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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의 재탄생
김상환.홍준기 엮음 / 창비 / 2002년 5월
평점 :
[일러두기] 라깡, 무의식의 시대를 열다
[제1부] 라깡 정신분석학의 기초
[제1부] 라깡, 프로이트로의 복귀 : 프로이트 · 라깡 정신분석학 : 이론과 임상
인문학 혹은 정신분석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끄 라깡 / 자크 라캉’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뿐이지 그의 이론과 논의에 접근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의 글도 어렵지만 그에 대한 글들도 지나칠 정도로 난해하게 설명을 하고 있고, 때로는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로 라깡과 관련된 글들은 ‘난해함과 어려움’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각각의 연구자와 소개자들이 용어도 제대로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고, 그의 연구를 적절하게 소개하고 깊이 있게 가져가기 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논의를 확장하고 있을 뿐인 것 같아서 더욱 어렵게 느껴지고 미궁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화려한 느낌이 들고, 흥미롭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읽고 이해했는지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면 머뭇거리게 되고, 정신분석인데도 실제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 적용되기 보다는 지나치게 이론적으로만 혹은 정신분석 외적으로만 논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는데, 어쩐지 ‘멋지기만 할 뿐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고 아마도 이런 기분은 그동안 ‘라깡의 논의’를 접하기 보다는 ‘라깡의 논의에 대한 논의’만 읽었기 때문에 갖게 되는 오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라깡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최소한 어떤 순서로 혹은 어떤 방식으로 그의 논의를 파악해야 수월한지를 알려줄만한 연구자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관심을 말 그대로 관심으로 끝냈어야 했고, 한동안 관심을 갖다가 쉽게 잊혀지게 되었다.
이것은 국내에 라깡에 대한 각종 참고서들은 많이 출판되었지만 그가 써낸 글이 번역된 것은 단 두 권뿐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한국의 인문학계가 얼마나 엉망인지 혹은 폐쇄적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많은 학자들과 각종 문화평론가들이 라깡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들게 되는 생각은 ‘이렇게 라깡에 대한 글들이 많은데 어째서 단 한권도 제대로 번역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뿐이라면 이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라깡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중요한 문제제기일 것이다.
‘라깡의 재탄생’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쓸데없는 불평을 먼저 하게 되는 이유는 그만큼 라깡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는 뜻이고, 라깡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국내 연구자들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자신감을 갖고 펴냈다는 ‘라깡의 재탄생’을 읽으며 들게 되는 생각이 기쁨 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는 뜻이다. 그의 저서를 한국어로 접하지도 못하면서 깊이 있는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그의 이름을 내건 학회까지 있으면서 말이다.
최근 들어서 수많은 분야에서 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정신분석학과 관련된 혹은 유사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비교하거나 연결하여 연구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으면서도 그의 주저라고 볼 수 있는 ‘에크리’조차 여전히 번역 중에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조금은 우회하는 방법으로 라깡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누구도 제대로 라깡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라깡과 관련된 몇몇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개론서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의 가장 뛰어난 해석가라고 볼 수 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들도 많이 출판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게 되는 것 같다.
라깡의 전반적인 논의를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라깡의 재탄생’에 수록된 홍준기의 ‘라깡 정신분석학의 기초 - 자끄 라깡, 프로이트로의 복귀’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반가운 내용일 것이고, 라깡을 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놓치기 아쉬운 글이 될 것 같다. 라깡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라깡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 (그나마) 알기 쉽게 이해시켜주고 있고, 라깡에 대한 글들을(혹은 책들을) 접했던 사람들도 라깡의 전체적인 논의의 흐름을 (다시 한번) 이해할(재검토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고, 부분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라깡이 어떤 의도를 갖고 프로이트의 이론적 토대를 딛고 자신의 논의를 전개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라깡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순서대로 알려주고 있고, 그가 어째서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했는지 그리고 그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면서 그의 이론적 핵심인 ‘상상계, 상징계, 실재’와 ‘언어학(기표와 기의)’을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이론에 도입했는지 그리고 항상 강조하던 ‘욕망과 향유’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그동안 국내에서 지나치게 이론적인 부분에만 논의가 되었기 때문에 간과되었던 임상적인 부분까지 라깡의 논의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한때는 들뢰즈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고, 온 사방에서 들뢰즈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최근에는 그에 대한 논의가 쑥 들어가고 대신에 요즘에는 슬라보예 지젝과 (덩달아) 라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라깡의 ‘세미나’가 번역되기도 해서 라깡에 대해서 그리고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보다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고 라깡거리고 지젝거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라깡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혹은 관심을 갖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보다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좋은 연구서들이 그리고 번역서들이 출판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건 부탁이며, 요청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기 때문에 책의 제목인 ‘라깡의 재탄생’은 지극히 불만스러운 느낌을 갖게 만든다. 라깡은 한국에서는 탄생조차, 제대로 시작도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 : 1. 아직은 이해의 폭이 좁아서 2부와 3부에 대해서는 읽지 못했고, 아마도 한동안은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는 2부의 내용들과 같은 ‘라깡과 관련된 깊이 있는 논의들을’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래도 미정일 것 같다.
2.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라깡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글들을 읽은 다음에 그의 논의들을 접하는 방법이 가장 쉬운 방식일 것 같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