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의 해고일기 - 쌍용차 투쟁 기록 2009-2014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2
이창근 지음 / 오월의봄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려운 내용의 글은 아니지만 쉽게 읽혀지지 않는 글이 있다.

 

무언가를 생각나게 만드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글일 경우 책일 읽다가도 잠시 책을 덮고 그 생각을 따르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게 아니면 글이 만들어내는 마음 아픔으로 인해서 쉽게 읽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들 말고도 여러 경우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그런 경우들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창근의 해고일기는 어떤 식으로도 쉽사리 읽혀지지가 않게 되는 책인 것 같다.

 

마음도 아프고

부끄럽기도 하고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무관심하게 살아왔던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기도 하고, 그동안 나는 도대체 뭘하고 지냈나? 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저자인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이창근(정확한 직책은 아마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으로 알고 있다)‘... 해고일기를 통해서 단지 쌍용자동차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 이후 (꼭 이명박 정권 이후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미 이전부터도 있었던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 일어났던-벌어졌던 (노동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 외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온갖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두루 살피면서 저자의 글을 읽는 이들에게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있어왔는지를 그리고 어떤 행동-판단이 필요한지를 자세히 말해주고 있고 그 스스로의 생각-마음을 글을 통해서 다잡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글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글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향하기도 하는 글이기도 한 것 같다.

 

저자의 글은 매섭다기 보다는 깊고 진득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글에서는 핏발선 분노로 얼룩져 있다는 느낌보다는 낭패감과 좌절, 지금까지의 고된 시간과 앞으로의 고된 시간에 대한 절망감과 피곤함을 좀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물론,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온갖 문제들과 부조리를 직접 경험하기도 하고 많이 지켜봤기 때문에 들끓는 분노가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냉소적이거나 환멸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분을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분노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침을 튀기며 주장하는 느낌이 들기 보다는 최대한 인내하고 곧장 내뱉기 보다는 목안 속에서 오래 머물게 한 다음 꺼내는 분노인 것 같기에 차분함을 느끼게 될 때도 있고 고이 간직한 뜨거움을 글로 정돈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래서일까? 글이 글로 읽혀지기 보다는 여러 감정들로 읽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에서는 깊은 감정만이 아닌 통찰력과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분석력이 뛰어난 이들의 (이를테면 학자들이) 예리하면서도 어쩐지 너무 차가움이 커서 (혹은 분석에 기울어져서) 직접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힘겨움을 놓치는 경우가 아닌, 저자의 글은 현장의 목소리를 그리고 내몰려진 사람들의 응어리와 감정을 최대한 담아내면서도 그 감정에 매몰되기 보다는 일정한 거리감을 갖고 지켜보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에 여러 복잡함 속에서 가장 적절한 판단이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글과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글을 쉽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고

되도록 많이 곱씹어보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닮고 싶은 점들이 무척 많다.

쉽게 닮을 수 없겠지만.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급격한 보수화 (혹은 좋지 않은 의미에서의 원상복귀) 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고, 어떤 문제들을 불거지게 만들었는지는 좀 더 시간이 흘러야만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일어난 온갖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앞으로의 한국사회는 좀 더 극심하고 참혹하기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저자는 그 힘겨운 과정-싸움과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고 절망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찾아보려고 애써보고 있다.

 

쌍용자동차부터 세월호까지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는 순간들 속으로 향하면서 그리고 여전히 쌍용자동차와 관련된 투쟁을 계속하면서 우리들이 놓치고 있고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주변으로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을 뿐이고 도무지 바뀌지 않고 나아지지 않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함께 연대해주기를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요청은 쉽게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게으름으로 가득한 내가, 비겁함과 변명을 더 쉽게 찾으려는 내가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겠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함께 지켜보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는 깨달음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좋은 글들이다.

뜨거운 글들이기도 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움을 느끼는 글들이기도 했다.

승리가 아닌 패배로 얼룩진 글들이기 때문에 더 좋아지기 보다는 더 나빠지는 과정들만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마음 편하게 읽혀지진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읽게 만든다.

어쩔 수 있나?

저자가 바라보고 들려주는 것이 현실이니... 그저 같이 지켜보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될 수밖에.

 

어쨌든, 읽어라.

우선은 읽어라.

그런 다음에 뭐든 말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