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둠의 근원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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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른 사람들은 특별히 주목하지 않지만 (혹은 덜 관심을 갖지만) 무척 열광하는(환장하는) 작가가 있기 마련이다. 나로서는 그런 작가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문제인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누구나 그런 작가가 있을 것 같다.

 

제임스 엘로이

 

현존하는 범죄소설-하드보일드 작가들 중에서 가장 드높은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 중 한명이면서 괴팍하고 자극적인, 폭력과 섹스 그리고 뒤틀린 욕망과 상상력으로 가득한 작품을 (무더기로) 발표한 제임스 엘로이에 대한 관심은 ‘L.A. 컨피덴셜로 인해서 시작되었고 여전히 그의 작품들이 (다른 범죄소설 작가들의 작품들에 비해서 국내에서는) 덜 주목받고 덜 번역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자전적인 경험-과거와 소설가로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능력 그리고 현실과 소설-상상의 경계가 마구잡이로 뒤엉키고 그 한계를 극명하게 구분되고 있기도 한 내 어둠의 근원은 불편하고 어둡고 음침한, 자극적이면서도 외톨이 정서로 가득하면서 그리고 퉁명스럽고 냉소적이고 건조하기만 한 제임스 엘로이 특유의 글재주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면서도 기괴한 사건과 그 사건을 재주사하는 과정 속에서 제임스 엘로이의 어두운-뒤틀려진 내면을, 자신의 과거를 들춰내고 폭로하면서 그 과거와 화해하기도 하는 독특함으로 가득하며 더러움과 과격함으로 범벅이 된 작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롭게 읽혀지는 작품이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역겹고 구역질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제임스 엘로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의문의 강간살인을 당했다는 것에 대해서 무척 중요한 순간-사건-경험이라는 것을 거듭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혹은 언급되고 있는데) 여러 범죄소설 작가들 중에서 제임스 엘로이처럼 직접적으로 범죄를 (그것도 무척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니 제임스 엘로이의 독특함과 특별함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그가 많은 세월이 흘러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재검토하는 과정을 담아낸 내 어둠...’이 갖고 있는 음습함은 여러 가지로 흥미로우면서도 읽는 과정 속에서 불편함 또한 느끼게 만들게 된다.

 

자극적이면서도 무언가 불편하고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척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지켜보게 만드는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내용의 구성도 조금은 특이하다고 볼 수 있는데,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장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건조하고 객관적으로, 온갖 사건에 관한 보고서와 메모들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과 당시에 있었던 정보, 면담, 수사, 조사, 탐문의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고 그 기록을 접하면서 실제 수사-조사의 과정이 갖고 있는 여러 어려움과 지루함 그리고 막연함을, 결국에 가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범인이 누구일지에 대한 궁금함 보다는 그저 지쳐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제임스 엘로이는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들려주고 있기도 한데, LA의 변화와 그 역사를 혹은 시대의 풍경과 분위기(의 변화)를 알려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여전히 그 시대-당시에 머물려고 하는 듯이, 혹은 어떤 식으로 LA가 변화되었으면서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그 이후의 시대는 어떤 식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는지를 (그나마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던 시대에서 어떤 식으로 제멋대로 돌아가는 시대가 되었는지를) 반복해서 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 엘로이는 항상 LA를 생각하며 LA의 슬픔을, 그리고 광대한 욕망과 자극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기괴한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장에서는 살인사건 이후 제임스 엘로이 본인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를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마치 노골적으로 자신의 삶을 폭로하듯이) 들려주고 있는데, 불우한 어린 시절, 부적응, 약물중독, 삐뚤어진 인성,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과 혐오, 자극적인 욕망과 환상, 섹스와 약물에 대한 집착, 범죄에 대한 몰두, 갱생과 재활에 관한 이야기로 얼룩져 있다.

 

약물과 마약 그리고 술

피와 정액으로 얼룩진

그리고 수많은 자극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쏟아내고 있다.

 

위와 같은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감하고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밝혔듯이 다른 의미에서는 그의 노출증이 여전하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 그의 모습인지가 궁금해지기 때문에 제임스 엘로이라는 사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는, 그러면서도 의문하게 되고 판단하기가 미뤄지게 되기도 한다.

 

3장에서는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재수사하게 된 빌 스토너 형사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형사라는 존재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를, 빌 스토너 스스로는 어떤 식으로 스스로의 삶과 형사로서의 삶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관찰하듯이 그를 그려내고 있고, 독백-고백하게 만들고 있다. 건조하고 우울하게 살인과 시체들 그리고 아스팔트로 가득한 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야 제임스 엘로이와 빌 스토너는 함께 자리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다시금 풀어내려고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소설가로서 하나의 이야기로서 사건을 다뤄냈었던 위치에서 직접 사건에 개입하는 모습과 함께 그런 과정으로 인해서 그 스스로가 생각했던 현실과 상상이 뒤섞여지고 붕괴되는 과정을 (혹은 모든 것들이 하나로 겹쳐지는 과정을), 자신의 과거로 향하면서 어떻게 과거가 그 자신의 상상에 맞춰서 달라졌었는지를, 때맞춰 일어났던 O.J. 심슨 사건이 그 자신의 과거로 되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사건과 조금이라도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혹은 관계되어 있도록 강요하듯 만들어내는 면담 속에서 어떤 식으로 과거가 다시금 되살려지게 되는지를 (혹은 잊혀졌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건을 재검토하면서 결국 사건은 미해결로 남게 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빌 스토너가 진행하던 미해결 사건이 마무리되는 과정과 O.J. 심슨 사건 그리고 제임스 엘로이 자신의 사건이 어떤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결국 어머니의 과거를 마주하게 되면서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으며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어가면서 제임스 엘로이는 어머니와의 깊은 그리고 복잡한 관계를 인정하고 덜 뒤틀린 방식으로 (혹은 그 뒤틀린 방식 그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다.

 

내 어둠...’은 개운하고 시원한 결말을 확인하진 못한다. 사건은 여전히 미해결이고, 해결된 사건들도 딱히 만족스럽게 느껴지진 않는다. 제임스 엘로이는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서 파헤치려고 하는 것인지 LA에 관한 어두운 모든 것들을 들춰내려고 하는 것인지 그 스스로도 무엇이 우선인지 헷갈려하는 듯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모든 것에 역겨워하면서도 모든 것에 깊은 흥미를 보이고 있다. 어쩌다 이런 결과물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느낌뿐이지만 분명한 것은 독특한 구성과 해괴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그리고 관심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기묘한 유혹이다.

마치 달리아의 유혹처럼.

 

사람들에 따라서는 읽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이건 정말로 특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게 되는 것 같다.

 

어쩐지 오랜 기간 이 작품이 안겨주는 여운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짤막하게 잘게 잘려져 있고 건조함과 냉소 그리고 염세적인 음울함으로 가득한 글자들의 묶음은 더욱 더 독특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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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외 을유세계문학전집 42
소포클레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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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런 걸 왜 읽어?



그리스 비극을 읽을 때면, 혹은 다른 고전들을 읽게 될 때면, 그게 아니면 여러 난해한 인문학 관련 책들을 읽을 때면 저런 질문을 받게 될 때가 곧잘 있다.


그 럴 때마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만 귀찮으니까 간단하게) 재미나서 읽는다고 대답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미를 느끼는 것-방법이 각자 다르기 마련이니까. 대부분은 그런 대답에 그냥 대충은 수긍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그런 식의 대답을 들으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표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나도 그런 질문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서로 그런 것으로 피곤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기분으로 적당하게 이해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어쩌다가 열심히 설명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괜한 것에 열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았고, 우선은 어머니부터 내가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고 열심인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낳아준 어머니도 이해해주질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어머니도 비슷한 말을 했을 때, 어디서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하느냐고 말대답해서 한참을 다툰 적도 있어서 경험상 그런 질문은 가볍게 들어주고 그 사람과 되도록 (책과 관련해서)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무언가를 읽는 것에 어떤 식으로 재미를 느끼는지는 각자가 다 다른 것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까.


이 런 말을 꺼낸 다음에 굳이 그리스 비극을 왜 읽는지를 설명한다면, 그리스 비극을 읽게 되는 이유는 그 비극을 경험하는 과정과 그 비극을 직접적으로 경험했을 때의 반응에 대해서 큰 호기심을 느끼기 때문이고 비극, 비참, 괴로움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의 반응의 원형을 혹은 그 비극을 경험하는 가장 원초적인 순간을 그리스 비극은 무척 극적으로 만들고 있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작가들 중에서 특히 소포클레스의 경우 등장인물들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에 집요하게 몰두하면서 비극을 피할 수 있는 혹은 비극이 비극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서도 그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고, 그러면서 더욱 비극성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반복하면서 읽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가 만들어낸 비극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혹은 경험할 것을 예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그의 비극이 유난히 인상적으로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소 포클레스의 대표작이면서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고 있는 (거기에 프로이트 덕분에 좀 더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한) ‘오이디푸스 왕’과 그 비극 이후의 이야기들을 모은 ‘오이드푸스 왕 외’는 오이디푸스가 겪은 비극과 함께 그가 겪은 비극과 그 비극 이후의 또다른 비극들을 알 수 있으면서 그 비극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알 수 있으며 혹은 깨달을 무언가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렇게 진지하고 지나치게 열중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

그 비극 자체를 경험하면 각자가 각자에게 맞는 무언가를 느낄 것이다.


조 금은 느슨하고 약간은 겉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어쩐지 길고 긴 후일담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고 있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보다는 ‘안티고네’가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고, 결국에는 ‘오이디푸스 왕’이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선택을 바꾸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반복해서 읽어도 여전히 재미나게 읽혀지게 되고 있고, 그 비극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과연 내가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격렬한 감정과

우연하게 알게 되는 진실의 실마리들

감정적이고 고집스럽게 굴면서 진실을 알고자 혹은 자신의 감정과 고집에 집중하고 노력하다가 결국에 밝혀지게 되는 혹은 폭로되고 파국으로 향하게 되는 과정이

어째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관심을 갖게 되고 재미를 느끼게 되는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하게 되기만 한다.


현명함과 깨달음을 찾으려고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할 뿐인 인간의 오만함과 아둔함을 알면서도 모르게 되는 내 무지에 혹은 한심함에 대한 최소한의 (깨달음을 위한)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벗어나려고 하고 있고 용감하게 맞서려고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신들이 만들어낸 비극에 끼워 맞춰지고 그 비극의 운명에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운명을 나는 모르면서도 혹은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왜 알려고 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고, 그게 결국 내 운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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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킹 우드스탁
엘리엇 타이버.톰 몬테 지음, 성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우드스탁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 인생만큼은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1969년 여름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 그 시대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혹은 쓸데없는 아는 척이거나.


직접적인 경험 없이 그걸 말한다는 것은 뒤늦은 아쉬움 이상은 아닐 것이니까. 그리고 그 아쉬움을 어떤 식으로도 채워낼 수 없을 것이니까. 그게 아니면 쓸데없는 호들갑일지도 모르겠다.


그 런 의미에서 음악적으로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그 당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흥미로운 행사였거나 괜찮은 돈벌이라고 생각했거나, 혹은 진짜 막대한 의미를 부여했을지도 모르지만) 1969년의 우드스탁에 관한 이런 경험담-후일담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다지 의미 없는 책읽기일지도 모르고 일종의 추억놀이에 쓸데없는 동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읽어보니 나쁘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1960년대 시대정신의 한 단면을 혹은 본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는 순간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뭐, 어떤 입장에서 읽게 되든 ‘테이킹 우드스탁’은 우선 재미있다. 읽는 재미는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그 리고 그때 그 당시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든 것이 가능하고 허락되(리라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을 솔직하고 소상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있을 수 없을 것 같고 반복하고 싶지만 반복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어떤 순간이었는지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라도) 읽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읽는 과정 속에서 그런 내용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생각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쏟아내고 있는 엘리엇 타이버의 고백을 통해서 그 시대의 모습과 풍경만이 아니라 유대인이며 뚱댕이에다 못난이였으며 게이였던 그 자신이 어떤 식으로 그 스스로-시대를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가족들과 갈등하고 화해하게 되는지를 감동까지는 아닐지라도 웃다가고 씁쓸해하고 그러다가도 그의 감정에 설득하고 공감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좋은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테이킹...’은 우드스탁이 어떤 과정 속에서 어떤 식으로 시작되고 행사가 치러졌는지를 알려고 한다면, 그 시작과 끝 그리고 의미를 찾아보려기 위해서 우드스탁이라는 행사 자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게 된다면 무척 난감한 기분에 빠지게 될 것 같다. 무슨 뜻이냐면 ‘테이킹...’은 우드스탁에 관한 책이기 보다는 우드스탁을 알게 되면서 혹은 우드스탁을 경험하게 되면서 어떤 식으로 엘리엇 타이버라는 사람이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를 무척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해주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테이킹...’은 성장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우드스탁은 한구석에 조금은 밀려나져 있는 내용이라고 (일종의 소재이자 때때로 주제가 될 때도 있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읽을 맛이 나는 것은 아닐까?

만 약 우드스탁 공연 그 자체에 대해서, 온갖 뒷얘기와 여러 소소한 이야기들에 집착했다면, 그것 들에만 집중했다면 (물론, 다른 방식으로) 읽는 재미가 있기는 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재미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 신의 엉망진창이기만 했던 어린 시절-삶을 솔직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내놓는 앞선 내용들과 자신의 성적 정체성(남성 동성애자-게이)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을 털어놓는 내용들(무척 적나라하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고 자극적이기도 했다)을 지난 다음에 자신의 가족들과 갈등하고 어려움으로 가득한 생활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이 있은 다음에야 (엘리엇 타이버는 당황스럽고 어쩔 줄을 모르며 난감-난처한 표정으로 가득하지만 그게 무진장 웃긴 상황들이기로 묘사하기도 한다) 자신이 꿈만 꾸던 상황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다시 말해서 우드스탁이 농담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과정을 자세하게 다뤄내고 있는 중후반부 속에서 온갖 황당한 사건들과 상황들 그리고 찬성과 반대의 갈등, 통제 불가능 한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게 되는지를,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식으로 성장하는지를, 스스로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게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긍정하고 화해하는지를, 히피들의 야릇하고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혹은 눈살이 찌푸려지고 고개를 돌려지게 만드는 그들만의 문화를, 섹스-마약-로큰롤이 한꺼번에 뒤엉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면 어떤 폭발을 만들어내는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그리고 여러 엉망진창의 방식으로 


우 드스탁은 결국 개최되었고 그건 하나의 사건이면서 사고였고, 어쩌면 뒤돌아보니 덧없는 순간이었지만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런 식으로 우드스탁은 한 개인과 밀접하고 긴밀함을 보여주며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 같고, 그걸 확대시켜 해석하면 엘리엇 타이버 개인만이 아닌 그 순간 그 공간에 머물렀던 이들 중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큰 변화를 혹은 자신만의 삶의 태도와 확신을 갖게 만드는 순간-공간이었다는 것을 이해되도록 만들고 있다.


엘리엇 타이버의 글을 멋대로 인용한다면 우드스탁에 향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도 우드스탁이 찾아오도록 그는 노력-설명하고 있다. 그 자신의 실제 경험을 말하면서.


물 론, ‘테이킹...’을 읽었다고, 그것으로 내 삶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벼운 기분으로 무겁기만 했던 자신의 삶을 수다스럽게 얘기해주면 결국에는 어떻게 삶이 변화되었는지를 어떤 찡그림도 없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조금은 바꿔보고 싶기도 하고 변화를 찾고 싶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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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아티스트의 홀로그림 - 밥장이 그려내는 무한 상상 여행
밥장 지음 / 리더스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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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장의 에피파니 : blog.naver.com/jbob70




책을 읽다가 책을 알게 되는 경우는 무척 흔한 경우라고 말할 것 같다.

책을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경우는 너무 흔해서 그런 경우를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더 쑥스럽다는 말을 꺼내게 될 때도 있으니까.


그 래도 나란 사람이 이런 책을 읽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 읽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디자인소호의 ‘기획자의 토요일 디자이너의 일요일’에서 나와 같이 일을 했던(내가 갑이었고 저쪽은 을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한 설명일 것 같다. 동명이인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본인이 맞을 것 같다) 담당자 (그쪽 동네의 정확한 직책을 알지는 못한다.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기도 하고. 그걸 알아서 뭐하나 싶다. 그들도 나에게 관심 없을 것이니) 가 추천하는 책으로 이걸 골랐기 때문인데, 추천했다고 곧장 구입하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어떻게 굴러들어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책장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들어 찾아보니 있는 것은 맞기에 주말 아침 잠-술이 덜 깬 상태로 간단하게 읽어보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읽어봤었고, 역시나 내가 좋아할 내용이진 않지만 때때로 이런 책을 읽게 될 때도 있었고 내용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나쁘다고 말할 수 없기에 적당히 읽고 치우기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영감의 원천이고 기분 전환의 보약과도 같은 책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주말 아침의 나른함 속에서 읽어버리기에 괜찮은 책이었다.

야박하게 굴고 싶지도 않고 괜히 빈정거릴 생각도 없다. 각자의 감상은 다르기 마련일 뿐이다.


우 선 저자의 약력을 보게 된다면 저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혹은 저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를) 알게 될 수 있는데, 이름난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인생궤도를 수정해 (다른 말로는 직장을 때려 치고) 모험적인 직장(들)을 다니며 생소하게 느껴지는 일(들)을 거듭하다 결국 자신만의 삶의 방식-태도를 찾게 된 사람인지라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일종의 확신을 그리고 여러 경험들로 인해서 많은 것들을 알(아내)고 있기 때문에 감(수)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그 내면 속에서 흔들림 없는 단호함 또한 느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내면의 풍경이기도 할 것 같다.


어 쩌면 이런 내면이 혹은 감수성이 홍대의 정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좀 더 소비적이기만 하고 형편없어졌다고 말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왜곡되어버렸고 변해버렸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한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리고 조금이라도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보려고 했던 이들이 몰려들었던 홍대의 정서라는 것은 저자와 같은 정서와 유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만의 특징과 개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삶을 최대한 재미나게 즐기면서도 나름대로의 자신만의 다른 삶을 찾으려는

읽고 보고 쓰고 그리면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생산과 소비가 그 자신만의 균형을 찾게 된

그런 식으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적당하게 뭉뚱그려 말한다면, 이것도 오해면서 편견이겠지만 아마도 그렇진 않을까?

한국적인 방식의 보헤미안들일 것이고 자유로운 영혼들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진 않을까?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 내가 큰 오해를 했을 뿐이라고 말하면 그만이겠지만.

물론, 지금 홍대는 생산보다는 소비가 더 커져버리기는 했지만(뭐, 아니길 바란다) 그렇다고 그게 그들 탓은 아니니까. 


어쨌든, 위와 같은 방식으로 홍대의 정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추측하게 되는 것 같다.


농 담처럼 말한다면 키치와 댄디로 무장하면서 자신만의 아방가르드가 있는, 그런 식으로 빈정거리기 보다는 그저 소박하게라도 자신만의 방식의 삶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정서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정서에 대해서 (어쩌면 그들과 별다를 것 없는 것을 찾으면서도) 괜한 질투로 혹은 그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생각에 그저 재수 없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재수 없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직접 만난다면 아무런 말도 못할 것이지만) 그다지 좋게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할 것이니 30대 중반이라는 조건 속에서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수성을 혹은 성적 욕망과 지금껏 읽은 것들에 대한 고백을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과감하게 혹은 가식 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욕만 하다가 돌리고 돌려서 칭찬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지나친 솔직함인지 그게 아니면 적당함인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고, 여러 가지로 자극적이면서도 거칠음이 강조된 그림-글은 분명 잠시라도 눈길이 머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30대 중반의 남성이 생각하는 성-섹스에 대해서 무척 집요하게 파고들려고 하고 있기는 하지만 (냉소적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고 솔직하기도 하지만) 그게 어떤 분석과 이해인 것인지 그게 아니면 노골적인 욕망의 까발림인 것인지는 분명치 않은 것 같으면서 그 자신이 읽은 여러 추천할만한 책들에 대한 소개는 앞선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서 보게 될 수 있는 여러 모습들을 (반복해서 말하지만)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겁고 진지하게 읽어낼 책은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커피숍 어딘가에 놓여있다면, 혹은 잠시 시간이 생겨 시간을 흘려보낼 필요가 있을 때라면 잘난 스마트폰만 바라보지 말고 이런 것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이런 말도 꼰대질이라고 듣겠지만.



참 고 : 홍대의 정서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혹은 그들의 삶의 태도를 생각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확장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그게 힘들어지게 되는 환경이 주어지게 될 것 같다. 혼자서는 가능하지만 둘이서 혹은 셋과 넷이서 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을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게 아니면 흩뿌려진 이들이 때때로 어떤 식으로 마주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게 된다. 어떤 것이 더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삶-이야기는 전혀 없는 것 같아서 그들의 삶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괜찮은 연구자가 달려들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비비꼬인 시선이 아닌 방식으로 바라보면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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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토요일 디자이너의 일요일 -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주말나기
디자인소호 임직원 일동 지음 / 디자인소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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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소호 :  www.designsoho.co.kr 





우리는 크리에이터들의 일하는 방법보다 쉬는 방식에 주목했다

늘 새로워야하기에 그 어떤 직업군보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사는 그들이, 단 이틀의 주말 동안 어떻게 너덜너덜해진 일상을 헹구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무 언가 궁금함을 그리고 어떤 호기심을 안겨주고 있는 제목(과 약간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들춰보고 읽어보게 된다면 이런저런 (감각적이고 도시적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그 빌어먹을 쿨과 시크를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별짓을 다하는) 잡지들에서 다뤄지는 가볍고 재치 있(어보이려고 낑낑거리며 애처롭게 노력하)는 내용 이상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는 디자인소호의 ‘기획자의 토요일 디자이너의 일요일’은 가벼운 기분으로 잠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읽는다면 금세 읽어낼 수 있는 분량과 내용일 것 같고 만약 실제로 기획과 디자인 계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눈길이 머물게 되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도움이나 실마리가 되는 내용을 찾는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번은 알아보고 싶다. 되도록 젊은이들이 더 공감하고 좋아할 것 같다는 내용으로 꾸며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구식이고 늙다리겠지만.


자 신 있게 말한다면, 기획과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전혀 하고 있기 않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혹은 누리는 고민과 힘겨움 그리고 여러 어려운 점들이 그저 그들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할 것 같기 때문인지 크게 다를 것 없이 우리들의 (혹은 그들과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팍팍할 때도 있고 웃을 때도 그리고 짜증으로 가득할 때도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들도 우리처럼

혹은 우리도 그들처럼

그것 이상의 모습을 찾게 되지는 (알게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업무로 인한 고충이 나름대로 혹은 그들대로의 특징이 있기는 하겠지만.


개 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꺼내게 된다면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업무로 인해서 디자인소호의 고객-의뢰인(요즘에는 이런 것도 클라이언트라는 영어로 된 말을 써야지 직성이 풀리는 일이 많다지? 그럴 바에 차라리 갑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이 되었던 적이 있었고(갑질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 지긋지긋한 인간으로 기억날 것이다), 디자인소호 쪽에서는 그다지 신통치 못한 고객이었을 것이고 (나란 사람을 겪어본 사람은 얼마나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지 잘 알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그저 상종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러 가지로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존재로 기억되었을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그들의 애환을 다룬 혹은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고 어떤 식으로 업무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다룬 이런 글들을 읽게 되니 조금은 기분이 남다르게 되는 것 같다. 혹은 그나마 약간이라도 그들의 어려움을 알게 될 것 같다.


그래봤자 이미 지난 일이고, 불만과 짜증으로 가득한지 오래되었을 것이니 이런 소리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리고 한마디 더 한다면, 그들은 그들로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나는 나대로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 그러니 싸우려면 싸울 때 얘기하면 된다. 그때 확실하게 끝을 보면 뒤돌아 말할 필요 없다.


제목처럼 기획자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그들이 어떤 주중을 그리고 어떤 주말을 보내고 있는지가 대부분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임직원이 함께 내용을 꾸며서 그런 것인지 두서없고 정돈되지 않고 있을 뿐이고 애환이기 보다는 투정으로 느낄 여기가 있을 정도로 무언가를 말해주기 보다는 군소리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기회자의 고충과 함께 그들이 어떤 업무와 업무를 위해서 갖춰야 할 점들이 어떤 것인지를,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에게 있어서도 무엇이 필요하고 힘겨운지를 좀 더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도 (충분하게) 설득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혹은 그럴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기획자이고 디자이너일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디자인 회사에서 만들어낸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내용인 것 같다.


너무 가벼움과 재미를 앞세운 느낌이 든다.

분 량이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고, 일관성 없이 여러 구성원들의 내용들이 한꺼번에 구겨넣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기에는 15,000원이라는 가격에 시선이 머물게 된다(안다.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지나칠 정도로 속물이다).


20 대 – 30대 혹은 40대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는 이들의 일상과 생각을 잠시 엿볼 수 있기는 하지만 어떤 곳에서든 그런 생각(들)이 들기 마련이고, 그런 모습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야박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저런 불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온갖 못마땅함을 말하게 되기는 했지만 칭찬할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겉 으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구김살 없이 자신들이 선택한 길에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길 힘들지라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나와 같은 형편없는 인간에 비해서는 혹은 온갖 후회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서는 좀 더 멋져 보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어떤 점에서 전혀 다른 영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 때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게 한편으로는 거기서 거기인 것을 알게 될 때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멋없는 인생을 위로하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과연 삶이 그것 뿐? 이라는 의문도 들게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어떤 것이 정답일지는, 과연 그런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술자리에서 나눌만한 개똥철학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주중을 그리고 일상을 향하는 경우가 그다지 나쁜 주말을 보내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차피 반복과 반복 속에서 무언가를 각자가 깨닫기 마련이니까. 


그게 일이든 삶이든. 어떤 것이든.


내가 아는 한 삶은 딱 그런 정도인 것 같다.




참 고 : 이런 저런 방식으로 디자인소호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항상 어정쩡하게 헤어짐을 맞이했던 것 같다. 항상 온갖 방식으로 (지랄같이 굴어서) 곤란했던 점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되도록) 좋게 일을 마무리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 이런 말을 해서 뭐하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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