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스크린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 동문선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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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앞으로의 세상은 들뢰즈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보드리야르의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저서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만든 ‘소비의 사회’와 ‘시뮬라시옹’ 정도만 읽었을 뿐이지만, 그의 ‘토탈 스크린’을 읽어보니 자신의 논의를 다양하게 확장시키고 있을 뿐이지 크게 자신의 의견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하거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시선을 갖으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물론, 그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논의를 다양하게 확장시키는 것이 나쁘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현실보다 가상의 우월함을,

가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세상을 얘기한 보드리야르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고,

어쩌면 더욱 그의 분석에 대해서 옳다는 말만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토탈 스크린’을 통해서 다양한 소재들을 갖고 세상과 사회를 분석하고 있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에이즈와 섹스

경제와 걸프전

세르비아와 사라예보

마약과 아동

미테랑과 시라크

평소에도 자주 언급하는 디즈니와 예술 그리고 TV를 통해서 그는 복제와 기계/기술의 시대를 분석하고 있고, 그의 분석은 논리적인 분석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예언적이고 현란함이 우선 느껴지게 된다는 말을 하게 된다.

 

마치 패션지 광고문구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치밀함 보다는 통찰력을 내세우고 있고,

그 통찰력을 통해서 그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고,

낙관도 비관도 아닌 허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좋게 말하면 냉정한 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자신의 통찰력에 조금은 현혹되어버린 것 같다.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무언가를 모색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 모색이 화려한 표현들 속에서 은근슬쩍 숨겨져 있는 것 같기에 조금은 읽어가다가도 다시 앞 페이지를 들춰보게 되는 것 같다.

 

현실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하고,

존재했을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못하고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상 속에서 무엇을 모색해야 하는지 그는 성실하게 알려주진 않고 있다. 그래도 그의 글을 읽다보면 무언가 찾아보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가상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가상의 존재로서만 존재를 말할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은 만들어지지만...

대답은 머뭇거리게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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