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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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그만의 개성과 독자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나, 어떤 식으로든 레이먼드 챈들러를 언급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본인도 그걸 부정할 생각도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즐길지도?

 

범죄소설 애호가들에게 있어서는 하라 료는 어떤 사람일까? 챈들러의 아류라고 생각하고 무시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가볍게 뭉개고 넘어가고 싶진 않다. 그만의 특징들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물론, 챈들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긴 하지만. 중년의 필립 말로랄까? 그게 아니면 일본이라는 풍경과 환경 속에서의 필립 말로랄까? 필립 말로가 일본인이라면? 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해서 어떤 사건들을 접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작가 스스로의 성격과 성향을 잔뜩 버무렸다고 할 수 있겠고.

 

예측불허의 정교한 플롯, 불필요한 수사는 철저히 배제된 정통 하드보일드 스타일, 쓸쓸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정경 등 시리즈 특유의 강점은 그동안 응축된 세월을 증명하듯 더욱 단단해지고 농밀해졌다. 여기에 오십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고고한 사와자키의 시크한 매력은 보너스.”

 

시답잖은 사건 의뢰를 받고 묵묵히 조사를 하다가 뜻하지 않은 사건들에 연이어 빠져들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들로 가득하다. 이런 게 싫은 사람이라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밋밋한 진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챈들러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것도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당장 들게 될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확실하게 좋고 싫음이 나눠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다른 이야기도 읽어봐야겠다.

 

세월과 함께 쇠락해가는 신주쿠 뒷골목의 와타나베 탐정사무소’. 어느새 오십대에 접어든 탐정 사와자키는 사무실 문을 노크할 의뢰인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느 날 중년의 은행 지점장이 탐정사무소를 찾아와 한 여자의 뒷조사를 의뢰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뢰받은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여자가 이미 사망했음을 알게 되지만, 의뢰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사와자키는 의뢰인이 근무하는 은행을 찾아갔다가 갑작스럽게 복면강도와 마주치는데…….”

 

짙은 냉소와 자욱한 체념 혹은 푸념으로 가득한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진 못하겠지만 이거 꽤 물건이라는 말을 해보고 싶다.

 

 

 

참고 : 저자의 사망으로 인해서 이게 유작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마지막 소설을 가장 먼저 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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