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까치글방 6
J. 호이징하 지음, 김윤수 옮김 / 까치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요한 호이징하의 걸작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는 그의 또다른 걸작이자 중세 시대에 대한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인 ‘중세의 가을’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놀이’라는 주제로 인해서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아이 시절부터 즐기던 그리고 즐겼던 ‘놀이’를 통해서 인간 사회의 문화와 문명에 관한 광범위하고 풍부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호모 루덴스’는 흔히들 접했고 행했던 ‘놀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삶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분석을 하고 있다.

 

호이징하는 우선 ‘놀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본질에 대해서 상세하게 분석을 하고 있고, 그 분석 속에서 놀이라는 것이 단순히 어린 시절의 장난들 정도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전반에 걸친 긴밀한 연결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흥미롭지만, 조금은 진지하게 듣게 된다면 황당한 의견처럼 받아들여지는 생각을 호이징하는 자신의 정교한 분석을 토대로 놀이가 어떻게 언어와 문화, 법률, 전쟁, 지식, 시, 철학, 신화, 예술 등과 연결되어 생각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놀이를 토대로 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고, 놀이에서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도 세밀하게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쉽게 납득되기는 힘들겠지만 일정 부분 수긍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의견은 치밀하고, 자신의 논리에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그의 분석을 토대로 호이징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점 더 놀이가 갖고 있는 특성에서 벗어나고 있는 각각의 영역들의 변화에 대해서 논의하며 이런 변화, 즉, 각각의 영역의 독자성과 독립과 함께 놀이가 갖고 있던 특성이 변질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놀이의 천진함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이 퇴색하고 점점 더 부정적인 부분만 남게 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석이 단순히 과거가 더 좋았다는 식의 복고적인 입장으로 바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의견일 것이고 자신의 분석과 그 분석에 따른 결론에 대해서 그는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의견에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중세의 가을’과 마찬가지로 ‘호모 루덴스’는 특별히 어려운 내용으로 이뤄지지도 않고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의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호이징하의 글은 어쩐지 읽어나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그의 글이 매우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별다른 판단을 혹은 다른 생각을 요구하지 않고 있던 또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되었던 것들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익숙하게 여겼던 것들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호모 루덴스’도 이처럼 ‘놀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그의 놀이의 본질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영역에 대한 놀이의 영향까지, 어떤 부분이 읽기가 힘들게 느껴진다고 말하기 보다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거나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던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읽기를 간간히 멈추며 그의 의견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생기게 되었던 것 같다.

 

‘놀이’라는 생각 이상의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방법을 토대로 분석을 하고 있고, 그리스 / 로마시대의 놀이에 대한 당시의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며 그들의 의견들을 토대로 자신의 놀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리된 입장에 따라 그는 고대 이후의 시대에서 놀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당시 시대에서 이뤄지고 있었으며 이전과 혹은 이후와의 차이를 보이게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호이징하는 그리스 / 로마 시대의 놀이에 대한 의견을 종합하기까지는 치밀한 분석을 보이고 있지만 중세부터 현대까지는 되도록 간략하고 단편적인 분석을 진행시키고 있다. 분석보다는 언급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정도로 깊게 파고들지 않고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는 놀이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분석은 자신의 논의를 받아들인다면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또는 얼마나 변화를 보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와 같은 사람은 그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수준이지 그의 분석을 토대로 다른 시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응용력이 뛰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는 그의 말미의 내용들에서 큰 아쉬움을 갖게 된다.

 

다행히 현시대의 놀이가 더 이상 놀이와는 다른 차원의 ‘스포츠’가 되었고 그리스 / 로마 시대의 놀이 정신과 천진함이 어떻게 지금에 와서는 뒤바뀜과 진지함만이 남게 되었는지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이와 같은 퉁명스러운 분석을 토대로 고대 이후의 시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게 될 것 같다.

 

그의 놀이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시각과 그 놀이가 갖고 있는 특성과 본질에 대한 분석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그의 넓은 시야와 통찰력에 감탄하게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논의의 결과를 토대로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고 그 변화에 대한 그의 묵직한 비판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또한 그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놀이가 갖고 있는 긍정적이고 천진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그리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호이징하의 놀이에 대한 분석이 이후의 연구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분석 이상의 혹은 분석을 토대로 한 별도의 연구가 그다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고, 그저 위대한 학자의 독특한 관심이었다는 수준에서 ‘호모 루덴스’가 다뤄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놀이에 대한 탐구와 함께 그 탐구를 통한 지금 시대에 대한 준엄한 충고는 이전에 비해서 보다 더 자신의 시대에 대한 그의 의견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런 수준의 분석을 누가 또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구도 뒤쫓기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호이징하 혼자 모든 탐구를 다해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만큼 그의 분석은 탁월하고, 통찰로 가득하다.

 

그저 ‘놀이’일 뿐인 것을

왜 이리도 진지하게 말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지함에 대한 호이징하의 예민함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조심스럽게 반응하게 되지만 ‘놀이’가 갖고 있는 천진함을 강조하기 위해 ‘호모 루덴스’라는 진지한 학문적 탐구를 보여주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하다.

 

그렇지만 글들을 다 읽게 된다면,

그리고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그런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 조금은 더 생산적인 방식의 이해와 논의를 하고 싶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호이징하의 논의를 다시 한번 되풀이 읽어보고 싶게 되고,

언제까지나 되풀이 읽게 될 것 같다.

 

 

 

참고 : 결국 놀이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호이징하의 결론은 철학적으로는 니체의 분석과 일정부분 연결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호이징하 또한 니체의 그리스 시대에 대한 분석이 갖고 있는 통찰에 대해서 잠시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놀이에 대해서 그리고 니체와 그리스 시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호모 루덴스’는 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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