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도시 천년의 건축
김석철 지음 / 해냄 / 199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까지 책을 고를 때는 인문학이나 소설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요즘에는 조금씩 건축이나 공간에 관한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가고 있다. 관심은 갖게 되었지만 관련 전공도 아니었고 어떤 것부터 읽어야지 체계적으로 알아갈 수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 뭔가 끌리는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으면서 관심을 채우고 있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그렇게 구한 책들 대부분이 관심을 채워주었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되어가면서 관심이 수그러들기 보다는 점점 더 높아지게 되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 같다.

 

그렇게 접하게 된 책들 중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건축가 김석철의 글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일반적인 건축가의 글들이 전문적인 느낌만 들고 건조할 것 같다는 생각을 쉽게 무너뜨리면서 큰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천년의 도시 천년의 건축’도 그의 저작 중 많이 알려진 작품이고, 건축가로서 그리고 한명의 인간으로서 그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지만 그렇게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혹은 만든 이후에 대한 감정들에 많이 집중하고 있고, 그가 바라고 생각하는 건축과 서울에 대한 생각들에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들이 논리적인 설득보다 감정적인 자극을 우선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의 궤적을 회고하는 인상적인 서문에 이어지는 내용들은 여러 방식을 통해서 발표한 글들이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갖고 논의하기 보다는 각각의 글들을 비슷한 유형에 따라 묶어서 구성하고 있다.

 

하나의 에세이와 같은 느낌이 드는 글들이 많기 때문에 조금은 전문적인 글을 찾던 사람들은 실망스러운 기분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글을 통해서 관심을 갖게 된 분야를 조금씩 접근하게 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게다가 다양한 분야 그리고 형식의 글들이기는 하지만 건축가 김석철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신념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와 내용들로 인한 산만함은 적었었다. 다만 그저 회고하는 것 같은, 그리고 회한에 빠진 것 같은 느낌만 드는 글들에는 좀 더 생각을 채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돈된 글이기 보다는 간략하고 급하게 써낸 메모나 단상과 같은 느낌이다.

 

그가 고대 도시들을 거닐며 느낀 감정을 담아낸 글들과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세계 각지의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느낀 글들

자신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관련된 일화들과

실제 설계 과정 속에서 겪은 다양한 고난과 허가를 받기 위한 과정까지 하나의 경험담일 것이고 무훈담인 내용들로 이뤄져 있고, 하나의 완성된 건축물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과정들과 타협 그리고 정치적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천년의 도시 천년의 건축’이 이런 내용들로 이뤄졌기 때문에 거창한 제목에 비해서는 일종의 수필이나 감상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장인 ‘꿈꾸는 한강’에 담겨진 내용을 통해서 건축가 김석철의 도시에 대한 시각과 서울과 한강에 대한 지금까지의 개발에 대한 비판과 앞으로 어떤 개발과 개선 그리고 서울이 천년의 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모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에 대한 그의 언급은 하나의 예언과 제안일 것이고, 그 예언 / 제안이 조금은 대담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을 갖췄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검토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글이기도 하겠지만,

한명의 건축가에서 도시를 기획 / 계획하고 미래를 제안할 정도로 그의 시각이 그리고 역량이 높아졌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에서 자주 언급하는 ‘이 시대의 상형문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그의 노력이 현실로 이뤄지지는 못했을지라도 그의 커다란 도전에 대한 하나의 결과물은 제시된 것 같다.

 

건축가로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50대가 되었다며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한다는 새로운 다짐과 같은 글들이었는데, 책을 발표한지 꽤 시간이 흘렀으니 이런 다짐이 얼마나 실제로 이뤄졌는지 궁금하게 된다. 곤혹스러운 질문이기는 하겠지만 나름대로 이뤄낸 것들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했을 것이고, 해냈을 것 같다.

 

통찰력과 제안 그리고 고민으로 이뤄진 글들에서 좋은 교훈 그리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건축가로서의 위상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멋진 글들은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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