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축가 구마 겐고 - 나의 매일은 숨 가쁜 세계일주
구마 겐고 지음, 민경욱 옮김, 임태희 감수 / 안그라픽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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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구마 겐고의 원래 제목은 건축가, 달리다라고 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무슨 제목이 저래? 라는 생각이 당장 들었는데, 책을 읽은 다음에는 그 제목이 썩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원래 제목보다 ...’가 오히려 더 즉각적으로 읽어보고 싶도록 만들 것 같은데, 그건 구마 겐고가 스스로 책에서 언급했듯이 이제 구마 겐고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건축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눈에 들어오는 한국식 제목 또한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다만, 그런 것 보다는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된 ,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한 쌍으로 묶어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크다.

 

제목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읽는 사람들이라면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에서의 구마 겐고의 의견들을 생각한다면) 구마 겐고 본인은 바뀐 제목에 대해서 그다지 흡족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지는 않다.

 

안도 다다오의 글도 그렇지만 구마 겐고의 글 또한 쉽게 읽히면서도 글쓴이의 생각에 깊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건축적 재능도 대단하지만 글쓰기 재능 또한 남다르다는 점에서 세상에는 여러 가지에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한편으로는 내 부족함을 다시금 확인하고 좀 더 노력하고 싶은 기분도 들지만 그러다가도 재능이 넘치고 타고난 사람들은 다르긴 다르다는 어떤 한계를 절감하게 되기도 한다.

 

쓸데없는 열등감이고 좌절감이겠지만.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구마 겐고의 ...’는 어떤 종지부를 찍고 마무리를 하는, 과거를 되짚으며 이런 저런 기억들과 추억들을 늘어놓는 자서전의 성격보다는 현재진행형 속에서 어떤 과정 속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는 느낌이 더 들게 된다. 지금까지 건축가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떤 다짐과 신념과 태도 그리고 자신만의 입장을 잘 정리해서 설명해준 다음 앞으로의 각오를 말해주는 내용이라고 (자서전에 비해서는 좀 더 약하다고) 말해보고 싶다.

 

이미 구마 겐고는 약한 건축을 통해서 알게 되기는 했지만 제목이 갖고 있는 색다름이 좀 더 기억나고 책을 읽었을 때에는 아주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를 통해서 좀 더 가깝게 알게 되는 기분이 들었고 깊고 치열한 고민과 여러 시행착오들 속에서 어떤 식으로 지금까지의 건축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마 겐고의 건축을 완성시키려고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구마 겐고의 건축이 모든 건축의 답은 아닐지라도 그 고민과 고민에 대한 대답과도 같은 그의 건축은 구마 겐고의 생각들을 알아가며 확인하기 때문인지 생각 이상으로 감탄하게 되어버린다.

 

되도록 간략하고 알기 쉽도록 설명해주고는 있지만 그 대답을 내놓기까지의 과정과 고민은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는 구마 겐고 본인이 시차적응도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얼마나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거장의 여유 있고 느긋한 삶을 생각하던 사람들로서는 저렇게 무슨 수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로 쉴 틈 없는 삶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제대로 쉴 수 없고 앞만 보고 살 수밖에 없는 건축가의 삶이라는 것이 어쩌다가 그처럼 되었는지를 궁금증을 갖도록 하고 그 궁금함에 대해서 쉽게 대답을 해주고 있다.

 

무슨 과정 속에서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게 허겁지겁 바쁘기만 한 일상이 되어버렸으며 지금의 방식이 이전과는 어떤 점이 달라진 것이고 과거의 방식과 지금의 방식 그리고 앞으로의 방식이 갖고 있는 변화 그리고 문제점과 그럼에도 그 문제점 속에서 어떤 식으로 적응하고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건축을 이어나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건축이 있다.

 

책속에서는 클라이언트라고 적혀진 발주자들 중에서 최근 들어 가장 돈주머니를 쉽게 풀고 있는 중국 쪽의 경향-성향(혹은 특징)과 그들과의 작업이 갖고 있는 특이점과 어려우면서도 뿌듯하기도 했던 작업과정을 재미나게 들려주며 건축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온갖 복잡함을 간단하게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험시켜주면서 구마 겐고는 자신의 건축에 대한 생각을 서서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구마 겐고는 발주자들의 (국가별) 여러 특징들과 그들과 작업하는 과정이 갖고 있는 곤혹스러운 부분들, 그리고 문화적 인식적 실천적 차이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며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에 대한 일정한 비판적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고, 일본이 갖고 있는 어떤 한계()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본과는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구마 겐고의 의견이 전부 다 옳지는 않을지라도) 직접 경험했던 내용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일본의 건축계에 대한 일종의 위기의식이고 경고이기도 한 설명과 꾸짖음 이후 과거의 영광을 이어받으며 진행했고 그 영광을 이어받으면서도 자신만의 생각 또한 덧붙여야만 했던 어려움으로 가득했던 2013년에 완공한 제5대 가부키극장 재건축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건축이 갖고 있는 곤란함과 이전의 가부키극장에 관여했던 역대 건축가(선배)들은 어떤 방식으로 완성시켰었으며 그 완성 속에 역사적인 중요성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를, 구마 겐고 본인 또한 역사적 흐름과 시대에 대한 인식 속에서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이어지도록 하려고 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건축의 과정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지만 구마 겐고는 그것만이 아닌 무언가를 알아가는 과정으로도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하고 깨닫고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으로서 이해시켜주며 구마 겐고의 건축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깊이를 느끼게 된다.

 

구마 겐고는 근대 건축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내놓고 그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 또한 내놓고 있는데, 장소의 필요성을 무시한 (혹은 제거하려고 했던) 방식이 어떤 식으로 근대 시대를 그리고 근대 건축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미국식 방식으로 설명되는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 산업, 석유 중심의 사회 등 지금과 같은 근대 건축 방식이 가능하게 된 대표적인 계기-이유들을 지적하며 역사적 흐름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압력과 인식의 틀이 다른 방식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들게 했던 (혹은 그런 다른 생각들이 주변으로 밀려나도록 만든) 상황을 그리고 그런 식의 이해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서서히 무너지면서 어떤 식으로 새로운 접근을 생각해보고 가능하도록 노력해보게 되었는지를 구마 겐고 본인의 건축가로서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해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좀 더 구마 겐고의 건축이 갖고 있는 특징을 그리고 구마 겐고가 어떤 식으로 기존의 건축과 거리를 갖으려고 했고 대안을 찾으려고 했는지를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안도 다다오 이후의 세대라고 본인 스스로를 말하고 있는 구마 겐고이기 때문인지 안도 다다오를 자주 떠올려보게 되고, 안도 다다오가 바라보았던 세상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 이후 세대인 구마 겐고는 그 세상과 달리 보고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인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변화된 시대에 걸맞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보려고 애썼던 구마 겐고의 고민과 노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 장소가 갖고 있는 특징과 개성에서 벗어나 콘크리트와 철 그리고 유리로 대표되는 근대 건축과 분명하게 거리를 갖으려고 한 구마 겐고가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고 여러 건축적 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들을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건축을 어떻게 쌓아올렸는지를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여러 거장들의 건축을 받아들이고 한계들을 생각해내며 자신의 건축을 통해서 그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으려고 했는지를 그들과는 다른 접근을 해보려고 했던 이유를 자신의 건축을 통해서 더 잘 이해시키고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사람이라는 중심을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설명해주고 있다.

 

근대 건축의 한계와 함께 그 한계가 더욱 절망적인 흐름을 향하게 만들고 있는 관리사회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통해서 근대 건축 그리고 구마 겐고의 말을 그대로 활용하면 20세기 건축을 넘어서고 다른 접근을 해보자는 제안은 한편으로는 그리 특별하지 않게 들리기도 하지만 스스로 겪었던 어려움들과 여러 시행착오들 끝에 완성된 건축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들리지 않고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건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면서 그 고민과 생각 속에서 완성한 건축들이 어떤 이유와 입장 속에서 완성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고 비관과 절망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낙관과 긍정을 찾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2011311일에 일어났던, 우리들에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더욱 깊이 기억되는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한 이후 건축에 대한 더 깊은 물음과 고민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자신만의 나름대로의 대답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내용에서 기존의 건축이 영원불멸을 말했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의 건축은 불멸이 아닌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말해줘야만 한다는 결론은 건축이 아닌 철학에 대해서 글을 읽는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했고 알아채지 못했던 건축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결론에 대한 간결한 설명과 같은 약한 건축이라는 구마 겐고만의 건축에 대한 입장과 그 생각을 건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약한 건축에 대한 입장을 꾸준히 수정하고 보완하고 있어 보인다.

 

건축의 주류에 있으면서도 항상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빠져나가 반주류에서 머물려고 하는 나는...’의 저자 구마 겐고의 반골기질은 특별히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런 성격과 기질 속에서 자신의 건축을 어떻게 만들었고 완성시켰는지를 흥미롭게 말해준 ...’는 단순히 건축을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넘어서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더 생각해보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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