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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과 창조의 시간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5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평점 :
아버지들의 죄 : http://blog.naver.com/ghost0221/60202496786
죽음의 한가운데 : http://blog.naver.com/ghost0221/60203455909
800만 가지 죽는 방법 : http://blog.naver.com/ghost0221/60203455963
무덤으로 향하다 : http://blog.naver.com/ghost0221/60205072329
움직이는 손가락이 쓴 글은 영원히 존재한다.
너의 모든 독실함과 기지를 모아도
한 행의 절반도 지우지 못하며,
너의 모든 눈물로도 단어 하나 씻어 낼 수 없다.
범죄소설-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지루할 정도로 계속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더더욱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로렌스 블록의 대표적인 작품인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로렌스 블록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매력과 흥미진진한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 매튜 스커더의 독특한 개성 덕분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독보적인 개성을 만들어내고 있을 정도는 아닐지라도 깊이 공감되고 함께 여러 난관들과 어려움을 겪게 되는 기분을 잘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유난히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매튜 스커더의 내면적 갈등과 스스로가 만든 어둠을 이겨내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으로 인해서, 작품에서의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어둠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무척 현실적인 느낌을 갖게 만드는데, 바로 그런 점이 매력적이지만 반대로 그런 점으로 인해서 불편한 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도록 만들어 로렌스 블록의 작품을 멀리하려고 하려는 사람도 있게 되는 것 같다.
하나의 사건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해내는 것이 아닌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하다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뚜렷하게 잡혀지지 않는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흥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고, 개인적인 갈등과 고민 그리고 복잡한 기분을 끊임없이 독백하는 내용들을 통해서 좀 더 인간적인 면을 그리고 죄책감과 함께 다양한 감정의 조각들을 확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여러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려고 만들고 있다.
사건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홀로 골똘히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신경하게 내버려두지만 반대로 어떤 순간에는 누구보다도 집요하게 달려들면서 조금씩 진실을 향해서 접근하는 과정은 박진감이나 긴박감과 강렬한 짜릿함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흥미롭기 때문에 중독된 것처럼 계속해서 매튜 스커더 시리즈를 찾게 되는 것 같다.
한 번 알게 된다면
한 번 읽게 된다면
매튜 스커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언제나처럼 술에 찌들어 있고, 피곤함으로 가득하며, 투덜거리는 것인지 죄책감과 괴로움 속에서 이런 저런 고민들을 내뱉고 있는 것인지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 매튜 스커더의 매력을 잘 살려내고 있는 ‘살인과 창조의 시간’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던 ‘아버지들의 죄’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여러 가지로 부족함을 느꼈던 ‘죽음의 한가운데’에 비해서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매튜 스커더는 항상 그렇듯이 주어진 의뢰에 대해서 굳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없이 (마치 운명처럼)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조사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씩 무언가를 알아가면서 인간의 본성과 추악함을 그리고 그런 암울함 속에서 매튜 스커더는 최선을 다해서 사건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깊숙하게 개입되면서 원하지 않던 갈등을 겪게 되고 진실을 마주치게 된다.
그저 시간을 낭비하기 위해서 온갖 사람들을 들쑤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점점 더 의문으로만 가득하던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고 혼란스러운 윤곽을 다듬어내면서 숨겨져 있던 진실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감춰진 진실이 어떤 추잡함을 폭로하게 되는지를 빼어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식으로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사람의 의뢰를 받아들이게 되고, 저마다 충분히 의뢰자를 살해할 이유가 있는 이들 중에서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려고 하고 있는 ‘살인과...’는 조금은 복잡할 수 있는 진행을 부족함 없이 그리고 복잡함 없이 진행시키고 있고, 헤매지 않는 진행 속에서 충분한 살해동기와 여러 이유들을 그리고 개운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결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완성시키면서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과 추악한 뒷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좀 더 복잡한 구성을 의도했는지 후반부에서 지나치게 비비꼬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을 갖고 불만을 말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마무리를 흠잡고 싶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그럭 저럭 참아내게 되는 것 같다.
어차피 이야기의 중심에는 매튜 스커더가 있고, 그가 어떻게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지, 어떤 식으로 진실에 접근하고 그 과정 속에서 여러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되는지가 핵심인데, 로렌스 블록은 어떤 식으로 위기를 만들어내고 고민을 만들어내야 할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매튜 스커더가 실마리를 찾아내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는 등 여러 모습들을 잘 살려내고 있었다.
매튜 스커더라는 독창적인 개성을 갖고 있는 등장인물을 갖고 어떻게 이야기를 꾸미고 진행시켜야 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보다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을 어려움 없이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운 점들을 얘기하게 된다면, 이후의 작품들에서 좀 더 도드라지게 되는 사회적인 기준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정의가 아닌 매튜 스커더 개인이 생각하는 정의와 함께 그 자신의 판단에 따른 선택에 대해서 어떤 고민이 뒤따랐는지를 별다르게 설명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들의 죄’에서 보여주었던 묵직한 마무리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들게 될 것 같다.
또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애꿎은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에 대해서 이후의 작품들이었다면 좀 더 심각한 분위기로 이끌어져서 무척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로 짓눌려졌을 것 같은데, ‘살인과...’는 그런 분위기들을 약간은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뇌의 시간과 방법도 이후의 작품들과는 조금은 가볍게 다뤄지고 있어서 ‘800만 가지 죽는 방법’과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이라면 무척 의외의 느낌도 들게 될 것 같다.
어떻게 본다면 조금은 간략하게 압축해서 진행시켜서 속도감을 만들어내고 가벼움을 느낄 수 있기도 한데, 그게 의도된 선택인 것인지 그게 아니면 아직까지는 명성을 얻기 전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피하려고 했던 것인지는 쉽게 판단되지 않게 된다.
느린 진행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느슨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기도 하지만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항상 법이나 도덕이 제시하는, 사회적으로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해결을 제시하기 보다는 매튜 스커더 본인이 생각하는 올바름과 현명함을 내세우는 경향이 컸는데, 이번에도 그 자신이 생각하는 적절한 선택을 보여주고 있고, 그 선택에 대해서 여러 생각들과 의견들을 내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후의 작품들을 생각한다면 무고한 이를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죄의식이 계속해서 떠올려지고 매튜 스커더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았는데, 그게 너무 흐지부지하게 지나치고 있기 때문에 의외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를 협박하게 되어서 가뜩이나 뒤쫓기는 감정으로 힘들어 하던 사람을 결국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 쉽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무척 아쉬운 내용이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입장에 내가 놓였다면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하지만 매튜 스커더가 경찰 생활을 그만두고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된 원인을 생각한다면 그게 영 개운하지 않은 내용으로 남겨지게 된다.
설정 자체가 독특하기도 하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의 모습들 속에서 흥미로운 내용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특징들을 매튜 스커더 방식의 범죄소설-하드보일드에 적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꾸밀 수 있는지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워나 매튜 스커더의 매력이 크기 때문에 읽기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짧은 분량(230쪽)의 내용 덕분에 무척 빠른 속도로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로렌스 블록과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음 매튜 스커더 시리즈도 번역도 벌써부터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