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콘크리트 유토피아 ㅣ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곳에서 삶을 시작하고 (아마도) 삶을 마감하게 될 우리들은 어떤 존재로서 받아들어야 할 것이며 이해되어야만 할 것인가?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런 거창하거나 바쁘고 고된 세상살이 속에서의 뜬금없는 질문을 내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질문(들)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들을, 어떤 원인들-효과들이 있는지를 추측하고 생각해볼 수 있게끔 해주고는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논의는 박정희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파트 건설이 단순히 주택문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서 어떤 효과와 개선 및 문제점을 만들었는지와 같은 (인문사회학적 / 공학적인) 분석이 아닌 아파트를 하나의 존재로서 이해하면서 어떻게 우리들을 변화시키고 주변을 변화시키게 되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미셸 푸코와 조르조 아감벤 등이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이들의 논의를 무척 일부분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그들의 의견이 스며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되었든 그런 의미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삶의 조건과 풍경, 정서와 내면화 등 물질적인 측면과 함께 정신-정서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한 분석-해석-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논의를 위한 저자의 논의 방식은 조금은 독특한데, 저자는 논의의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놓고 있고 하나는 픽션 다른 하나는 팩트라는 장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팩트의 경우 일반적인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실제 사실들과 그 사실들을 토대로 한 분석들과 해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크게 특징지을 내용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앞선 픽션의 내용들의 근거를 제시하는 혹은 명확한 자료로서 제시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팩트는 일종의 부록과도 같은 의미를 갖게 될지도 모르지만 픽션에서 놓치고 있던 세세한 부분들을 좀 더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부차적인 내용으로서만 생각해서도 안 될 것 같다.
팩트의 경우 최초의 아파트라고 말할 수 있는 마포 아파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들의 생활방식-생활양식이 변화되는지를 그리고 아파트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되어가며 어떤 방식으로 중요성을 획득해 가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고, 아파트의 내부구조를 채워가는 과정에서의 변화와 구별짓기, 내부와 외부의 변화(상점, 여가, 교육 등)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아파트-내부를 채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되어버리는 가구와 가전제품들, 거실, 안방에 대한 분석들과 여가생활까지 논의를 이어지도록 만들어 단순히 아파트의 등장과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게 될 정도로 한국의 모든 공간을 채우게 되는 건설-배치-장악의 과정만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버림으로써 어떻게 우리들의 삶이 재구성되고 재인식되어버리게 되는지, 그 개조-변화를 어디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내고 있다.
마지막에 가서는 분당과 용인이라는 신도시를 대표하는 두 도시에 대한 짧은 논의를 통해서 노태우 정권에서 김대중 정권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어떻게 도시계획이 변화되었고 그 변화 속에서 아파트가 삶의 터전이면서 투기의 대상이고 재산증식과 교육, 소비생활과 노후안정을 위한 수단 등 한국사회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지를 자료와 분석을 토대로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팩트의 일반적인 논의와는 달리 픽션의 경우는 무척 이례적인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고, 과시적이고 현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로운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약간은 욕심이 지나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되지만... 그 욕심이 혹은 좀 더 다른 글쓰기가 성공적인지에 대해서 평가가 조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척 흥미로운 글을 만들어내고 있다고는 볼 수 있을 것 같다.
픽션의 경우 여러 관점을 오가고 있는데, 구체적인 사물로서, 아파트의 입장에 서서 논의를 하게 될 때도 있고, 전지적인 시점에서 하나의 시선-관점으로서 바라보게 될 때도 있고, 저자 본인의 시선에서 논의가 진행될 때도 있는 등 조금은 헷갈리게 만들기도 하고 여러 시선들을 정신없이-우왕좌왕 오가고 있기 때문에 어수선하고 난잡하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때로는 자긍심 속에서, 때로는 자기변호 속에서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아마도)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까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어떤 시선과 입장, 관점, 정신적-육체적 변화들을 보이고 있고 아파트를 통해서 어떤 의도와 전략이 있었는지를, 아무런 생각 없이 생겨나고 거주하고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어떤 변화들을 겪게 되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게다가 저자의 논의가 흔한 방식인 해외-서구의 철학적 사회학적 분석의 틀을 가져와 대입시키는 방식이 아닌 (물론, 그런 논의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밑바탕 속에서) 그런 논의들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고 자신의 논의-분석을 진행할 때 큰 의지를 하고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그런 틀을 가져오려고 하기 보다는 다양한 방식에 의지(소설을 통한 정서적 이해, 인터뷰나 회고록을 통한 사실 확인, 다른 국내 연구자들의 분석을 통한 접근 등)하여 논의를 진행시킴으로써 좀 더 한국사회에 들어맞는, 외부의 연구틀과 결론을 그대로 가져왔을 때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 거리감을 갖고(혹은 잘 체화시켜서 / 선별하며)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의미 있는 분석들과 결론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과장된 글쓰기 속에서 의미 있는 분석들과 흥미로운 관점들, 진지한 결론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독특한 글쓰기로서만 이해될 수 있지는 않지만 아쉽게도 인접해 있기도 하고 여러모로 비슷한 점들이 많기도 한 일본의 경우에 대해서 크게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공간 및 사회학적인 분석과 해석 그리고 결론이 대부분이라 아파트를 건설함으로써의 여러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상관관계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증이 해소되진 못했다.
저자에게 무리한 요구겠지만... 역시나 궁금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앞서게 된다.
흥미로운 논의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분석들이 제시되고 있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좀 더 논의를 이어지게 만들어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따로 할애를 해줬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러기에는 여러 한계들이 있었는지 서둘러 글이 끝맺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갖고 있던 아파트와 공간 그리고 사회라는 주제를 알기 쉽고 충분히 이해되고 설득될 수 있는 선에서 분석을 해놓고 있고 결론을 제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이 논의들을 이대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참고 :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픽션의 경우는 각 장별로 끝부분에 각주들을 모아놓고 있는 반면 팩트의 경우 개별적으로 밑부분에 설명을 해주고 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편집 과정에서 놓친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가장 적절한 추측을 해보라면 픽션은 내용 전개가 독백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따로 배치한 것 같고, 팩트의 경우 전형적인 인문학적 글쓰기라 밑부분에 적혀져도 문제될 것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