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좋아하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랭 드 보통을 어떤 작가로 분류하려고 할까?

별다른 생각 없이 판단한다면 수필과 에세이 작가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그가 다루는 주제를 생각한다면 조금은 애매한 입장을 갖게 될 것이다.

 

수필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특별한 형식 없이 편하게 써내려가서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방식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알랭 드 보통이 들려주는 주제들은 보다 일관성을 갖고 있고, 다양한 참고문헌들을 토대로 자신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인문학 특유의 건조함과 분석력 보다는 여러 입장들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여러 입장들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학자의 글이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작가의 위치에서 인문학 적인 방법론으로 논의를 이끌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다른 글들을 읽지 못해서 다른 작품들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써내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안’에서는 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분석의 주제를 잡고 있고, 불안에 대한 정의와 어째서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혹은 불안감을 최소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과거 시대들에 비해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커지게 된 이유는...

과거(얼마 전의 과거가 아닌 중세 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적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이 지금은 누구나 느끼게 된 이유는...

 

알랭 드 보통은 근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의 주된 원인은 민주주의로 인해서 최소한의 평등이 이뤄진 세상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로 인한 일반인들의 노동조건의 변화로 인해서 느끼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즉, 상대적 박탈감과 절대적 빈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기본적인 민주주의가 이뤄진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 / 사회적인 자유를 느끼게 되었지만 과거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아예 비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평등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버려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느끼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정이 나타나게 되었고, 불안정한 고용조건과 그로 인해서 느끼게 되는 경제적인 긴장감은 이런 불편한 감정을 보다 더 큰 감정인 불안감을 안겨주게 된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고, 이런 진단은 어느 정도는 신선하고 의미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진단과 더불어 어떻게 하면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해결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이 해결방안에는 철학, 종교, 예술, 자본주의적 삶으로부터 벗어난 삶 등이 있다.

어떤 부분은 동의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하는데, 전반적으로는 그럴듯한 분석들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조금은 애매한 입장을 갖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고 있는 해결방안은 기본적으로는 그런 불안감을 잘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고, 혹은 억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보헤미안의 삶과 같이 사회의 지배적인 삶의 방식에서 거리를 두는 방법들도 제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체제에 대해서 전복적인 생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사회체제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 혹은 문제점에 대해서도 크게 다루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입장이 지나치게 모범적이거나 문제 자체를 개인의 의지로 벗어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해결방안을 통해서 보다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일종의 진통제와 같은 의미를 갖는 해결책이지 병의 원인 자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는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견이 그에 대해서 지나친 요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불만스러운 기분을 갖게 되기보다는 나름대로 통찰력 있는 그의 시각과 다양한 일화들과 철학 및 소설들의 인용에 감탄하는 시간이 더 많았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뛰어난 문장가이고 수필가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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