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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헬 ㅣ 시공그래픽노블
앨런 무어.에디 캄벨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참고 : https://namu.wiki/w/%ED%94%84%EB%A1%AC%20%ED%97%AC
이걸 걸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괴작이라고 해야 할까?
앨런 무어의 열렬한 팬들은 당연히 걸작이라고 말할 것이고 괴작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진 않겠지만 빅토리아 시대를 19세기 말 런던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샅샅이 들쑤시는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망설여질 뿐이다.
산업혁명, 자본주의 태동기, 극심한 빈부격차 등 그 당시 영국과 런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프롬 헬’을 읽게 되니 얄팍한 이해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 당시로 밀어 넣고 있는 (광기를 들춰주는) 이 책의 빼어남을 알면서도 미쳐 날뛰고 있는 광기에 겁을 먹게 되기도 하고 당황하게 되기도 한다. 마치 미친 윌리엄 위시 걸 옆에서 끌려 다니는 마부 존 네틀리처럼. 과연 제대로 알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미치광이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근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앨런 무어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미친 사람의 내면을 본 적 없어서 단정은 못하겠지만.
살인마 잭 더 리퍼에 대해서 그리고 19세기 런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적어 두터운 분량의 런던 (연쇄 살인) 견학기인 이 책이 버겁기만 했고 너무 꼼꼼해서 도무지 읽혀지지 않는 부록 1 각 챕터에 대한 주석은 건성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처럼 런던에 대해 그리고 잭 더 리퍼에 대해 많은 지식이 적다면 부록 2 기러기잡이들의 춤을 먼저 읽고 시작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잭 더 리퍼
그의 악명을 모르고 있진 않았다. 다만 그 이름은 전설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은 식상한 이름이기도 했다. 다행히 앨런 무어는 흔한 방식의 수사물로 만들려하지 않고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런던을 그리고 살인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하나의 드라마를 런던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버렸다.
앨런 무어
그가 야심을 갖고 이 책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잭 더 리퍼에 관한 온갖 자료 그리고 그 자신의 상상력과 추측을 덧붙여 엄청난 규모의 이야기로 부풀리고 항상 다루는 부분들(변태적 섹스, 잔혹한 살인, 장광설로 가득한 독백과 중얼거림 등) 또한 여전하거나 유독 더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에디 캄벨
이걸 잘 그렸다 해야 할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 에디 캄벨의 그림은 그것 보다는 내면의 광기와 질식할 것 같은 런던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고 말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익숙해지지 않는 그림체지만 이런 식이 좀 더 19세기 말 런던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울함으로 가득하고 어떤 웃음기도 없는 창백함과 피범벅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쁜 기분만 가득해지고 같이 미쳐가는 기분이 들어 딱히 추천하진 못하겠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가 점점 광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이 책이 어쩐지 꽤 길게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