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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장하준에 대해서는 그 명성을 이미 예전부터 많이 듣기는 했지만 어쩐지 그의 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왔다. 그의 논의 대부분이 이미 케인스에 대해서 혹은 마르크스(맑스)에 대해서 알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크게 새로울 것 없는 논의들이었기 때문에, 일정하게 새로운 내용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전의 논의들을 보다 정돈되고 객관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어본다면 이미 경험적으로 혹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보다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입장과 입장의 논쟁이 아닌 실질적인 사례들과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쉽게 반박하기가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이미 장하준의 논의에 다른 방식으로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들에서 아주 새로운 접근을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논의들이 중요한 점은 보다 상세한 사례들과 역사적인 경험 그리고 누구도 쉽게 반박하기 어렵게 만드는 객관적 사실들을 토대로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반박하라면 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 반박은 궁색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단단함을 느끼게 된다.
장하준의 기본적인 논의는 경제학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공부를 한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생각을 받아들인 입장에서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고, 그 논의의 핵심은 현재의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완전시장과 개방, 그리고 규제 없음이라는 기본적인 입장이 얼마나 위선으로 가득한 입장인지를 입증하려고 하고 있고, 그 입증을 위한 사례를 선진국들이 지금의 위치로 올라서는 과정을 통해서 입증함으로써 더욱 반박하기 어렵게 만들려고 한다.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제도와 정책인지에 대한 물음과 사다리를 걷어차는 이들이 말하는 바람직한 제도와 정책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검토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는 일반적인 경제학 서적들이 갖고 있는 수학적이기만 한 논의들과는 달리 역사적인 검토를 통해서 일반인들도 (보다) 쉽게 읽어낼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도록 하면서 그 논의의 견고함 또한 부족함이 없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유무역이라는 단어-개념으로 요악할 수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이들의 기본 입장이 갖고 있는 위선-오해-왜곡에 대해서 역사적인 접근으로 반박하고 있는 ‘사다리 걷어차기’는 (현재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산업-무역-기술을 역동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경제발전을 위해서) 어떤 과정들을 겪었는지를 검토하면서 지금의 개발도상국들이 겪고 있는 입장과 비교하고 있다.
영국이 보여주었던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과 여러 정책-제도들, 마찬가지로 미국과 독일, 프랑스, 스웨덴, 기타 유럽 국가와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서 국가별 차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한 보호주의와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점은 지적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위치에서 앞서가기 위한 전략과 따라잡기 위한 국가들의 대응을 파악하며 현재의 선진국들이 벌이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모습들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경제 개발을 위한 정책들에 대한 선입관과 함께 실제 내용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려주고 있고, 현재 개발도상국들에게 요구하는 정책-제도들이 지금의 선진국들의 경험과 얼마나 다른 내용인지를 반복해서 비판하고 있다.
이후 선진국들의 제도 발전(민주주의, 관료, 제도, 정책, 기업, 은행, 금융, 복지 등)의 역사와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더듬어 비교-확인하면서 얼마나 다른 입장과 진행을 보이고 있고, 선진국들의 강요로 인해서 (개발도상국들이) 성장하는 것이 아닌 침체로 향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장하준은 기본적으로 지금-현재의 상황에 대한 재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가 논의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거나 부분적으로는 동의하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장하준의 논의들은 상식적인 생각과 사상적인 입장이 아닌 보다 정교한 사례들과 역사적인 접근을 토대로 반박하기 쉽지 않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약간의 비판과 반박은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자본주의 발전과 지구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장하준의 입장을 옹호하나 그렇지 않은가를 떠나서) 장하준의 의견에 일정하게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장하준이 제시하는 내용은 부분적으로 현재의 선진국들이 일정하게 포기해야 할 부분과 손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보다 안정적인 방향-성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부분적으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정하게 동의할 내용들이 많다고 생각될 것이다.
여러모로 새로울 것 없으면서도 흥미로운 탐구였던 것 같고,
그렇기 때문인지 좀 더 인상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함께 혼란스러운 현재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