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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둠의 근원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누구나 다른 사람들은 특별히 주목하지 않지만 (혹은 덜 관심을 갖지만) 무척 열광하는(환장하는) 작가가 있기 마련이다. 나로서는 그런 작가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문제인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누구나 그런 작가가 있을 것 같다.
     
제임스 엘로이
     
현존하는 범죄소설-하드보일드 작가들 중에서 가장 드높은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 중 한명이면서 괴팍하고 자극적인, 폭력과 섹스 그리고 뒤틀린 욕망과 상상력으로 가득한 작품을 (무더기로) 발표한 제임스 엘로이에 대한 관심은 ‘L.A. 컨피덴셜’로 인해서 시작되었고 여전히 그의 작품들이 (다른 범죄소설 작가들의 작품들에 비해서 국내에서는) 덜 주목받고 덜 번역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자전적인 경험-과거와 소설가로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능력 그리고 현실과 소설-상상의 경계가 마구잡이로 뒤엉키고 그 한계를 극명하게 구분되고 있기도 한 ‘내 어둠의 근원’은 불편하고 어둡고 음침한, 자극적이면서도 외톨이 정서로 가득하면서 그리고 퉁명스럽고 냉소적이고 건조하기만 한 제임스 엘로이 특유의 글재주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면서도 기괴한 사건과 그 사건을 재주사하는 과정 속에서 제임스 엘로이의 어두운-뒤틀려진 내면을, 자신의 과거를 들춰내고 폭로하면서 그 과거와 화해하기도 하는 독특함으로 가득하며 더러움과 과격함으로 범벅이 된 작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롭게 읽혀지는 작품이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역겹고 구역질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제임스 엘로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의문의 강간살인을 당했다는 것에 대해서 무척 중요한 순간-사건-경험이라는 것을 거듭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혹은 언급되고 있는데) 여러 범죄소설 작가들 중에서 제임스 엘로이처럼 직접적으로 범죄를 (그것도 무척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니 제임스 엘로이의 독특함과 특별함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그가 많은 세월이 흘러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재검토하는 과정을 담아낸 ‘내 어둠...’이 갖고 있는 음습함은 여러 가지로 흥미로우면서도 읽는 과정 속에서 불편함 또한 느끼게 만들게 된다.
     
자극적이면서도 무언가 불편하고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척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지켜보게 만드는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내용의 구성도 조금은 특이하다고 볼 수 있는데,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장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건조하고 객관적으로, 온갖 사건에 관한 보고서와 메모들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과 당시에 있었던 정보, 면담, 수사, 조사, 탐문의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고 그 기록을 접하면서 실제 수사-조사의 과정이 갖고 있는 여러 어려움과 지루함 그리고 막연함을, 결국에 가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범인이 누구일지에 대한 궁금함 보다는 그저 지쳐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제임스 엘로이는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들려주고 있기도 한데, LA의 변화와 그 역사를 혹은 시대의 풍경과 분위기(의 변화)를 알려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여전히 그 시대-당시에 머물려고 하는 듯이, 혹은 어떤 식으로 LA가 변화되었으면서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그 이후의 시대는 어떤 식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는지를 (그나마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던 시대에서 어떤 식으로 제멋대로 돌아가는 시대가 되었는지를) 반복해서 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 엘로이는 항상 LA를 생각하며 LA의 슬픔을, 그리고 광대한 욕망과 자극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기괴한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장에서는 살인사건 이후 제임스 엘로이 본인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를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마치 노골적으로 자신의 삶을 폭로하듯이) 들려주고 있는데, 불우한 어린 시절, 부적응, 약물중독, 삐뚤어진 인성,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과 혐오, 자극적인 욕망과 환상, 섹스와 약물에 대한 집착, 범죄에 대한 몰두, 갱생과 재활에 관한 이야기로 얼룩져 있다.
     
약물과 마약 그리고 술
피와 정액으로 얼룩진
그리고 수많은 자극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쏟아내고 있다.
     
위와 같은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감하고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밝혔듯이 다른 의미에서는 그의 노출증이 여전하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 그의 모습인지가 궁금해지기 때문에 제임스 엘로이라는 사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는, 그러면서도 의문하게 되고 판단하기가 미뤄지게 되기도 한다.
     
3장에서는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재수사하게 된 빌 스토너 형사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형사라는 존재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를, 빌 스토너 스스로는 어떤 식으로 스스로의 삶과 형사로서의 삶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관찰하듯이 그를 그려내고 있고, 독백-고백하게 만들고 있다. 건조하고 우울하게 살인과 시체들 그리고 아스팔트로 가득한 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야 제임스 엘로이와 빌 스토너는 함께 자리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다시금 풀어내려고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소설가로서 하나의 이야기로서 사건을 다뤄냈었던 위치에서 직접 사건에 개입하는 모습과 함께 그런 과정으로 인해서 그 스스로가 생각했던 현실과 상상이 뒤섞여지고 붕괴되는 과정을 (혹은 모든 것들이 하나로 겹쳐지는 과정을), 자신의 과거로 향하면서 어떻게 과거가 그 자신의 상상에 맞춰서 달라졌었는지를, 때맞춰 일어났던 O.J. 심슨 사건이 그 자신의 과거로 되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사건과 조금이라도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혹은 관계되어 있도록 강요하듯 만들어내는 면담 속에서 어떤 식으로 과거가 다시금 되살려지게 되는지를 (혹은 잊혀졌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건을 재검토하면서 결국 사건은 미해결로 남게 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빌 스토너가 진행하던 미해결 사건이 마무리되는 과정과 O.J. 심슨 사건 그리고 제임스 엘로이 자신의 사건이 어떤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결국 어머니의 과거를 마주하게 되면서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으며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어가면서 제임스 엘로이는 어머니와의 깊은 그리고 복잡한 관계를 인정하고 덜 뒤틀린 방식으로 (혹은 그 뒤틀린 방식 그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다. 
     
‘내 어둠...’은 개운하고 시원한 결말을 확인하진 못한다. 사건은 여전히 미해결이고, 해결된 사건들도 딱히 만족스럽게 느껴지진 않는다. 제임스 엘로이는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서 파헤치려고 하는 것인지 LA에 관한 어두운 모든 것들을 들춰내려고 하는 것인지 그 스스로도 무엇이 우선인지 헷갈려하는 듯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모든 것에 역겨워하면서도 모든 것에 깊은 흥미를 보이고 있다. 어쩌다 이런 결과물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느낌뿐이지만 분명한 것은 독특한 구성과 해괴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그리고 관심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기묘한 유혹이다.
마치 달리아의 유혹처럼.
     
사람들에 따라서는 읽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이건 정말로 특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게 되는 것 같다.
     
어쩐지 오랜 기간 이 작품이 안겨주는 여운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짤막하게 잘게 잘려져 있고 건조함과 냉소 그리고 염세적인 음울함으로 가득한 글자들의 묶음은 더욱 더 독특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