반복 속에서 무언가를 각자가 깨닫기 마련이니까. 


그게 일이든 삶이든. 어떤 것이든.


내가 아는 한 삶은 딱 그런 정도인 것 같다.




참 고 : 이런 저런 방식으로 디자인소호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항상 어정쩡하게 헤어짐을 맞이했던 것 같다. 항상 온갖 방식으로 (지랄같이 굴어서) 곤란했던 점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되도록) 좋게 일을 마무리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 이런 말을 해서 뭐하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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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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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330349064

 

 

 

심장의 비밀은 그것이 두 번의 박동 사이의 아주 짧은 한 순간 동안 휴식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서 심장의 휴식, , 바캉스는 분산되어가지고 그것의 노동과 긴밀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다.

심장처럼 노동하라. 너무나도 재미있고 창조적이며 다양한, 특히 일상생활에 너무나도 잘 편입되어 있고, 노력과 성숙의 국면들이 너무나도 역동적으로 교차하는지라 그 자체 속에서 휴식과 바캉스를 내포하는 그런 노동을 하라.

 

 

 

호기심이나 관심이 아닌 혹은 어쩌다가 손에 들어온 것이 아닌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거나 책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눈길이 머물게 된 것이 아닌

 

내 선택에 의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추천으로 인해서 혹은 권유로 인해서 알게 된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어떤 경우에는 무척 만족스럽거나(천명관 작가의 고래의 경우가 그랬다) 그게 아니면 어떤 식으로 만족스러운 부분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하거나(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괜히 읽었다는 기분을 말하고 싶어도, 추천한 사람의 기분을 생각해서 덤덤하게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의 융통성은 갖고 있으니까) 두 가지 정도의 기분이 들게 마련인데, 어쩌다가 알게 된(꼭 그런 것들에 대해서 주절거리면서 말해야 할 필요는 항상 강조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그리고 그건 오로지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일 뿐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외면일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외면일기는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다지 신통치 못한 부분도 있었기에 약간은 긴가민가한 기분으로 읽었는데, 우연하게 다른 산문집 예찬을 읽게 되니 비로소 그가 얼마나 박학다식하고 예상하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은 지나쳤거나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을 얼마나 깊이 살펴보고 예민하게 사색하고 관찰했는지를 알게 될 수 있었다.

 

쉽사리 넘볼 수 없는 영역에서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들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만 그런 교양-지성이 가능할까?

나와 같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능하지 못할 것 같다.

 

외면일기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번역자가 번역했으며, 그래서인지 조금은 부드럽게 읽혀질 수 있었는데, 다양한 관심과 소재를 갖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느슨하게라도 유사한 내용을 다루는 글들을 모아놓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관성을 찾게 될 때도 있으면서 미셸 투르니에만의 생각을 혹은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는 내용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미셸 투르니에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즐겁게 읽게 될 것 같고, 저자를 모른다고 해도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논의들이 많기 때문에 쉽게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 같다.

 

산문집이라는 것이 조금은 가벼운 기분으로 자신의 여러 생각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쩌면 무척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미셸 투르니에의 경우에는 빼어남과 탁월함 그리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모습을 쉽게 보여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짓궂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에 무척 유쾌한 기분으로 그의 글을 읽게 되는 것 같다.

 

감탄스러울 정도의 유식함 때문에 놀라움을 계속해서 느껴가며 읽게 되었는데, 과연 앎이라는 것은 어느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앎뿐만이 아니라 현명함을 얻기 위해서는 또 어떤 깨달음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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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판 키드의 추억
신현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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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처럼 하나의 추억을 얘기하면서 얘기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저자에 대해서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음악평론이나 여러 매체-지면을 통해서 문화평론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수업을 통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저자가 연구교수로 재직하는 그 대학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도 교수님이라는 기억이 더 강한 것 같다.

 

수업을 통해서 나름대로 여러 대화들을 나눴었고, 이런 저런 방식으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는 많이 귀여움을 받았기 때문인지 좋은 기억만 많을 뿐이지만 결국 짧은 인연이었고 긴 인연으로 이어지진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때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면 어땠을까? 라는 뒤늦은 아쉬움을 말해봤자 어떤 의미가 있겠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후회하고 늙어가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인지 글을 통해서 저자를 만나는 것은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반가움도 함께 느끼게 된다. 결국에는 추억을 하게 되고 옛 순간들을 기억하게 되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게 되지만.

 

저자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발표한 글들과 함께 가장 치열한 시대를 예민한 감수성으로 가득한 시절에 (흔히들 말하듯 온몸으로) 경험했던 기억들과 음악과 관련된 여러 기억-경험-생각이 맞물려지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는, 음악과 관련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고, 그리고 그 삶을 되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어떤 식으로 이어가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있는 빽판 키드의 추억은 어떤 의미에서는 운동권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세대 중에서 조금은 독특하게 자신의 시대를 살아간 이의 삶을 엿보게 되는 경험일지도 모르고, 단지 시위하고 투쟁하는 사람들만 가득했던 시절이 아닌 감수성 충만하고 다른 재미들도 가득한 때였다는 것을 알게 해주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되도록 자신의 추억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돌려서 말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능청스럽다가도 조심스럽게 감추려고도 하는 등 복잡한 기분 속에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 자신과(혹은 오직 저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어려움 없이 얘기하려고 하지만 기억-추억이 자신만이 아닌 시대와 약간은 밀접함을 보일 때는, 혹은 여러 사람들이 관련되었을 때는 되도록 말을 아끼려고 하거나 좀처럼 말하기가 껄끄럽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려고 해서 더욱 궁금증을 만들기도 하고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음악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음악과 관련된 혹은 음악을 둘러싼 여러 추억-기억들이 버무려진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빽판...’은 지금처럼 온라인을 통해서 쉽게 음악을 구해서 들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닌 때때로 큰 각오를 해야만 들을 수 있는 (혹은 구할 수 있는) 시절을 살았던 저자가 겪었던 경험들과 함께 그 경험들을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조금은 학문적인 방식으로 살펴보려는 시도가 겹쳐져 있으며,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세대인 저자의 세대(흔히 386 세대라고 말하게 되는 한때는 승리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이제는 좌절과 회의로 가득한 것 같은, 하지만 여전히 단단하고 견고함을 보여주는 바로 그 세대)가 어떤 식으로 자신들보다 앞선 세대들의 문화를 바라보았는지를 그리고 자신들의 문화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마지막으로 이후의 세대들의 문화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는지에 저자의 경험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문화라는 것이 혹은 음악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전파되었고 발전되었는지, 그 과정 속에서 저자는 어떤 식으로 그것들을 경험했는지에 대해서 흥겹게 썰을 풀어내고 있는 내용과 (굳이 그걸 하나로 엮자면 TV 방송의 발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 혹은 녹음과 기타 여러 잡다한 경험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 (음악) 장비들을 만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 이런 저런 식으로 집착하고 몰두하게 된 과정들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경험일 것이고 저자와 같이 엄청난 공을 들이진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그 경험을 공감하기 때문인지 좀 더 저자에게 다가서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그걸 경험과 추억 정도로만 생각하는 (그리고 그걸 쉽게 잊었던) 나와는 다르게 저자는 좀 더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고 자신의 경험을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고 그건 엄청나게 다른 점이기도 할 것 같다.

 

음악을 저장하는 혹은 보관하는 방식 중 가장 오래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음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저자는 온갖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LP 음반을 경험하지 않은(혹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인지 그런 내용들은 무척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지고만 있다.

 

LP를 음악을 듣기 위한 수단이 아닌 조금은 고급스럽게 혹은 독특한 방식으로 수집-보관-기념품으로 간직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들은 재미난 추억들이기는 하지만 쉽게 공감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게 결국에는 세대의 차이일 것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 이후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 중 가장 격렬하고 강렬하게 기억되는 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고, 그 자신의 청춘을 뒤돌아보는 논의까지 향하면서 저자는 신나게 얘기하던 모습에서 조금은 머뭇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고, 그 갑작스러운 변화는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앞선 내용들에서 언뜻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인지 충분히 이해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혹은 그것 말고도 여러 인연과 우연 때문에 평론가가 되어버리는 과정과 평론가라는 위치를 넘어 좀 더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학문적인 접근을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음악이 어떤 식으로 한 사람에게 질기게 달라붙는지를, 어떤 식으로 음악과의 질기고 질긴 인연이 이어지게 되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고, 하나의 집착이 어떤 식으로 (되도록) 좋은 (갈등과) 화해를 보여주는지를 알게 되니 조금은 놀랍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과연 어떤 것에 저런 깊은 애정을 간직하며 지낸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기도 한다.

 

딱히 대답할 것이 없기에 쑥스럽기만 하고 부끄럽기만 한 것 같다.

 

나는 음악에 영화에 혹은 책에 어떤 애정과 각별함이 있는 것일까? 어떤 우연과 추억들이 기억들이 간직되고 있는 것일까? 그걸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험들이 있었던 것일까? 혹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나 한 것일까?

 

좌절하고 뒹굴고 있을 뿐이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진 않다.

결국 어떤 것도 남기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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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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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일종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지는 않지만(하지만 개인적으로 호밀밭...’은 몇 번 읽었어도 이상할 정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무덤덤한 기분으로 이렇다 할 감동이나 재미없이 그저 그런 기분만 들었을 뿐이다. ‘호밀밭...’에 깊은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면 무척 궁금하게 될 때가 있다. 왜 그 작품이 좋은 것일까?), 어쩌면 좀 더 깊은 감동을 남기기도 하고, 만약 이 작품을 이미 읽었다면 무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약간이라도) 동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앵무새 죽이기는 여전히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고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고 충분히 그럴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을 발표하고 은둔하듯이 살아가고 있는 (‘호밀밭...’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도 그렇지만 첫 작품의 거대한 성공에 어쩔 줄을 모르며 난처한 것인가? 능력 이상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견뎌낼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성공이었던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미국 작가의 이상한 수줍음일까? 딱히 다른 국가의 작가들 중에서 단 한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혹은 하퍼 리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하퍼 리의 또다른 작품이 발표되기 직전의 상황이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 다시 읽게 된 앵무새...’는 처음에 읽었을 때 보다는 좀 더 흥미롭게 읽혀지고 있고 놓쳤거나 아예 생각나지도 않던 내용들도 있어서 다시금 읽기 보다는 처음 읽는 느낌으로 읽혀지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인지 좀 더 흥미롭게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로 읽는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는 앵무새...’는 단순하게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혀질 수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읽을수록 여러 생각들이 떠올려지게 되는 것 같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앵무새...’는 성장소설의 틀 속에서 개인적인 이야기-기억-추억들을 끄집어내면서 그런 이야기와 함께 보편적인 공감-설득을 만들어내는 사건을 함께 더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수한 상황-사건에 어떤 식으로 보편성을 함께 더할 수 있는지-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매력적인 (혹은 빼어난 수준의) 대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품의 관찰자이며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녀 스카웃의 시선으로 소녀의 오빠인 제롬과 아빠인 애티커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내고 개입되는 사건들을 통해서 여러 이야기와 생각들 그리고 고민들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작품 속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을 통해서도 다양한 논의들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면서 그런 논의들이 어떤 식으로 여러 편견과 선입관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잘못들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만들고 변하게 만드는(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을지를 고민하게 해주며 작품은 꾸며지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화에 대한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힘을 여전히 잃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반대로 지금의 현실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변화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기도 한 것 같다.

 

앵무새...’가 이야기의 구성이나 진행에 있어서 완벽하다고 말하거나 어떠한 틈새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기 보다는 작가의 첫 작품이 갖고 있는 허술함이 그리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많은 것들이 들쭉날쭉하게 이어지고 겹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그것들이 불만스럽거나 불편하기 보다는 결국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걸로도 충분하고 더할 수 없는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의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 같다.

 

신념과 정의

공정함

존엄과 존중

타인에 대한 배려

인종이 아닌 인간으로서 바라봄

(인종차별만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차별에 대한 비판

 

하퍼 리의 신작인 파수꾼때문에 앵무새...’에서 다뤄진 내용들이 무척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조금은 충격적인 변화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앵무새...’에서 등장했던 이들을 재평가하게 만들고 재해석하게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파수꾼을 함께 엮어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는 것이 크게 틀린 이해는 아닐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수꾼때문에 마치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듯이 앵무새...’가 재해석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서 좀 더 다양한 논의-논란이 벌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된 평가-판단이 필요하게 되기는 했지만 그러기에는 조금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모든 평가-판단은 결국 (혹은 대부분)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과연 실제로 어떤 인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인지 혹은 결국에는 그렇지 않은 입장이면서 온정적인 입장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여러 논쟁-논란이 벌어지게 되는 것 같고, 그건 파수꾼을 통해서 폭로되듯이 혹은 불거지듯이 얘기되고 있는 것 같은데,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니 뭘 그렇게 난리법석인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파수꾼앵무새...’ 이전에 완성된 작품이었고(다만 발표가 이처럼 미뤄졌을 뿐이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앵무새...’가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파수꾼앵무새...’ 보다 이후의 시기이지만 미발표된 작품이었고 여러 가지로 새로운 조합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런 성격적인 변화 혹은 달라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퍼 리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갈등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을 뿐이지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라는 인물을 어떤 식으로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입장은 아니었을 것 같다. 다만, ‘파수꾼뒤늦은 발표로 인해서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에 대한 큰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는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개인적으로 파수꾼에서 앵무새...’ 내용들이 어떤 식으로 언급이 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게 된다. 출판을 위해서 여러 내용들이 뜯어고쳐졌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완성 속에서 과연 과거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다뤄지고 있고 기억되고 있기나 한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좀 더 입체적인 인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고 그를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성숙한 사람이고 존경받고 본받을만한 사람으로 다뤄지는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어떤 비난을 혹은 비판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럼에도 그에게서 어떤 긍정적인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게 더 괜찮은 방식이지는 않을까? 오히려 앵무새...’의 모습이 비현실적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앵무새...’만을 놓고 봤을 때, 지금과 같은 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지만 앵무새...’는 미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미국에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주목하고 활발하게 얘기되는, 흔히들 말하는 미국적인 정신(부정되고 반박당하며 위선으로 가득하다고 비난되는, 말뿐이고 주장하듯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폭로-비난-비판받는 미국적인 정신을)을 잘 살려내고 있고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미국 남부가 배경이기 때문에 좀 더 미국이 갖고 있는 특수한 상황과 사건을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그 특수함 속에서 보편성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인 작품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앵무새...’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스카웃과 젬 그리고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를 통해서 많은 본받을 점과 배움을 찾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주변적인 생각일 뿐이 되는 것 같다.

 

(거듭해서 말하게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고 있듯이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인물이면서도 과연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인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비현실적인 인물이면서도 (그걸 알면서도)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를 현실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인물이 되는 것 같다.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부재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람을 찾게 된다. 그 이상한 희망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게 된다.

 

그가 보여주는 여러 모습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논의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스러움과 본받음을 찾게 되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항상 잊지 않고 떠올리게 되는 인물 중 한명이 되는 것 같다.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여러 가지로 두고두고 논의되게 만드는 인물이 될 것 같고, 그를 통해서 좀 더 다양한 논의를 끄집어내고 싶게 된다.

 

이런 생각과 소녀 스카웃이 경험하는 여러 사건-상황들 덕분에 앵무새...’는 더더욱 주목하게 되는 소설이 되는 것 같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작품이 되는 것 같은데, 널리 알려진 소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아직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척 좋은 작품이니 한번 속는다는 생각으로 읽어보기를 권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는 것 같다.

 

미국 문학이 갖고 있는 매력과 개성 그리고 그들이 간직하고 이어가려고 하는 정신이 어떤 것인지 아주 일부분만을 확인할 수 있을지라도 무척 잘 살려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읽어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이 갖춰야 할 모습-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한 작품이기에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계속해서 언급되는 작품이 되는 것 같다.

 

 

 

참고 :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여러 소품-물건과 사건 그리고 대화들을 통해서 어떤 시대가 배경인지를 알 수 있게 되면서도 간혹 그 시대와 조금은 동떨어진 모습들 또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과연 하퍼 리가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것인지 헷갈려지게 되기도 한다. 그게 아니면 실제로 미국 남부는 과거와 현재가 이상할 정도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던 공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여러 논의들을 들춰보기에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명성이 워낙 단단하기 때문에 결국 그런 논의들은 흠집을 위한 논의 이상이 되지는 못하게 될 것 같다. 이미 이 작품은 그런 논의들을 만들어내기에는 너무 높은 자리로 올라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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