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마지막 기회 - 세 대통령이 초래한 제국의 위기를 넘어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지음, 김명섭.김석원 옮김 / 삼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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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두 개의 체제로 구성되어 있었고(이것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두 개의 체제 중 하나의 체제는 미국(그리고 그 주변국들)에 의해서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로 패배를 하게 되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승리이고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말하게 되었고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과 결론 속에 수많은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고리타분하고 복잡한 얘기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미국은 그 이후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견에 대해서 큰 반박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승리로 그리고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을 맺으리라 생각되었던 세계는 보다 더 급격한 변화를 그리고 불안정을 보여주게 되었고, 그 급변과 불안정 속에서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위상은 점점 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브레진스키의 물음은 여기서 시작되고 있고, 그의 물음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된 이후에 집권했던 세명의 지도자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통해서 그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어떤 것이 부족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하게 된다.

 

브레진스키는 타고난 전략가이고, 그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어떤 선택이 가장 이득을 줄 수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의견에는 냉정함과 함께 치밀한 계산이 담겨져 있다.

 

그의 평가로는 아버지 부시를 시작으로 해서 클린턴, 그리고 아들(이자 얼간이) 부시의 순으로 집권자로서 시대와 세계에 대한 리더로서의 적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있고, 그 근거를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제시하고 있다.

 

‘거대한 체스판’으로 그의 분석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분석이 갖고 있는 명료함과 치밀함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신작에도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고, 뒤늦게 읽기는 했지만 아주 늦은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이번에도 여전히 말을 돌리거나 애매하게 표현하지 않고, 현재 상황에 대한 단호한 평가와 함께 그동안 무엇이 부족했고,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 부시에 대해서는 뛰어난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서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고, 클린턴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물론, 아들 부시에 대해서는 칭찬할 부분을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인지 담담하게 그가 어떻게 모든 것을 망치게 되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망칠 수도 없다는 식의 무표정한 담담함으로 느껴진다.

 

브레진스키는 이전 ‘거대한 체스판’과 같은 저작에서는 당시의 정세를 분석하고 그 정세분석과 향후의 방향에 대해서 모색함으로써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를 들려주었다면, 이번 ‘미국의...’는 기존의 그의 분석방식에서 ‘지도자(그리고 리더십)’에 대한 중요성을 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인 것 같다.

 

그가 점점 더 마키아벨리처럼 되어가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이미 그는 마키아벨리였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쨌든 그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제도’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결국 지도자가 어떤 운용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혹은 어떤 파트너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큰 변화를 보이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큰 특이점을 보이는 것 같다.

 

이제는 시스템이 모든 것을 장악했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으로는 어떤 변화도 모색할 수 없다는 관점이 우세한 상황에서 그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고, 어쩐지 그의 생각에 조금은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는 현재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들을 서술하면서 그 사안들이 어떻게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동유럽의 붕괴와 소련의 몰락이 어떠한 급격한 변화를 보이게 되었는지 말하며 그 이후의 세계의 모습과 세명의 지도자로 인해서 그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분석하며 앞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서 모색을 해야 하고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야 하는지 들려주고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여전히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생각을 바꾸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각으로 어떻게 미국이 지도국(또는 지도자)으로서의 모습과 본보기 그리고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그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고 있다.

 

약간은 의외의 해결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상을 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지도자(오바마)는 그의 생각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게 생각한다.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브레진스키의 민주당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과는 다르게 움직여지게 마련이고, 그의 분석에도 어느 정도의 한계 또는 그릇된 판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분석과 제시들이 갖고 있었던 철저한 현실적인 판단이라는 점에서 그의 의견은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그는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공통된 규범과 국가들 간의 그리고 사회 간의 유기성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미국이 보다 선도적이고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절제와 온정(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브레진스키의 시각을 갖고도 다양한 분석 또는 해석을 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장황스러운 분석을 하기 이전에 그가 갖고 있는 치밀한 현실감각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 국내의 문제들에 대해서 그는 세밀하게 다루지 않고 있고, 굵직한 문제점을 간단히 거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고,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경제적인 문제와 불평등에 관해서도 특별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그는 전략가이고, 정치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혹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아예 끼어들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찾아내기 보다는 그의 시각 자체를 받아들이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는 여전히 말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현실을 파악하고(그는 말 그대로 그냥 그대로 이 시궁창과 같은 현실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파악한 결론에 따라 앞으로 어떤 선택을 혹은 모습을 보여야 할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 미국의 헤게모니가 많이 위축되었고, 이전에 갖고 있었던 이점들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는 이 기회가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미국의 선택이 어떤 선택을 보일지 혹은 그들이 자신들의 지도자에게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고 있는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따라 당연히 모든 것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에 따라 모든 국가들은 또다른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참고 : 그는 ‘거대한 체스판’에 비해서는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한반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크게 관심을 갖게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햇볕정책에 대해서 조금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는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합의에 의거해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햇볕정책이 갖고 있는 독자적인 움직임에 비판적이며, 일관성은 있지만 그런 일관성은 좋지 않기만 할 뿐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본 것 같다. 이에 대해서 반론 또한 가능하겠지만 그건 아마도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바라보는 것과 실제 당자로서 바라보는 것의 차이일 것 같다. 혹은 손해와 이득으로서 바라보는 사람이거나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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