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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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웃을 일이 적어져서 맥빠진 기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공중그네를 읽게 되었다. 한동안 인기를 끌던 일본소설이 잠잠하다가 다시 인기를 얻게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고 많은 사람들이 읽는 동안 쉬지 않고 웃을 수 있다고 해서 나도 책을 읽으며 웃어본지 오래된 기억이 나서 웃기 위해서 한번 읽었다.

아쉽게도 딱히 웃을 만한 구석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작품 자체는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좋다는 뜻이 아니다) 어쩐지 책을 읽는 동안 이건 활자로 된 만화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만화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버스나 전철에서 만화책을 읽는 청소년과 대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10년 전만 해도 버스나 전철에서 만화책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던 시선을 느끼며 꿋꿋하게 만화책을 읽던 나로서는 색다른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로서는 만화책을 읽는 사람들이나 공중그네와 같은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나 특별히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동하며 가볍게 시간 때우기로 딱 좋다는 것이니까.

 

어떤 의미에서 최근 소설가들이 지나치게 너무 많이 만화책과 영화를 보고 있다고 말했던 평론가의 말을 떠올리게 되는데... ‘공중그네’를 읽으며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이건 아니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게 느껴졌다.

 

내용도 분량도 특별히 어려운 것이 없기 때문에 천천히 읽는 나조차도 주말 하루 동안에 다 읽었으니... 출퇴근을 하며 기분전환으로 읽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라부라는 신경과 의사로 인해서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는 이야기 구성을 갖고 있는데, 그들의 고민은 누구나가 한번쯤 갖을 수 있는 있는 고민이라는 것에서 독자들은 동질감을 느낄 것이고, 이라부라는 희한한 캐릭터를 통해서 읽는 재미를 느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이와 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이라부라는 캐릭터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자기 멋대로 한다고 볼 수 있지만 때로는 그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수많은 것들을 고려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라부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준다.

 

이러한 주제를 오쿠다 히데오는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특별한 기교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읽는 이를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어 보이는데... 다른 작품을 전혀 읽어보지 못해서 자세하게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흥겹고 유쾌하다.

읽은 다음에 남는게 무엇이냐? 라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흥겹고 유쾌한 기분이 남는데 어디서 따지냐고 받아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분명 흥겹고 유쾌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작품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다들 사회의 중간 혹은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다. 야쿠자, 서커스 단원, 중산층 출신인 전도유망한 의사, 탁월한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한 프로야구 선수, 인세로 먹고 사는 정도가 되지 못한 작가.

 

이들은 각자의 계급과 출신은 다르지만 사회의 지배계급이 아니라 그들 밑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모두 자신의 직업에 처음부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야쿠자도 깡패로 살아가는데 꽤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의사는 전형적인 중산층 출신이지만 집안 좋은 여성과 결혼하여 부담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인물로 다뤄진다).

처음부터 큰 고난이 없이 성공을 거듭한 사람들이 위기에 봉착한 순간을 잡아낸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전형적인 일본 소설이 그들과는 조금은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30~40대에 있는 사람들로 보여지지만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취업과 기타 여러 문제로 인해서 좌절감을 맛보기 시작하는 상황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서로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때문에 정신을 놓고 사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이같은 이라부라는 의사에 모두들 환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느끼는 근심과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라부에게 환호를 하고 그에게 상담받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라부는 자신들의 고민에 대해서 호탕하게 웃으며 별 것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며?

 

하지만 이라부는 전형적인 부르주아이기 때문에 애매하게 다가온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죽을 때까지 부족하지 않을 재산으로 특별한 노력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물로 다뤄지고 있다. 때문에 그가 갖고 있는 순수함과 어린이와 같은 심정은 말 그대로 삶에 특별한 고민을 해야할 필요가 없는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스케치일 것이다.

그는 부족함 없이 자라왔고,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무슨 고민과 걱정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수많은 고민이 생길 수 있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우선된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은 독특한 것이 이라부는 지배계급의 세계에서 이방인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권력집단인 의사세계에서 비주류로 다뤄지는 신경과 의사이고 그의 진료실은 경치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 지하에서 환자를 진료한다.

그리고 그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앞에서 설명한 사람들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라부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위선과 가식을 조롱하고 필요 이상의 근심을 잊으라고 권하고 있지만... 어쩐지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로서는 단순하고 유쾌한 이 작품에서 어딘가 모르게 찜찜함을 느끼게 된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전복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살아가라고 굴복시키는 것인가?

 

이라부의 치료법과 함께 조금은 흥미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그에게 뭔가를 상담받고 싶지만...

아직은 혼자서 해결해보고 싶다.

 

그리고... 아쉽게도 나는 홍보문구처럼 배를 잡고 웃지는 못했다.

웃자고 읽었는데... 죽자고 달려들어 분석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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