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 - 에우리피데스 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서양 고전
에우리피데스 지음, 여석기 외 옮김 / 현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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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희극보다는 비극에 더 호감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그리스 희극을 읽을 때는 그저 읽어는 봐야겠다는 의무감으로만 읽었을 뿐이고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비극을 읽으면서는 그런 지루함 없이 죄어드는 긴장감과 몰입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는데 역시나 사람의 성향에 따라 찾게 되는 장르가 따로 있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해설가의 설명대로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근대적이며 합리적인 이야기 구성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물론, 그런 구성은 해설을 읽은 뒤에야 느낄 수 있다)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그 비극성이 덜하다는 느낌도 들 수 있는 구성을 보이고 있기도 한데, 별다른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되다 갑작스럽게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게 되거나 슬픔에 빠져드는 소포클레스나 느슨한 진행을 보이다가 후반부로 향하며 속도감과 격렬함을 보이고 있고 그 끝을 고통스런 결말로 마무리 짓는 아이스킬로스에 비해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작품의 시작부분에서 이미 어떠한 결말이 예정되어 있는지와 어째서 그런 비극이 벌어지게 되는지를 사전에 설명해주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비극성의 강도는 다른 두 작가들에 비해서는 적을지는 몰라도 예정된 비극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데서 느껴지는 불길함과 긴장감은 무척 인상적인 구성인 것 같다.

 

또한, 이야기 진행 중에서 등장인물들의 독백이나 대화 그리고 코러스의 노래를 통해서 언급되는 에우리피데스의 인간이 갖는 수많은 감정들과 정치와 권력에 대한 통찰력은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와는 다른 날카로움을 확인할 수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들은 대부분 여성이 작품의 중심인물이고 그녀들이 어떤 비극적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는데, 대부분 남성들로 인해서 혹은 여성이라는 성적 존재로 인해서 그들은 고난에 처하게 되거나 그 고난에서 더욱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를 절감하게 되면서 더욱 고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데, 이와 함께 남성이 갖는 복수심이나 시기 혹은 뿌리치기 어려운 감정을 여성이 그러한 감정을 갖게 되어 더욱 그 벗어던지기 어려운 감정을 강렬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비극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등장인물이 그러한 의도를 갖지 않고 행동했지만 그러한 행위로 인해서 엄청난 파국으로 향하게 되거나 다른 이들의 조언이나 충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거나 고집을 부리면서 혹은 정확한 판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감정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이후에 알게 되는 진실이라는 복수에 하염없이 괴로움에 빠지게 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비극의 성격을 에우리피데스는 잘 파악하여 등장인물들의 비극에 보다 논리적인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불길하고 슬픈 분위기(혹은 슬픔을 예감하는 분위기)로 시작하여 비극적 결말이라는 끝맺음으로 진행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면서, 그 끝맺음 속에서 이전에 보여주었던 실수와 오해 그리고 자만심과 오만함을 반성하며 작품을 마무리 짓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어떠한 희망적인 미래를 예상하기 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비극과 고난을 예감하며 작품을 끝내고 있기 때문에 비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만 할 뿐이라 사람들에 따라서는 지독히도 어둡기만 한 그의 작품 성향에 대해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겠지만 이런 작품을 찾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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