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공간 - 어느 건축가의 은밀한 기록 여행의 공간 1
우라 가즈야 지음, 송수영 옮김 / 북노마드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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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안심할 수 있는 시공간과의 만남, 이것이 호텔의 존재 이유다.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서비스가 담긴 설계의 산물인 호텔 게스트룸을 찾아 스케치하는 여행을 앞으로도 절대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여행이란 게스트룸을 측량하고 그리는, 말하자면 호텔 탐험의 여정이다.

 

안전하고 조용하고 청결하다면 다소 인테리어가 소박해도 그 호텔은 인상이 좋다. 욕실에 들어가 옷을 다 벗고 욕조에 몸을 담그는, 말하자면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될 수 있는 안도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호텔을 발견하면 나는 보물을 손에 쥔 듯한 기분이 된다. 낯선 곳에서 안심할 수 있는 시공간과의 만남, 이것이 호텔이라는 존재의 일면임은 틀림없다.

 

 

 

 

저자는 여행의 공간을 통해서 다른 (건축과 관련한) 글쓴이들과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에 대한 일반적인 방식-접근은 외형에 대해서 그 개성과 특별함을 그리고 주변과의 조화에 대해서 혹은 그것 말고도 찾아볼 수 있는 다른 특징들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고 있고 확인하려고 한다면 여행의...’의 저자 우라 가즈야는 (물론 건물-건축의 외적인 모양새와 주변에 대한 관련도 고려하지만) 철저할 정도로 내부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고 그 공간의 구성과 조화에 대해서 꼼꼼하고 치밀하게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저자의 생각과 입장과는 달리) 반대로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우면서도 묘한 반발감이 느껴졌었다.

 

저자의 꼼꼼하고 상세한 확인과 다양한 호텔에 대한 경험과 이해와 호기심들 그리고 덧붙여지는 일화들과 소소한 정보 및 개인적인 소감들이 짧은 글들로 묶여져 쉽게 읽혀질 수 있었고 (너무 짧은 내용으로 인해서 지나친 밋밋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당시 투숙했을 때 (아마도) 호텔에서 제공되는 편지지나 종이들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공간 구조가 배치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려주는 저자의 간결하면서도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에 관심이 들기도 하지만 (반복해서 말하지만) 분량이 너무 짧은 경우도 있고 간간히 반복되는 언급들도 있어서 조금은 심심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저자의 경험 자체에 대해서 뭔가 질투심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호텔이라는 곳을 어렵지 않게 들락날락거릴 수 있다는 것에 여러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에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위치에서 수많은 호텔들에 관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불필요한 반감과 시기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어쩌겠나? 그걸 숨기려고 하기 보다는 그렇게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 그런 잘못된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야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니.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여러 경험과 그 공간이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여러 가지로 관심이 갈만한 부분들이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약간은 허무한 느낌도 들게 되는 것 같다. 그걸 알아서 뭐하냐는 식으로...

 

살다가 몇 번 경험하지도 못할 것에 그렇게 비교하고 검토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런 경험들을 자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적개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몇 번 경험하지도 못할 것을 세세하게 따지고 골몰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마음이 앞서게 된다.

 

다만,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듯이 여행이라는 것이 일상에서 벗어나고 일상에서 일탈된 경험이고 그 경험 중에서 어딘가에서 머물고 잠들고 휴식을 취하는 것-공간은 무심히 지나칠 수 있지만 반대로 무척 중요한 상황-공간이고 어떤 부족함도 바라지 않는 상황-공간이기 때문에 그 공간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있는지, 수많은 방문객들을 통해서 어떤 최적의 공간과 비율 그리고 서비스를 찾아내고 있는지를 알아가면서 우리들의 일상 공간에서도 그 앎을 통해서 다양한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자와는 달리) 오히려 호텔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공간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실내를 좀 더 효율적이고 (혹은 화려하게) 꾸며내는 것을 업으로 하는 실내건축가들의 공간들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어버리게 된다.

 

실내건축가들의 일상적인 공간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어떤 식일까? 그들은 어떤 식으로 공간을 생각하고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공간은 그 벗어남으로 인해서 불편함과 안락함 모두를 감수하면서 (혹은 마음껏 즐기면서) 그 공간을 경험하고 (짧든 길든 그 시간 동안에는)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들이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불편함과 안락함 중 안락함은 좀 더 만들어낼 것이고 불편함은 최대한 줄여나갈 것이니 어떤 식으로 그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그런 벗어남을 통해서 머물고 있는 공간을 재구성하고 수정하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무척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편안함도 불편함도 바꿔가기 보다는 일정하게는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습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고려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편안함을 쉽게 잊기 마련이고 우리들의 불편함 또한 쉽게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저자의 몇 시간에 걸쳐서 실측하고 확인하는 작업들을 폄하하거나 무시하고 싶진 않다. 저자는 그 (실측의) 과정을 통해서 공간의 구성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공간의 이유와 이해를 찾게 되고 다른 공간을 만들어나갈 때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었던 것 같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고려사항들을 검토하게 되었을 것이니 그런 검토사항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주 조금이라도 엿보고 엿들을 수 있는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고 굳이 마다하고 싶지도 않다.

 

모르는 것이 많을 때 아는 척을 하게 될 때에는 자신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뭔가 아는 척을 할 때의 쾌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저자의 소중한 경험과 박학함을 내 것으로 만들고 모르고 잊었던 것들을 다시금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을 더 말하자면 수록된 멋진 그림들처럼 인상적인 책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책표지를 펼쳐본다면 좀 더 멋져진다) 좀 더 신경을 기울여 내지에 있는 그림들에 적혀진 내용들도 번역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만약 재판이 허락된다면 그런 부분들이 개선되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참고 : 1. 저자가 묵어간 호텔 중에서 한국에 있는 호텔도 한 곳 있다. 그리 찾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지만...

2. 꽤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일까? 2권도 출판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노력해서 읽을 생각은 없다. 그래봤자 호텔이겠지... 라는 생각이다. 더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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