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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 인간사랑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여러 좋은 그리고 좋지 않은 평가가 뒤따르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이 지금과 같은 평가를 얻게 되는 첫 걸음과도 같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그의 거대한 야심의 시작임과 동시에 그의 현란하고 정신사나운 글쓰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젝의 글쓰기의 특징은 영화, 농담, 소설 등 다양한 예들을 통해서 자신의 논의를 이해시키고자 혹은 정당화시키려고 하는데, 일반적인 인문학자들의 예들이 보여주고 있는 막연함과 어려움과는 달리 조금은 익숙한 예들을 통해서 설명되기 때문에 무척 인상적이기도 하고 능수능란하게 인용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젝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 하나의 주제를 갖고 논의를 진행시키기 보다는 쉽게 정리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주제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단순히 라캉에 대해서 그리고 헤겔과 마르크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철학과 정치, 사회학에 대한 온갖 논쟁거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현란하고 흥미진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제대로 논의를 정리시키고 있기나 한 것인지 헷갈리게 되는 기분도 들게 된다.
지젝의 글이 종잡을 수 없다는 단점에 대해서는 변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젝과 같은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척 명확하게 자신의 논의를 정리하는 것도 아니니 사람들에 따라서 그의 글쓰기의 특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옹호자가 되기보다는 그의 팬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다. 즉, 그의 논의를 진지하게 검토하게 되기보다는 그의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높을 것 같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든 그의 논의는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 그리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고, 그의 생각을 이어받아 여러 생각들을 연이어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지젝의 논의가 갖고 있는 중요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젝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 무척 다양한 주제와 논의들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여러 새로운 방식의 해석과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지젝은 우선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주의에 대한 분석과 프로이트의 꿈에 대한 해석이 갖고 있는 유사성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자본주의의 물신주의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증상과 유사 / 동일하다고 주장하며 마르크스의 논의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마르크스의 논의 중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재검토하며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마르크스의 논의를 통해서 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와 환상에 대해서 분석하려고 하고 있다.
지젝의 논의의 핵심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르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냉소적인 실천에 대해서 / 모순된 행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분석을 하려고 하고 있고, 그 냉소적인 행동의 극단적인 형태의 하나로 파악하는 전체주의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지젝은 그동안 활발히 논의되다 갑작스럽게 더 이상의 논의가 중단되었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다시금 논의를 이어지게 하려고 하고 있고, 마르크스를 재검토하고 라캉을 통해서 / 경유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다시금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논의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지젝은 라캉과 헤겔 그리고 온갖 대중문화(영화, 문학 기타 등등)를 뒤섞으며 다양한 현대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해서, 어째서 우리들이 그저 그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지젝은 그렇게 행하는 이유를 이데올로기로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 이데올로기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라캉을 통해서 / 경유해서 정교하게 분석하려고 하고 있다. 지젝은 그렇기 때문에 라캉의 논의들을 검토하고 있고, 라캉의 주체의 형성과정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어떻게 사회적인 주체들이 기존 사회의 질서에 혹은 호명에 동일시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지젝은 이런 분석을 상세하고 정교하게 이어가기 보다는 곳곳에서 다른 논의들과 함께 현란하게 혹은 산만하게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종잡을 수 없는 진행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고, 그 논의들이 무척 설득력이 있게 그리고 반대로 무척 설득력이 없도록 만들게도 하고 있다.
지젝은 반복과, 오해, 그리고 우연성을 강조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혁명에 대한 시도가 실패했다는 이유로 인해서 느끼게 되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 가능성으로 인한 / 그 혁명으로 인한 지금까지에 대한 재평가에 대해서 보다 중요성을 말하고 지적하고 있다.
지젝은 라캉의 언어에 대한 논의에서 강조되는 메타언어는 없다는 명제를 강조하며 어떠한 외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논의하고 있고, 그 논의와 함께 라캉의 상상계 - 상징계 - 실재에 대한 설명과 그 논의를 다시금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와 연결시켜 이미 알면서도 알지 못하면서 /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하는지를 반복하며 논의하고 있고, 그 논의를 진행한 후 숭고함에 대해서 칸트와 헤겔의 논의를 라캉을 통해서 / 경유해서 이데올로기와 숭고함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혼란스러운 논의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라캉이 주체가 자신의 결여를 인정해야만 한다고 말하듯이, 지젝도 현실의 불가능성을 환상이 갖고 있는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과 함께 그 환상이 갖고 있는 불가피한 필요성에 대해서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모순을 모순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에 대해서 여러 생각들을 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이처럼 여러 다양한 주제를 갖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그의 수많은 논의들로 이어지는 하나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끝맺음이기보다 이어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어떤 주제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펼침으로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펼쳐져서 난장판이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기는 하지만 분명 그의 관심들은 충분히 검토해야 할 필요들이 있는 주제들이고 내용들이다.
참고 : 지젝의 이후의 논의들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의 논의들과는 많이 다른 결론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들을 많이 읽지 못해서 자세히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