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읽어버린 이상 그것에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이 놀라움으로 가득한 책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걸 읽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갖게 되지만 이런 책을 알게 되고 읽게 되었다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쁨도 누리고 싶기에 부족함으로 가득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알게 되고 읽게 된다는 것이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이처럼 소중한 책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심을 비울 수 없으니.

 

읽는 내내 감탄하게 되고 읽음의 과정을 그리고 읽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무언가를 써보려는 욕망을 이처럼 감탄하도록 옹호해주는 책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그저 고맙고 기쁠 뿐이다.

 

어쭙잖고 하찮은 글이라 무언가를 읽고 생각하며 그 떠올려진 생각들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에 항상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그럼에도 읽고 생각하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을 차마 지울 수 없었는데,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옹호를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당연히, 저자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저자가 언급하는 위대한 선인들을 따르기에는 부족함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조금이라도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은 과격한 느낌이 들게 되는 제목이고, 책과 혁명에 관한 기록이라는 부제 덕분에 뭔가 쎄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정작 내용을 읽어 본다면 무척 친근한 방식의 글로 수다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생각들을 알게 될 것 같다.

 

저자인 사사키 이타루는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학자라고 하는데, 그의 저서를 읽게 된 것이 ‘잘라라...’가 처음이기 때문에 어떤 성향이라고 말하기가 쉽진 않지만 충분히 존중하고 그의 생각을 경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로 무언가에 대해서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관심을 갖게 된다.

 

저자가 ‘잘라라...’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의외로 무척 단순하다. 물론, 그 단순함 속에 감춰진 어려움과 어쩔 수 없음 그리고 곤혹스러움을 생각한다면 그리 단순하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입장은 간단하다고 볼 수 있다.

 

온갖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비평가가 되기를 거부하고, 어떤 영역에 한정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려는 전문가가 되기도 피하기를 바라며 어리석음을 선택하기를 저자의 말처럼 전체주의적 환상에서 벗어나 다시금 읽는 것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해서 읽어내고 그 읽음과 생각을 글로 써내고 실제로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서 맞닥뜨리게 되는 고독과 광기를 찬미하며 읽는 것을 그리고 생각하고 쓰는 것을, 읽게 되어버림으로써 그걸 읽어버렸음을 외치고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는 실천의 놀라움을 우리에게 말해주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무척 간단하고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을 무척 진지하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저자의 논의를 계속해서 따르게 된다면 읽음과 실천의 과정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변화들을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알게 되면서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저자는 자신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사례로 마르틴 루터, 무함마드, 중세 해석자 혁명을 말하고 있는데, 혁명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폭력을 동반한 피로 얼룩진 과정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은 조그마한 변화들이 쌓여지며 엄청난-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며 급격하고 격렬한 변화를 동반한 혁명에 대한 우리들의 환상을 그리고 낭만을 조금은 바로잡아주며 읽음을 통해서 그리고 써내려가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혁명이 일어났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마르틴 루터가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는 과정을

그리고 그것을 베껴 쓰고 번역하면서 계속해서 되풀이하며 읽고 쓰는 과정을

저자의 표현처럼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수준의 읽음을 통해서 어떤 혁명-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알아가면서 글이 갖고 있는 힘, 읽고 쓰고 그대로 행하고 그것에 대해서 말함을 통해서 어떤 거대한 혁명-전환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여러 근대적인 발상-생각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며 혁명의 본질을 그리고 근대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처럼 글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다시 써내는 과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저자는 단순히 읽는 것이 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고, 그 읽음이 단순히 글만이 아닌 수많은 의미에서의 읽음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를 깎아내릴 생각으로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무함마드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고, 그 논의의 과정 속에서 지금 시대의 유행병처럼 퍼져 있는 종말론에 대해서 수없이 끝과 최후를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비난하며 그 열망이 병든 생각임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세상을 좀 더 길게 바라보고 그런 관점 속에서 이해를 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한편으로는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런 관점 속에서 생각하기가 생각처럼 쉽지도 않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지금 시대의 시대정신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떠올려지게 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읽기와 관련해서 가장 근본적인 혁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중세 해석자 혁명을 통해서 어떻게 사회가 재구성되는지를, 읽고-고쳐 읽고-고쳐 쓰고-실천하고 그리고 그걸 다시금 반복하는 그 지난한 과정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뒤바꿨는지 알려주며 중세 해석자 혁명이 갖고 있는 본질을 그리고 그 이후 어떤 식으로 모든 것이 변화되었고 그 변화를 명확하게 파악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어떤 식으로 모색해야 할지를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다.

 

 

만들어낸 것이 인간이라면, 우리 인간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할 터입니다.

반드시, 반드시요.

 

 

저자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무척 새로운 방식으로 읽음을 생각함을 씀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행함을 얘기해주고 있고, 안이한 방식으로 비극과 끝을 말하는 이들을 비난하며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유치한 감수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읽음을 글을 피하지 않고 글과 마주하며 고독한 싸움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를, 우리들에게 자신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

 

이렇게 충격을 받을 정도로 글을 읽고 생각하고 쓰고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알게 만들어줘서 고맙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참고 : 저자는 피에르 르장드르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국내에는 번역된 책이 없어서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조금은 아쉬웠다. 물론, 어차피 페르낭 브로델의 책도 전혀 읽은 것이 없으니...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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