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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00년 들어서 많은 문학 및 대중소설들이 되도록 ‘가벼워’ 지려고 하고 있고 보다 ‘개인적인 취향’을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의도적인(혹은 별다른 의도 없는) 가벼움과 개인주의에 대해서 입장에 따라 호감을 갖기도 하고 불만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최근의 경향은 진지함에 대한 거부감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처럼 단순하게 최근의 경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기도 하겠지만 분명 이전에 비해서는 무언가가 달려졌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다지 한국 작가들의 소설들을 자주 접하지는 않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특정 작가들을 열거하고 대표적인 작품들을 꼽을 수는 없겠지만 박민규 또한 그와 같은 최근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처럼 다뤄지는 것 같은데, 우연하게 읽게 된 (박민규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린) 그의 대표작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만을 본다면 그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언가 조금은 들뜨고 호들갑스러운 초반 분위기로 인해서 가벼움과 야구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작품처럼 느껴지게 되지만 중반과 후반부로 가면서 가벼움 속에서 묵직함을 던지고 있고, 예민한 통찰력을 안겨주고 있는 평범한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비범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 ‘나’라는 인물을 통해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얘기할 것 많은 시기를 숨차듯이 질주하고 관통하고 있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그저 잊혀졌고 패배로 얼룩졌던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과 함께 그 추억에 대한 수다를 풀어놓는 작품처럼 오해하게 만들며 읽는 사람을 끌어들이다가도 ‘프로야구’라는 스포츠와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만년 꼴지 팀을 통해서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점들 그리고 그 문제들을 공고히 하고 있고 더욱 확대재생산하게 만들고 있는 한국인들의 정신구조에 대해서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농담 따먹기를 하듯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도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특징적인 ‘소속’과 ‘계급’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고, ‘경쟁’과 ‘승자독식’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그러한 괴로움만 더해가는 사회구조와 일반적인 가치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고 그로부터 이탈하기를 권하면서 안정적이면서 환상으로 가득한 끝맺음을 보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좀 더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실천적이고 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로서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어떠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갖고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 것으로 (절충하듯이 혹은 성급하게) 정리하고 있는 끝맺음에 대해서 비판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 대해서 뭐라 말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난하듯이 진행하면서도 예리함을 갑작스럽게 내놓기도 하고 있고, 담담하게 내뱉다가도 갑작스럽게 감정을 토해내고 있는 박민규의 글쓰기가 꽤 인상적인 것 같다는 말 정도만 꺼내면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이와 같은 성향인지 아니면 조금은 다른 방식의 내용들인지 모르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유쾌하고 재미난 작품이었고, 충분히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가벼움과 평범함 그리고 느긋함과 무심함을 능청스럽게 옹호하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해서 그저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부분적으로는 불만스럽고 불필요하다는 장면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것조차도 만족감을 줄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봄날의 나른한 단잠과도 같은 달콤한 작품이었다. 물론, 그 달콤함은 꿈을 깨게 되는 순간 곧장 잊게 되고 쓰디씀만 남겨질 것 같지만...
참고 : 이상한 말이겠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이고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내용임에도 이상하게 이질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마치 다른 국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고 해외 작가가 쓴 소설인데 지명과 명칭, 이름만을 바꿔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딱히 국제적인 성향의 작품이라는 뜻도 아닌데... 이상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