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3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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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칠 정도로 인상적인 제목인 페터 한트케의 ‘페털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은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몇 번 들어보았을 제목일 것이고, 제목만 기억날 뿐이지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을 법한 책이기도 할 것이다.

 

제목도 인상적이고,

분량도 짧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책을 펼쳐들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는 짧은 분량임에도 쉽게 읽혀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글이 어렵게 읽히거나 번역이 잘못되지도 않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어렵게 읽게 된 이유는 아마도 글 자체가 매우 갑갑한 기분을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페터 한트케는 실험적인 글쓰기를 보여주었던 작가로도 유명하고,

언어학자가 쓴 소설처럼 생각될 정도로 지속적으로 언어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고 있고, 끝없이 단어들로 내용이 구성되도록 만들어서 글을 읽는다는 기분이기 보다는 단어들을 모은 하나의 덩어리를 읽는 듯한 기분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다행히도 이 작품은 그나마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보다 이야기 구성에 신경을 쓴 작품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 읽어나갈 수 있었지 만약 그의 초기작을 읽었다면 혹은 이 작품이 초기작과 같은 글쓰기였다면 아마도 책을 읽기 보다는 집어던지려고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표정한 느낌으로 건조한 시작을 보이고 있고,

그 시작과 함께 내용은 작품의 끝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가끔은 단락을 구분하여 조금은 숨고르기를 했으면 하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구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도록 만들고 있다.

 

주인공 블로흐를 비롯해서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건조한 느낌만 전달하고 있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 또한 대화라고 말하기 보다는 혼잣말과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하고 있다. 내용에서 뚜렷한 끊어짐을 만들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도록 만들어놓고 있어서 읽는 동안 굉장히 답답한 기분이고, 벽으로만 가득한 미로와 같은 공간을 거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내고 있다.

 

상사의 눈짓을 통해서 해고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대로 사무실에서 나와 정처 없이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는 블로흐에 대한 3인칭 시점을 갖고 있는 소설이지만 블로흐의 심리에 대한 집요한 묘사를 통해서 이 작품이 과연 3인칭인지 블로흐 개인의 시각인지 헷갈리게 만들게 되기도 한다.

 

블로흐의 정서적인 불안과 언어적인 장애 또는 정신적인 문제를 드러내면서 그의 심리를 그리고 그의 행적을 따라다니는 ‘페널티킥...’은 그의 불안한 여정을 쫓으면서 이야기는 혼란스럽게 흐르다가 갑작스럽게 살인이 일어나거나 시체를 발견하는 등 느닷없이 돌발적인 상황을 만듦으로써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엉뚱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서는 지속적으로 블로흐가 극장으로 향하고 있고, 극장에 가서야 정신적인 안정을 얻고 있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의 모습을 통해서 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갑작스러운 사회의 변화 속에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전직 축구 선수라는 설정과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축구만 했던 사람이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도 결국 ‘독일의 재건’이라는 은유로 읽혀질지도 모르고, 그 과정에서 버림받게 되었다는 혹은 그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바라봄으로써 그가 사회를 그리고 세상을 겉돌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번역자의 경우는 이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고 있어서 이 작품은 생각보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블로흐는 지속적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혹은 만남을 위해서 전화를 통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있고, 만남을 노력하지만 그는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작품은 끝을 맺는데, 작가는 이 과정을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글을 통해서 읽는 사람을 압박하고 있고, 그 압박에 누구라도 제대로 된 대응을 보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에서 모든 사물을 뚜렷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대략적인 윤곽으로만 묘사를 하고 있고, 애매하게 표현함으로써 작품의 분위기를 몽환적이면서도 폐쇄적으로 느끼도록 만들고 있는데, 마치 열기가 넘치는 사우나에 들어간 기분이고 더운 여름에 낮잠을 자다 악몽을 꾸게 된 것 같은 기분을 갖게 만든다.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불규칙적이고 산발적으로 등장하고 사라지고 있고, 느닷없이 사건이 일어나거나 블로흐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거나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는 무시되거나 그가 다가가는 순간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부분적으로 카프카를 의식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러기에는 그가 지나칠 정도로 언어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성격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독일의 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페널티킥...’은 읽는 동안 질식할 것 같은 갑갑함만을 느끼게 만들었지만 바로 그 느낌 때문에 더욱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 같다.

 

뚜렷한 결론 없이 끝을 맺는 마무리로 인해서 읽은 다음에 들게 된 생각은 다시 한번 더 읽게 된다면 호흡곤란에 빠질 것 같다는 생각만 들게 되지만 분명 의미심장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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