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김재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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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재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소설가 천명관의 고래를 읽은 직후가 아니었다면 꼬끼리라는 제목에 유달리 호기심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고, 그랬다면 이 생각보다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무겁고 갑갑함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서둘러 읽기 보다는 조금씩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단편들을 접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이런 우연을 좋아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악연이라고 해야 할지...

 

함께 수록된 문학평론가의 해설과 작가가 직접 쓴 작가의 말을 통해서 그녀의 작품세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무엇을 담으려고 하고 있고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를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걸 읽어보면 그녀의 작품들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을 것이지만, 거기에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인다면 간단하게 말해서 소설가 김재영은 1980년대 엄혹한 시절을 이겨내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이들의 감수성과 생각들이 변해버린 시대 속에서 어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시대를 지켜보고 있는지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좌절감과 무기력

뒤처지고 있음에 대한 초조감과 낭패감

과거에 대한 회고와 회의와 후회

열정으로 가득했던 감정이 소진되었을 때의 초라함

순수한 감정이 어떻게 속물의 욕망으로 변하게 되는지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고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고 있으며, 현재는 어떻게 과거를 잊고 변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을 바꾸고 뒤집으려고 했던 이들이 어떻게 세상에 녹아들어가고 있고 더럽혀지는지를,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좌절감과 패배감 속에 빠져드는지를 계속해서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

 

이처럼 각각의 단편들은 실천문학 혹은 참여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의 본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어떤 방식으로 변한 시대를 바라볼 수 있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고, 그 여러 시도들 속에서 부재하거나 무기력한 남성-아버지의 모습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악다구니하는 모습들과 시대의 흐름에 내동댕이쳐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때로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그리고 때로는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다뤄내고 있다.

 

소설집의 제목과 동일한 코끼리아홉 개의 푸른 쏘냐와 같은 작품은 이주노동자들의 척박하고 고통만으로 가득한 삶과 가혹한 환경을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도 절망감을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과 꿈꾸기만 하는 희망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후의 작품들은 과거를 담아내거나,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모습을 담아내는 등 여러 방식을 통해서 지금의 한국사회의 모습을 얘기해보려 하고 있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회고하고 기억하면서 어떻게 열정이 뭉개졌고 삶의 궤적이 변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내용들 속에서 여러 상징들을 배치함으로써 좀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내지 못한 좌절감 속에서 맞이한 새로운 세상은 좀 더 복잡하기만 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지 난감하게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버린 기분이었을 것 같은데, 바로 그런 현기증과 좌절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으며 변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 조롱과 비난 섞인 시선 보다는 어째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찬찬히 살펴보려고 하는 냉정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예리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은 그 복잡함과 빠져나올 수 없음에 대해서 정교함이 좀 더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성향의 작품은 보기 드물었고, 솔직히 접한 적이 있었나... 싶기도 했기 때문인지 무척 인상적이었고, 조금은 괴로움 속에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그녀의 작품을 많은 이들이 선호할 것 같지는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얼마만큼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시도들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좀 더 얘기되며 함께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읽음으로써 마음이 불편하게 되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진실이니 그저 함께 바라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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