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외 을유세계문학전집 42
소포클레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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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런 걸 왜 읽어?



그리스 비극을 읽을 때면, 혹은 다른 고전들을 읽게 될 때면, 그게 아니면 여러 난해한 인문학 관련 책들을 읽을 때면 저런 질문을 받게 될 때가 곧잘 있다.


그 럴 때마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만 귀찮으니까 간단하게) 재미나서 읽는다고 대답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미를 느끼는 것-방법이 각자 다르기 마련이니까. 대부분은 그런 대답에 그냥 대충은 수긍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그런 식의 대답을 들으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표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나도 그런 질문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서로 그런 것으로 피곤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기분으로 적당하게 이해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어쩌다가 열심히 설명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괜한 것에 열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았고, 우선은 어머니부터 내가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고 열심인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낳아준 어머니도 이해해주질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어머니도 비슷한 말을 했을 때, 어디서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하느냐고 말대답해서 한참을 다툰 적도 있어서 경험상 그런 질문은 가볍게 들어주고 그 사람과 되도록 (책과 관련해서)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무언가를 읽는 것에 어떤 식으로 재미를 느끼는지는 각자가 다 다른 것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까.


이 런 말을 꺼낸 다음에 굳이 그리스 비극을 왜 읽는지를 설명한다면, 그리스 비극을 읽게 되는 이유는 그 비극을 경험하는 과정과 그 비극을 직접적으로 경험했을 때의 반응에 대해서 큰 호기심을 느끼기 때문이고 비극, 비참, 괴로움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의 반응의 원형을 혹은 그 비극을 경험하는 가장 원초적인 순간을 그리스 비극은 무척 극적으로 만들고 있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작가들 중에서 특히 소포클레스의 경우 등장인물들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에 집요하게 몰두하면서 비극을 피할 수 있는 혹은 비극이 비극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서도 그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고, 그러면서 더욱 비극성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반복하면서 읽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가 만들어낸 비극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혹은 경험할 것을 예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그의 비극이 유난히 인상적으로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소 포클레스의 대표작이면서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고 있는 (거기에 프로이트 덕분에 좀 더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한) ‘오이디푸스 왕’과 그 비극 이후의 이야기들을 모은 ‘오이드푸스 왕 외’는 오이디푸스가 겪은 비극과 함께 그가 겪은 비극과 그 비극 이후의 또다른 비극들을 알 수 있으면서 그 비극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알 수 있으며 혹은 깨달을 무언가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렇게 진지하고 지나치게 열중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

그 비극 자체를 경험하면 각자가 각자에게 맞는 무언가를 느낄 것이다.


조 금은 느슨하고 약간은 겉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어쩐지 길고 긴 후일담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고 있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보다는 ‘안티고네’가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고, 결국에는 ‘오이디푸스 왕’이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선택을 바꾸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반복해서 읽어도 여전히 재미나게 읽혀지게 되고 있고, 그 비극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과연 내가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격렬한 감정과

우연하게 알게 되는 진실의 실마리들

감정적이고 고집스럽게 굴면서 진실을 알고자 혹은 자신의 감정과 고집에 집중하고 노력하다가 결국에 밝혀지게 되는 혹은 폭로되고 파국으로 향하게 되는 과정이

어째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관심을 갖게 되고 재미를 느끼게 되는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하게 되기만 한다.


현명함과 깨달음을 찾으려고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할 뿐인 인간의 오만함과 아둔함을 알면서도 모르게 되는 내 무지에 혹은 한심함에 대한 최소한의 (깨달음을 위한)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벗어나려고 하고 있고 용감하게 맞서려고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신들이 만들어낸 비극에 끼워 맞춰지고 그 비극의 운명에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운명을 나는 모르면서도 혹은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왜 알려고 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고, 그게 결국 내 운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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