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데니스 루헤인의 세 번째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좀 더 고전적인 방식의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떠올려지는 레이먼드 챈들러 작품들과의 유사성들이 생각나게 되기도 하지만 유사성과 차이를 검토해내기 보다는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을 어떤 방식으로 고전적인 방식이 아닌 현대적인 방식으로 이야기 구성을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갖게 된다.

 

실종된 여인과

그녀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험과 가려져 있던 추악한 진실

 

이 두 개의 중심은 고전 작품들과 큰 차이를 갖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내는 내용-과정에서는 고전 작품들과는 꽤 달라진 모양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러 차이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점들이 흥미를 갖게 한다.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들에서 접했던 추악함을 잘 이어받고 있고,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흥미와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는,

단점들을 찾게 되기보다는 장점들을 통한 재미와 흥미를 더 강조하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와 긴장감 속에서 독서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이야기 구성에서는 이전 두 작품들 보다는 좀 더 단순한 이야기 구성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점 때문에 작품이 이전 작품들 보다는 심심하다는 평가를 하게 되기보다는 좀 더 직설적인 내용들을 담아내며 좋은 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반전을 좀 더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이야기 구성과 형식이면서도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또다른 재미이기도 한 사회비판적인 입장을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도 한 작품인데, 트레버 스톤으로 대표되는 자본가-자본주의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과 일종의 계급적인 적대감-혐오를 내용의 후반부에 배치시키면서 이야기의 재미와 함께 좀 더 그 재미와 긴장감을 더하는 것에 성공하고 있는데, 그 비판과 함께 신성한 관계이었어야 할 데지레 / 트레버의 관계가 얼마나 삐뚤어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과연 돈-자본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부유함과 더해지기만 하는 탐욕-욕심이 어떤 비극과 추악함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의도하면서 단순히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영역에서만이 아닌 준엄한 사회비판 소설로서의 영역으로 올라서기도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재산상속이라는 무척 익숙하면서도 다른 관점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그 우연과 운명으로 가득한... 피로 맺어진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면서 그런 신성한 관계가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관계로 변질되는 상황-이유와 함께 그 관계와 대립되는 켄지 / 제나로의 관계를 통해서 대립과 균형을 찾는 데니스 루헤인의 빼어남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켄지 / 제나로는 세 번째 작품에서야 드디어 그들의 관계가 정리가 되는데, 팬들이라면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어가는 모습에 흐뭇함을 느끼게 되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오히려 그들의 관계가 좀 더 애매모호한 관계였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기 때문에(이를테면 멀더 / 스컬리의 관계처럼) 어떤 식으로 관계의 진전을 평가할지 조금은 고민되는 것 같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플로리다로 향하기도 하면서 좀 더 이야기에서의 공간적인 측면이 확장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보스턴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보스턴에 대한 애정과 상세한 설명 때문에 좀 더 사실성을 높이고 있고, 실종과 사이비종교 그리고 재산상속과 배신과 암투를 흥미롭게 엮어내고 있기 때문에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충분히 이전과 같은 재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사회비판과 켄지 / 제나로의 냉소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내뱉음을 통해서 여러 통찰력들도 찾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여러모로 재미난 독서가 가능할 것 같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가지로 흥미로웠다.

 

그리고...

 

켄지 / 제나로는 결국 마지막에는 함께함으로써 비로서 완벽해졌음을 스스로() 느끼면서 끝맺고 있는데, 그들이 느끼는 완벽해졌음을 느꼈음과 함께 이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음의 운명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완벽함을... 그 더할 수 없는 순간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다.

 

비로서... 나는 완벽함과 반대되는 운명의 가혹함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절반이 되는 것이 아닌 없음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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